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의 회생 여부, 증시의 대세 상승 여부 등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다. 방향이 분명하지 않아 투자자들은 갈팡질팡 하고 있다. ‘불확실성’은 투자의 독이다. 망설이고 있는 부동자금은 어느새 800조원에 육박하는 실정이다. 이 자금은 과연 어디로 향할 것인가.

부동산엔 눈길 안주고

증시에서 ‘입질’시작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계절은 봄이되, 불황 여파는 여전하다. 그러나 증시 반등, 백화점 매출 증가 등 일부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온다. 이에 줄곧 내리막길만 걷던 경기가 반등을 시작했다는 의견과, 아직 회생이 멀었다는 입장이 맞서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일부 경제지표들이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오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 낙관론이다. 반면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국내 경기는 당분간 어려움이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경기 비관론이다. 낙관론과 비관론의 혼재는 그만큼 시장 상황이 불확실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문제는 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바로 ‘불확실성’이라는 점. 경기가 좋아질지 나빠질지 확신이 서지 않으면 돈은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방황할 수밖에 없다. 이에 시중의 부동자금은 무려 784조7000억원으로 불어난 상태다.(금융감독원 집계, 2월말 기준)

부동자금이란 저축예금, 정기예금, MMF(머니마켓펀드), MMDA(수시입출금식예금), CMA(종합자산관리계좌) 등에서 대기 중인 자금이다. 운영 자금이나 결제용 자금 등을 제외하면 실제 부동자금 규모는 금융감독원의 발표액수보다 적겠지만, 아무튼 엄청난 것만은 분명하다.

자산시장의 주요 투자 대상은 부동산, 주식, 채권, 그리고 원자재 등 대체투자 상품, 현금과 다름없는 안전자산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투자 대상별 현 상황을 간단히 짚어보자.

부동산 투자는 아직 일러

부동산은 아직은 투자하기에 이르다는 분위기다. 강남, 송파, 잠실 등 블루칩 지역에서 일부 움직임이 보이나, 전체 부동산 시장 평균은 떨어진 가치가 회복되지 못했다는 것. 경기에 후행하는 부동산의 특성도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채권은 지난해 말부터 인기였다. 외화 후순위채, 외화표시채권, 우량신용등급 회사채가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전체 자산 시장 규모로 볼 때 의미 있는 수준은 아니라는 관측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4월16일 현재까지 채권시장의 하루 평균 거래대금은 총 18조1024억원, 이 기간 거래건수는 8621건이었다. 784조7000억원 규모인 부동자금의 간식은 될지언정, 주 요리는 아니었다는 얘기다.

이번에는 금과 같은 원자재를 보자. 인플레이션 헤지 용도로 사랑받았던 금은 한동안 가치가 치솟았다. 현 위기가 가시면 나타날 인플레이션 우려에 대응하려는 수요였다. 그러나 2월 하순에 조정을 거친 금 가격은 3월 이후 등락을 거듭하며 변동성이 커지는 모습이다. 금마저 위험자산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주식은 어떨까. 부동산과 더불어 자산시장의 양대 산맥인 주식은 상대적으로 분위기가 좋다. 3월 이후 코스피지수가 1300선을 상향 돌파하는 등 상승세가 완연하다. 그러나 증시도 아직 방향에는 확신이 없다. 경기 방향 논쟁처럼 증시 역시 ‘대세 상승 초입이다’와 ‘아니다, 약세장 속 일시적 반등이다’는 시각이 각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증시 상승 동력은 ‘갈 곳 없는 돈’

그래서인지 지금의 증시 상승은 유동성 랠리, 즉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부동자금들이 돈의 힘으로 주가를 밀어 올렸을 뿐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토러스투자증권의 이경수 투자분석팀장은 “경기가 살아난다는 명확한 증거 없이 주가가 오르고 있다”며 “전형적인 유동성 랠리”라고 분석했다.

결국, 자산시장은 전반적으로 불확실성에 휩싸여있다는 결론이다. 물론 경기와 주가의 방향 논쟁이 벌어진 것은 긍정적인 뉴스로 볼 여지가 있다. 줄곧 내리막길만 걷던 경제가 일부에서 희망의 싹을 피워낸 결과이니 말이다. 그러나 투자자 입장에서는 즐겁게 받아들일 소식이 아니다. 불확실한 시기에는 투자 결정을 내리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자산가들에게 투자 조언을 하는 금융권 PB들은 3월 중순 이후부터 눈에 띄게 증가한 고객들의 문의에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김인응 우리은행 재테크팀장은 “3월 중순 이후 증시가 살아나면서 전화와 내방 고객들이 모두 늘어나는 추세”라며 “손실 난 자산 처리와 회복 방법, 부동산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등에 대한 질문이 많다”고 말했다.

증시 관련 문의 내용은 크게 둘로 나뉜다. 이미 주식을 보유중인 이들은 “보유 펀드의 손실이 급격히 줄고 있는데 환매를 하는 게 어떤가”하는 것이다. 반면 현금을 들고 있는 이들은 “지금쯤 주식시장에 들어가도(펀드에 돈을 넣어도) 되느냐”는 것이다.

불확실성 있지만, ‘주식’ 매력적

전문가들은 시간 여유가 있는 자금이라면 더 들고 갈 것을 권하고 있다. 단기 전망은 불투명하지만, 앞으로 2~3년 이후 시장은 지금보다 좋아질 것인 만큼 굳이 지금 손실을 확정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불확실한 장세에는 분할 매수와 분할 매도로 대응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조언했다. 적립식 장기 투자라면 언제든 시작해도 괜찮다고 한다.

신한은행의 이관석 재테크팀장은 “불확실성 때문에 단기적으로 안전자산 선호 현상은 더 갈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6개월~1년 정도를 내다본다면 부동자금이 주식시장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 팀장은 유동성 랠리가 나타나기 전이던 3월 중순까지는 투자 포트폴리오로 안전자산 대 현금성 자산 대 주식형 펀드 대 대체투자(금)의 비율을 5:2:2:1의 비율로 제시했다. 그러나 지금은 안전자산의 비중을 낮추고 대신 주식형 펀드 비중을 확대할 것을 권했다. 즉, 4:2:3:1의 비율로 조정하라는 것이다. 3월 이전까지는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짙어 안전자산을 최대한 확보해야 했지만 지금은 달라졌다는 것.

한편, 전문가들은 하나둘 발표되고 있는 국내외 기업들의 실적에 따라 5월엔 자산시장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며 실적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