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년간 세계 증시를 이끌어온 원동력은 선진국과 신흥국의 절묘한 궁합에 있었다. 미국의 수입과 신흥국의 수출, 선진국의 금융과 개도국의 실물은 아무리 봐도 환상의 콤비였다. 선진국은 돈을 찍어냈고 신흥국은 그 돈으로 공장을 지어 전 세계에 물건을 싸게 공급했다. 하지만 여기엔 결정적 약점이 내재돼 있었다. 즉, 선진국의 소비가 지나칠 정도로 통화 팽창과 신용대출에 의존했다는 점과 신흥국 경기가 인플레이션에 너무 쉽게 노출됐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은 금융위기가 중국에서 먼저 시작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취약한 구조를 지닌 경제는 알고 보니 미국이었다. 빚으로 굴러온 미국 경제는 그간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일단 모순이 표출되자 사태는 봇물 터지듯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미국의 금융위기와 경기 침체는 일단 신흥국 경제에 크게 한방을 날리고 시작했다. 한국 주가가 꼭지에서 반 토막, 3년 전 본격 상승 전 가격으로 급전직하한 것은 우선 자기 코가 석자라 현찰을 챙기는데 급급해진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도세가 주요인이었다.

여기에 모두가 철썩 같이 믿었던 세계 경제의 기반들이 흔들린 점도 지난해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증시가 폭락한 주요인이었다. 즉, 미국 경제에 대한 신뢰, 세계 자유무역에 대한 신념, 중국의 든든한 성장 스토리 등이 도전을 받은 것이다. 경기가 단지 꼭짓점을 찍었다는 순환적 논리를 넘어서 그동안 글로벌 경제의 성장 시나리오 자체에 대한 의심에 전 세계 주가가 넋을 잃고 추락한 것이다. 그렇게 2008년 증시는 혼돈 속에 마감되고 새로운 기축년의 장이 열렸다.

어려움이 더해지는 2009년 증시 여건

지난 수십 년간 한국과 세계 증시는 수차례 중대한 위기국면을 맞았지만 그때마다 이를 잘 이겨내 왔다. 하지만 이번 위기는 몇 가지 점에서 과거와 조금 다르다.

첫째로 세계 경제의 5분의 1을 차지하고 세계 금융시장을 쥐락펴락하는 미국이 그 위기의 진원지라는 점에서 긴장감이 더해진다. 2000년대 들어 미국은 4조달러 남짓한 실물을 키우는데 20조달러가 넘는 민간부채의 증가를 허용했다. 소비자를 빚더미로 몰아넣은 미국 은행들이 이젠 전 세계의 골칫거리다. 미국 국채와 모기지 관련 자산이 전 세계에서 유통되는 등 세계 실물의 10배에 달하는 구조화된 금융 상품이 세계 각국으로 팔려 나가는 과정에서 부실이 전염돼 글로벌 금융의 동반 부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둘째로 작년을 금융위기의 원년이라고 한다면 올해는 금융이 실물에 영향을 주고 그 나빠진 실물이 다시 금융에 부담을 주는 복잡한 한 해가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금융위기의 수습이 예상보다 항상 길어지는 이유는 금융이 결코 실물경제와 동떨어져 홀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쌓이는 재고를 이기지 못한 기업이 고용을 줄이고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과정에서 가계 부문의 고통이 커지고 이 때문에 대출 연체율이 오르는 등 금융 부실이 확대되는 악순환의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셋째로 특히 올해 한국 경제가 불안한 이유는 수출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아 금융위기로 인한 미국의 소비 감소와 중국의 설비투자 조정이 여과 없이 우리 경제에 영향을 줄 것이란 사실 때문이다. 더욱이 집값 하락과 지난해 금융자산의 손실로 인해 우리나라 중산층의 소비 여력은 크게 훼손된 상태다. 현재 국내 은행들의 부실 규모가 위협적인 수준은 아니라 할지라도 대내외 경기가 장기간 침체를 보일 경우 금융 부실이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이 증시에 또 다른 부담 요소라 하겠다.

4분기 주가 반등 예상

물론 올 상반기 금융 불안과 경기 둔화의 관문을 잘 통과하면 주가는 이 저금리 상황에서 얼마든지 극적인 반전을 연출할 수 있다. 특히 전년 같은 기간 대비 기저효과로 올해 4분기부터는 대부분의 경기지표가 크든 작든 반등할 확률이 높다. 여기에 미국의 금융 사정이 안정되고 돈이 돌기 시작하면 의외의 주가 반등 가능성도 잠재돼 있다. 특히 올해 신흥국 주가는 양극단을 오고갈 확률이 높다. 그 중심에는 역시 중국이 있다. 올해 중국은 일시적으로는 가장 극심한 경기 침체 국가로 지목될 가능성이 높지만, 그 후 가장 탄력적인 경기 회복 국가로 지목될 가능성 또한 높다.

하지만 좀 더 긴 호흡으로 증시를 조망할 때, 전 세계 증시는 2010년이 더 걱정이다. 통화팽창으로 빚어진 문제를 풀기 위해 각국은 지금 어쩔 수 없이 통화를 더 풀고 제로금리를 선택하고 있다. 경기 부양을 위한 경쟁적 재정지출은 가계부채에 이어 심각한 정부부채 문제를 잉태하고 있다. 중장기 달러 약세의 압력은 세계 경제에 또 다른 걱정거리이며 미국이 전 세계 돈을 다 끌어다 금융위기를 틀어막은 터에 신용이 낮은 국가와 기업들의 자금난은 여전히 심각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아무래도 앞으로 수년간 세계 주가의 탄력은 지난 몇 년간의 역동성을 닮기는 어려워 보인다. 주식시장이 때로는 드라마틱한 반등을 보일지라도 중장기적으로는 이러한 글로벌 부채 조정과정 속에서 확고한 상승 추세를 그리기란 그리 녹록하지 않아 보인다.

지금 주가수익비율(PER) 10배와 주가순자산배율(PBR) 1배 내외인 한국 증시는 일단 올 상반기 정도의 경기 침체 요인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주가에 부담이 되는 악재라면 기업실적이 이제 막 나빠지고 있다는 점이다. 겨울에 주가가 싸다는 것은 지난여름에 비해 싸다는 것일 수도 있고 지난해 이익에 비해 싸다는 것일 수도 있다. 경기가 계속 나빠진다면 이미 많이 떨어진 주가라 해도 반드시 싸다고만 말할 수는 없다. 강세장에서 이익이 계속 늘 것으로 보고 높은 프리미엄을 부여했듯이 약세장에서는 이익이 계속 줄 것을 염려해 주가가 실제 가치보다 더 하락할 수도 있다. 그래서 올해는 아니 적어도 상반기까지는 추상적인 재료보다는 현실 가치, 막연한 재료보다는 구체적인 실적, 부동산보다는 현금능력을 중시하는 보수적 투자 마인드가 보다 유리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