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국내외 주가가 급락함에 따라 지난 2007년 말 집중적으로 주식펀드로 몰렸던 투자자들의 고통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중국을 비롯한 해외펀드 투자자들은 40~50% 이상 손실을 봐 거의 ‘패닉’에 가까운 상황이다. 미국 내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로 시작된 금융위기는 글로벌 신용경색과 인플레이션 압력 등이 맞물리면서 세계 경제의 위기로 확산되고 있다. 이 여파로 국내 금융시장은 원/달러 환율과 금리가 크게 오르고 주가는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불안감이 가중됐다. 게다가 향후 세계 경제가 지난 4년간의 골디락스 경제(고성장-저물가)를 마감하고 장기적인 침체 국면에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당장 어떤 투자전략을 세워야 할지 예측한다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한치 앞을 내다보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럴 때일수록 시장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한 발짝 물러나 봐야 뭔가 볼 수 있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자칫 함부로 움직이기보다는 차분하게 사태를 관찰하며 보다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언제나 그렇듯 위기의 상황이 또 다른 기회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의 이동 시기…한 발짝 물러나

멀리 내다보는 지혜 필요

역사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이 있듯 요즘처럼 ‘시계 제로’일 때는 역사를 반추해 보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1600년대 네덜란드 튤립 투기에서부터 1690년대 영국 주식회사 투기와 1820년대 이머징 마켓 투기, 1845년 철도 버블, 미국 금권정치시대의 투기, 1929년 대공황, 1987년 블랙먼데이, 저축대부조합 부실 사태 등 금융 투기와 위기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몇 가지 공통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첫째, 아무도 버블을 예측할 수 없으며 지나고 나서야 버블임을 알 수 있다. 지난해 말 전 세계 주가가 고공행진을 할 때만해도 요즘과 같은 사태를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일부에서 경고의 목소리가 나오긴 했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원래 금융 버블은 지나고 봐야 ‘버블’임을 알 수 있다.

둘째, 새로운 산업이나 기술이 도입될 때 이에 따른 낙관적인 기대가 퍼지면서 투기가 발생해왔다. 튤립 투기의 경우 화훼 산업의 발전 가능성에 대한 기대에서 비롯됐으며 주식회사, 철도, 인터넷 등도 모두 신산업과 기술에 대한 과도한 낙관에 기인한 것이다.

셋째, 차입을 통해 상승을 부채질하지만 버블이 붕괴할 때는 하락이 가속화됐다. 미래 현금흐름을 현재로 당겨서 하는 투자나 갖고 있지도 않은 주식을 빌려서 파는 공매도 등은 투기의 역사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금융위기 역시 주택을 담보로 하는 무리한 대출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부채는 투기를 가속화시키는 필수요소인 셈이다.

넷째, 인간의 탐욕과 공포로 인해 투기와 금융위기가 반복돼왔다. 지난 3세기 동안 벌어진 금융위기를 보면 투자 대상과 연도 등만 달랐지 본질적인 모습은 매우 유사하다. 1600년대 튤립 투기의 양상에다가 최근의 금융위기를 그대로 대입하더라도 결코 어색하지 않다.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탐욕과 수익에 대한 욕망은 보편적인 인간의 성향”이라며 “이는 시간과 공간을 떠나 모든 사람들 속에 자리 잡고 있다”고 이미 18세기에 갈파했다. 금융 저널리스트이면서 역사가였던 제임스 그랜트 역시 “과학과 기술은 크게 진보했지만 금융은 반복된다”고 말했다. 결국 3세기 전 투기와 현대의 투기가 유사한 것은 인간의 탐욕과 수익에 대한 욕망, 공포 등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의 이기심에서 출발한 자본주의 체계에서는 투기와 버블, 금융위기 등이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어찌 보면 자본주의는 이처럼 비용이 많이 드는 체제라고 할 수 있다.

