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속 돈을 어디에 굴려야 안전할까. 모두들 해법 찾기에 골몰해 있다. 그러나 명쾌한 답을 제시해 줄 해결사는 주변에서 찾기 힘들다. 이럴 땐 돈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살짝 엿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가히 ‘동물적인’ 감각으로 재테크에 나서고 있는 강남부자들의 요즘 재테크 트렌드를 따라가 봤다.

오피스빌딩·상가 등 부동산 투자 '입질'

금융 및 현금자산 100억원을 보유하고 있던 강남부자 김모씨(68). 그는 얼마 전 금융권에 묶어뒀던 채권, 예금자산과 현금으로 강남 지역에 10층 규모의 빌딩을 매입했다. 월 임대수익만 3000만원에 달한다. 강남 빌딩 가격이 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채권 수익률이나 예금의 이자수익보다는 훨씬 낫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한 금융회사의 PB센터가 개최한 부자들을 대상으로 한 재테크 세미나 현장. 금융자산만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에 이르는 부자 100여 명이 참석했다. 1주일에 1회 열리는 이 세미나의 주제는 부동산 투자 전략 외에도 상속 및 증여, M&A, 금융 상품 투자 전략 등 다양하다. 이 PB센터의 전체 고객 유치 중 30%가 이 세미나를 통해서 이뤄진다. 부자들은 “지금과 같은 경제위기가 일생일대의 투자 기회”라고 말한다. 

부자들이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다. 한 마디로 ‘정중동(靜中動)’, 예금이나 채권 등 안전자산에 돈을 묻어두고 있지만 눈과 귀로는 투자 기회를 엿보고 있다. 일반인들이 지금은 움직이지 않는 것을 투자라고 여기는 반면 부자들은 지금 같은 혼란기를 오히려 최고의 투자 황금기로 생각하고 있다.

IMF 외환위기와 비교하면 이번 금융위기에서 부자들은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안전자산에 대한 기준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강남부자들이 주식과 펀드, 부동산에 돈이 묶여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주식이나 펀드를 현금화할 시기도 아니다. 부동산 시장의 경우에도 정부가 각종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아직은 요지부동이다. 전문가들은 부자라고 해서 이런 상황에서 고수익을 내는 특별한 투자비법을 갖고 있진 않다고 말한다.

“시세차익 기대 어려워” 아파트는 외면

하지만 이 와중에도 ‘돈의 길목’을 지키면서 주저 없이 투자하는 부자들이 있다. 모두가 방향을 잃고 어디로 갈지 몰라 우왕좌왕할 때, 변화를 미리 읽고 돈의 길목을 지키는 것이다. 최근 부자들이 지키고 있는 길목은 강남 지역의 부동산. 특히 오피스빌딩이다. 여운봉 미래에셋생명 스타타워지점장은 “정부의 각종 부동산 대책으로 인해 강남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자들은 이 지역의 빌딩 물건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여 지점장은 최근 100억원대 빌딩 매매를 성사시켰다.

그는 “일부 부유층이 최근 부동산 값 하락기를 이용해 더 큰 건물을 사거나 비강남에서 강남으로 옮기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또 “충분한 현금 유동성이 있거나 기존 건물을 팔아 자금을 확보할 능력이 있는 부유층들은 장기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을 보고 신중하게 투자를 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일수 기업은행 PB고객부 부동산팀장은 “절대적인 투자 관망시기임에도 예금 금리 등이 하락하면서 부자들이 부동산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며 “최근 강남 지역의 35억원짜리 8층 빌딩 매입을 주선한 바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경매시장에도 싼값에 부동산을 잡으려는 여유자금이 몰리고 있다. 물론 아파트보다는 수십억원 이상의 빌딩이 타깃이다. 부자들에게 아파트는 더 이상 황금알을 낳은 거위가 아니다. 특별한 호재가 없는 한 이제는 시세차익을 기대하기도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부자들의 관심은 왜 강남을 떠나지 않을까. 강남이 여전히 부동산 투자불패 지역으로 꼽히는 것은 부자들의 유입이 끊이질 않기 때문이다. 부동산 컨설팅업체인 유엔알컨설팅의 박상언 사장은 “강남에 살기 위해 높은 임차료나 매매 가격 등 프리미엄을 기꺼이 치루겠다는 부자들이 꾸준히 유입되기 때문에 강남 부동산의 자산가치가 꺾이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일수 팀장은 “집값 하락기에도 상대적으로 비싼 강남의 부동산을 구입하는 것이 투자에 유리하다”며 “이들 지역은 공급은 적고, 수요는 많기 때문에 불황기에 상대적으로 가격 하락 폭이 적고, 상승기에는 다른 지역보다 크다”고 말했다.

강남 부동산의 가장 큰 투자 메리트로는 ‘안정성’도 꼽힌다. 여운봉 지점장은 “강남 지역은 사회기반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수많은 빌딩 간의 유대관계가 긴밀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부자들의 투자 트렌드와 관련하여 전문가들은 일반 투자자들의 경우 불황기에 ‘대형 평형으로 갈아타기’를 시도해 보라고 권한다. 효과적인 갈아타기를 통한 넉넉한 재무설계의 기회라는 것. 김일수 팀장은 “중대형의 공급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고 있어 다시 중대형이 인기를 얻을 시점이 온다”며 “지금 시점에서만 바라보지 말고 미래 대비 투자 개념으로 나설 것”을 조언했다. 최근 정부가 침체된 부동산 경기를 살리기 위해서 각종 규제 완화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현명한 실수요자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기회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장기 적립식 펀드 투자에도 관심 많아

금융 상품을 통한 자산 증식에 대한 관심도 여전하다. 국내 주식형 펀드 등에 대한 관심은 시들해졌지만 중국 주식 및 펀드는 부자들에게 다시 주목받고 있는 투자 포트폴리오다.

중소기업 CEO인 정모씨(55)는 지난 연말부터 중국 펀드에 매달 1000만원씩 투자하고 있다. 일반인들이 반 토막 난 중국 주식과 펀드를 거들떠보지 않을 때 과감히 투자에 나선 것이다. 경제 여건이나 기업가치에 비해 과도하게 하락했다는 판단에서다. 10년 정도 장기적으로 보유하면 결국 자산가치가 오를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의 중국 주식 투자 전략은 ‘손톱이 자라 손바닥을 뚫을’ 정도의 인내로 지독하게 기다리는 것이다.

이러한 장기투자 전략은 일반인들도 해볼만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여운봉 지점장은 “일반 투자자들도 글로벌 금융 불안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소액으로 매월 일정 금액을 주가가 과도하게 떨어진 국가에 속한 업종의 편입 비율이 높은 글로벌 적립식 펀드에 넣어두면 후에 의외로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