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경기 변화가 핵심선행지표

미 가계금융 건전성 눈여겨봐야

대공황 이후 세계 최대의 경제위기, 100년 만의 자본주의 대위기, 전후 최대의 금융위기,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가장 심한 세계경기 침체 등등. 이런 어두운 수식어와 겁나는 표현들이 난무하는 요즘, 투자자들은 다음 두 가지의 의문을 품게 된다.

첫째 의문은 ‘그 수많은 경제석학들이 어찌 이다지도 무시무시한 대형 사고를 사전에 눈치 채지 못 했는가, 아니 정확한 예측은커녕 그럴 가능성에 대해 어쩌면 전혀 경고조차 하지 못했단 말인가’ 하는 것이다. 둘째는 ‘이토록 심각한 경제위기가 도대체 언제쯤, 어떤 과정과 경로를 거쳐  예전의 정상적인 경기 흐름으로 다시 복구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다.

아무리 파생상품이 베일에 가려 있고 투자은행들의 회계장부가 투명하지 못했다 해도 그것은 변명에 불과하다. 앞선 의문에서처럼 이번 위기의 태동과 진행, 그 폭발에 대해 무지했듯이 아마도 사람들은 이번 위기를 벗어나는 과정 또한 잘못 짚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래도 미국 발 금융위기의 본질을 다시 한 번 되짚고 현재의 세계경제 구조를 해부한다면 그나마 이 위기의 탈출 경로와 타이밍, 회복에 관한 작은 힌트라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미국 금융권 부채 조정이 위기 탈출 힌트

첫째로 이번 글로벌 위기의 진원지는 미국의 금융 부실이고 그 근본원인은 과도한 신용(빚) 팽창과 과잉 소비에 있었다. 그렇다고 볼 때, 무엇보다도 세계경제와 주가의 선행지표로서 미국 금융시장의 안정 여부를 지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즉, 미국 가계소득에 비해 과도했던 은행 대출금이 줄고 반대로 저축률은 오르고 미국 금융회사의 손실액 상각이 커지는 이른바 부채 조정(de-leveraging; 빚 줄이기)의 과정 속에 분명 위기 탈출의 힌트와 해답이 숨어 있을 것이란 사실이다. 세계 GDP의 4분의 1을 감당하는 동시에 GDP의 70%가 소비로 구성돼 있는 미국 경제의 회복을 빼놓고 세계경제 회복을 운운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다. 우리의 수출을 받아주는 선진국 경기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미국 가계의 부채 조정이란 점에서 원죄를 안고 있는 미국 가계 금융의 건전성 지표가 돌아서는지 여부에 먼저 촉각을 세워야 한다.

둘째로 미국의 신용 팽창과 과잉 소비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세계 자유무역과 신자본주의,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거대 자본의 힘이 숨어 있다. 즉, 2조달러에 달하는 중국의 경상수지 흑자와 1조3000억달러어치의 미국 채권 보유와 같은 상호 공생 궁합관계인데, 이를 달리 표현하면 다름 아닌 ‘글로벌 불균형’이다.

한국 경제와 증시가 제대로 된 반등 추세를 만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글로벌 수요가 축소에서 확장으로 반전돼야 한다. 그러려면 교역 불균형이 해소돼야 한다. 그래야 고장 난 뼈가 제대로 맞춰지듯 글로벌 경제 질서가 잡혀 각국 수요가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다시금 세계 불균형을 허용하면서 선진국 소비가 늘어나려면 중국 등 신흥국과 일본 등 일부 선진국의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지금보다 줄어야 한다. 이는 반대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개선되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수년간 쌓여온 불균형이 어느 정도 풀려야 우리의 수출 경기와 주가 또한 진정한 반등세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외환 보유고가 넉넉한 국가와 그 국부펀드들이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국가의 기업을 인수해주는 것도 일종의 글로벌 선순환의 선행지표가 될 수도 있다.

셋째로 중국의 경기 변화 모습이 우리 증시의 중요한 선행지표가 될 것이다. 중국은 건설 부문의 고용 유발효과가 높아 정부의 경기 부양책이 가장 잘 먹히는 경제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그동안의 재정 건전성과 사회체제, 거대 인구, 사회간접자본의 확충 필요성 등을 고려할 때 이번 위기 국면에서 정부 투자와 정부 소비의 역할이 기대된다. 또 그간 잠재 성장률이 실질 성장률을 꾸준히 상회해 왔고 인플레이션에 민감한 경제구조를 갖고 있어 최근 집값 하락 등 모든 가격 지표의 둔화와 물가 안정은 향후 성장 모멘텀에 매우 중요한 전제조건이다. 중국 경제의 절대적 영향권역에 들어 있는 한국 경제와 한국 증시의 중국에 대한 연동성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넷째로 이번 세계 금융위기의 본질이 자원을 물 쓰듯 하고 지구를 혹사시킨 데에 있다면 이를 믿겠는가. 적어도 이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더라도 자본주의가 또 다른 성장의 모델을 일궈내려면 인류는 이제 자원과 환경에서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더욱이 이번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사정없이 풀어버린 각국 통화와 재정 부실의 부작용을 잠재우려면 세계 각국은 반드시 인플레이션의 고삐를 잡고 에너지 절감의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증시에서 이른바 녹색성장주가 주목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들 관련기업들의 실질적인 성장과 획기적인 기술혁신 여부가 전 세계 주가와 한국 주가 움직임의 관건이자 바로미터가 될 것이란 점에 의심이 없다.

이제 끝으로 앞서 언급된 다소 무거운 구조적 변수들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가를 상승 추세로 반전시키는 계기는 자금시장, 즉 유동성 쪽에서 먼저 발생할 수도 있다.

실물경기보다 주가가 먼저 돌아서기도

실물경기가 변화를 보이기 한참 전이라도 주가는 일단 하락 추세를 멈추고 바닥을 견고히 다지거나 반전의 계기를 탐색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정책금리를 동결하고 초저금리를 유지한 경우 그 말미쯤 가면 주가가 먼저 돌아서고 그 다음 일정 시간이 지나 실물경기가 뒤늦게 회복되는 경우가 많았다. 주가 자체의 경기 선행성 때문이기도 하고 저금리의 한계에 부딪힌 스마트머니(현명한 투자자금)의 감각적인 배팅의 결과이기도 하다.

주가 상승을 알리는 신호는 금융시장 내부의 미세한 변화에서도 감지할 수 있다. 채권시장에서 신용등급이 낮은 채권금리가 슬금슬금 오르거나 만기가 긴 채권 수익률이 오르고 정크본드와 하이브리드 채권이 시장에서 잘 소화되는가 하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저가 부실기업 주가가 튀어 오르고 다음 경기를 주도할 냄새가 짙은 산업, 가령 이번 같으면 중국 관련 소비주나 녹색성장주들이 의미 있는 주가 저항선을 상향 돌파해 갈 때 우리는 이를 대세 상승의 신호로 당연 의심해 봐야 한다. 금융시장과 주식시장 안에서의 변화만큼 더 소중한 주가 선행지표는 세상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