환율이 쉼 없이 내려가고 있다. 지난 3월2일 1575원을 고점으로 줄곧 내리막 행진을 하더니 5월19일 현재 1242원에 종가를 찍었다. 두 달 반 사이에 333원, 21.2%가 빠진 것이다. 오를 때도 급하게 오르더니 내릴 때도 ‘자유낙하’에 버금가는 기울기를 보여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3월 이후의 환율 하락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고 분석한다. 경상수지 흑자 확대, 경기 회복 기대감, 달러화 약세 등 구조적인 이유가 배경에 있기 때문에 환율 하락 기조는 당분간 유지될 것이란 설명이다. 폭이 문제일 뿐 환율이 떨어지는 것 자체는 분명하다는 것이 시장의 컨센서스다. 환율이 당분간 1200원을 전후로 움직일 것이란 전망이다.

수출주 줄이고 해외펀드 환헤지 ‘필수’

환율 하락의 첫 번째 이유로는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를 꼽을 수 있다. 지난 3월의 경우 사상 최대치인 66억5000만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35억6000만달러였던 2월에 비해 흑자 규모가 두 배 가까이 불어난 것이다. 경상수지가 큰 폭으로 개선되면서 외화 공급이 불어났고 지난해 여름 이후 감소하던 외환보유액도 다시 늘어났다. 지난 4월 기준으로 외환보유액은 2117억달러로 지난해 10월 수준을 회복했다. 

환율 대세 하락…수출 기업 ‘울상’

한국 경기가 바닥을 쳤다는 인식도 원화 강세에 힘을 보탠 요인이다. 위기가 재발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판단이 퍼지면서 안전 자산인 달러에 의존하던 투자 패턴이 약화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달러의 약세는 피할 수 없는 추세라고 판단한다. 경기 부양을 위해 천문학적인 유동성을 풀어놓았기 때문이다. 

환율이 내림세를 이어가면서 주식시장은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환율이 최고점이던 지난 3월2일 1018이던 코스피 지수는 5월19일 현재 1428까지 치솟았다. 무려 40%의 상승을 기록한 것이다.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달러 대신 주식을 선택하게 했다. 환율이 상승할 때마다 주가 지수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쳐다보던 풍경이 사라진 것이다.

인플레이션 우려를 불식시키는 효과도 있다. 수입 물가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시중 유동자금이 800조원에 이르러 언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걱정이 퍼지고 있는 상황임을 생각하면 환율 하락은 통화 당국의 짐을 덜어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환율 하락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원유와 국제 원자재 수입 가격이 하락할 것을 생각하면 반가운 일임에 분명하지만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사실 수출 물량이 줄었음에도 지난 4월 사상 최대의 흑자를 기록한 것은 환율의 덕이 컸기 때문이었는데, 더 이상 환율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고 있다.

이는 한국은행이 발표한 수출입 동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4월 수출입 물가는 11년 만에 최대 폭으로 떨어졌다. 수출 물가는 1998년 7.2% 내린 이후 가장 큰 폭인 6% 하락했다. 자동차 부품(16.2%), 냉장고(11.1%), 무선전화(9.4%), TV 수상기(9.2%) 순으로 내림 폭이 컸다. 수입 물가 하락율도 1998년(-9.1%) 이후 가장 큰 -7.8%를 기록했다. “환율이 비정상적으로 올라갔다가 갑자기 내려오는 바람에 수출 가격이 빠르게 하락했다”는 게 한국은행의 분석이다.  

은행업 투자 확대 ‘아직은 이르다’

환율이 하락하면서 주식 투자자들에게도 고민이 생겼다. 지난 3월 이후 국내 주식시장을 끌어올린 가장 강력한 엔진은 자동차와 IT를 비롯한 수출주들이었다. 높은 환율 덕에 큰 폭의 실적 개선이 기대되면서 투자자들이 ‘매수’를 외쳤다. 실제로 기업들의 1분기 실적은 예상을 뛰어넘는 ‘어닝 서프라이즈’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환율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그렇다면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조정해야 할까. 일단 수출주 비중을 줄이고 내수주 비중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김세중 신영증권 투자전략팀장은 “해외 소비 시장이 단기간에 회복될 확률이  낮기 때문에 수출이 갑자기 증가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은행업종을 제외한 내수주에 관심을 두는 것이 유효하다”고 말했다. 이어 김 팀장은 “특히 유통, 게임, 엔터테인먼트, 통신서비스 업종과, 그린과 환경 테마가 유망하다”고 덧붙였다.

은행업을 제외한 이유는 이번 경제 위기의 발단이 금융이었기 때문이다. 최악은 넘겼다고 하지만 아직은 이자 수익도 약하고 부실 여신도 제대로 통제되지 않는 형편이다. 통상적으로도 위기를 발생시킨 업종은 가장 나중에 회복되는 경향이 있다.

해외 펀드 투자자들도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 해외 펀드는 환헤지형과 환노출형이 있다. 환헤지형을 선택한 투자자라면 환율 변동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환노출형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만약 원·달러 환율이 1000원이 되지 않았던 지난해 초에 환노출형 해외 펀드에 가입한 투자자라면 1년이 지난 올해 초엔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것이다. 환율이 50% 이상 올랐기 때문에 수익률이 하락해 발생한 손실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환율이 꼭지에 이른 지난 3월 초에 거치식으로 해외 펀드에 가입했다면 지금쯤 밤잠을 설칠 수 있다. 수익률과 상관없이 환 손실만 20% 가까이 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환율이 급락하면서 해외 펀드 투자자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일단 환노출형에 가입한 후엔 환헤지 기능을 따로 붙일 수 없기 때문에 환율 하락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라곤 해지하는 수밖에 없지만 본전 생각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것이다.

안정균 SK증권 펀드 애널리스트는 “환율이 이미 많이 빠져서 갈아타더라도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며 “환율은 장기적으로 우상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5년 이상 장기투자를 할 생각이라면 굳이 갈아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1~2년 정도 투자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환헤지형으로 갈아타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불확실한 환 효과에 대한 기대는 접고 경기 회복에 베팅을 해보는 것이다.

환율이 바닥에 이르기를 기다리는 투자자들도 있다. 해외 펀드 신규 가입 시점을 저울질하는 투자자들이다. 바닥에 들어가 수익률과 함께 환차익을 동시에 챙기겠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를 바람직하지 않은 투자법이라 우려한다. 환율이 어디로 움직일지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안 애널리스트는 “환 효과를 보고 펀드를 선택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라며 “해외 펀드는 기본적으로 환헤지형 상품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