다섯째, 공통점은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으로, 금융위기 이후에는 어김없이 다수의 주머니에서 소수의 주머니로 부(富)가 이동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중요하다. 결국 금융위기는 어떤 형태로든 해결되며 이 과정에서 또 다른 부의 이동이 발생한다는 점에 집중해야 한다. 비록 고통스러운 시간이지만 지금이야 말로 냉철한 자세와 인내로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침체기,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미국의 부동산 및 금융시장 불안, 유가 상승에 따른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경제 침체 우려 등 온갖 악재로 투자자들은 이미 ‘공포’를 넘어 거의 ‘포기’ 단계에 이를 정도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자칫 잘못된 판단을 하기 쉽다는 것이다. 따라서 함부로 움직이기보다는 한 발짝 물러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일반적으로 손실 중인 투자자는 평정심을 잃기 쉬운데 이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한계 때문이다. 즉, 우리 뇌 중 일부인 ‘편도체’의 오류 때문에 누구나 지나치게 공포를 느끼기가 쉽다. 편도체는 사람의 양쪽 귀 위 끝부분과 같은 높이의 뇌 심층부에 있는 작은 복숭아 모양의 조직이다. 어떤 위험에 직면하게 되면 이 부분이 경보체계처럼 작동해 공포나 분노와 같은 강렬하고 빠른 감정을 유발한다. 편도체는 우리의 몸을 일상생활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셈이다. 하지만 편도체가 워낙 민감하다 보니 신체적 위험뿐만 아니라 다양한 자극에 대해서도 왕왕 과민하게 작동하기도 한다. 마치 건물의 화재경보기가 간간이 오작동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과 같은 모양이다. 이 때문에 실제로 돈을 잃었는지 아닌지 파악하기도 전에 시장과 싸우거나 혹은 도망가는 반응을 명령한다. 편도체가 투자에 있어서는 지나친 공포감으로 자칫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요즘과 같이 주가 침체기에 범하기 쉬운 ‘편도체의 오류’는 어떤 게 있을까? 첫째, 다른 유형의 펀드로 갈아타기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주가가 불안하니 채권이나 채권펀드로 자산을 옮기는 식이다. 기차표나 극장표를 사기 위해 짧은 줄로 얼른 옮겨갔는데 오히려 바꾸기 전 줄이 더 잘 빠지는 것을 경험해 본적이 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좋다고 해서 갈아타기 했다가 후회하게 되는 경우는 수없이 많다. 얼마 전 많은 투자자들이 수익률 고공행진을 하던 원자재 관련 펀드로 옮겨갔다가 갑작스런 하락 반전에 당황해야 했다. 유망한 투자 상품으로 언론에 오르내리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 때는 이미 상당히 많이 오른 경우가 많다. 주식과 채권펀드만 놓고 보더라도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는데 언제 어떤 유형이 더 높은 성과를 낼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지난 2006년 부진한 주식펀드 수익률(1.04%, 2006년 말 기준 1년 수익률)과 상대적으로 높은 채권펀드(4.94%)의 성과만 보고 2007년에도 채권펀드에 몸을 실었다면 연말에 가서 후회의 한숨을 쉬어야 했을 것이다. 2007년에 채권펀드가 4.13%의 성과를 올린데 반해 주식펀드는 무려 41.99%의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둘째, 더 이상의 손실을 줄이겠다는 생각으로 중도환매를 한다. 마침 환매 이후 주가가 계속 떨어진다면 “역시 환매하길 잘했다”며 자신을 위안하게 된다. 하지만 이후 또 다른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환매한 현금을 어디에 투자해야 하는가?” “주식펀드로 언제 돌아가야 하는가?” “현금으로 언제까지 들고 있어야 하는가?” 등등 새로운 문제가 기다린다. 자칫 판단이 어긋날 경우 가만히 있었더라면 얻을 수 있었던 기회비용뿐만 아니라 더 큰 투자 손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밖에 매매에 따른 각종 거래비용과 정신적 스트레스 등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증시 격언에 “떨어지는 칼은 만지지 말라”는 말이 있다. 특히 손실 상태에서 환매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직접 주식투자에서 일정 정도 하락하면 매도하는 ‘손절매’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는 펀드투자에 적합하지 않다. 펀드투자와 주식 종목 투자가 다르기 때문이다. 주식 종목은 수익률이 주가와 연관된 단 하나의 실체다. 따라서 쌀 때 사고 비쌀 때 파는 방식으로 투자한다.

이에 반해 펀드는 투자전략에 따라 주식과 채권 등 여러 투자 자산으로 이뤄진 포트폴리오다. 포트폴리오의 장점은 분산투자에 있다. 몇몇 종목의 가격이 떨어지더라도 다른 자산에 의해 가격 하락이 상쇄돼 전체적인 포트폴리오의 자산가치가 덜 하락하거나 오히려 오르기도 한다. 결국 펀드투자는 주식 종목 투자처럼 시장 상황에 따라 사거나 파는 것이 유용하지 않은 셈이다.

셋째, 매월 일정액씩 투자하던 적립식 투자를 중단하는 것이다. 신문 등에서 연일 ‘수익률 폭락’, ‘주가 하락’, ‘경기 침체’ 등의 우울한 제목만 보다 보면 일단 투자를 중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향후 주가가 반등하는 것을 보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논리다. 주식투자만으로 억만장자가 된 ‘투자의 현인’ 워런 버핏은 이렇게 말했다.

“신문에서 ‘주가 폭락, 투자자 손실’이라는 헤드라인을 보면 미소를 지으세요. 그리고 ‘시장 하락, 매도자 손실, 매수자 이득’으로 고쳐 생각하십시오. 기자들은 종종 이러한 자명한 이치를 잊곤 하지만 매도자가 있으면 매수자가 있고, 한쪽이 손해를 보면 반드시 이익을 얻는 쪽이 있게 마련입니다.”

적립식 투자는 쌀 때 많이 사서 가격이 오를 때 보다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투자 방법이다. 따라서 주가 침체기는 싸게 많이 살 수 있는 투자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요즘과 같은 시장 상황에서는 투자를 중단하기보다는 오히려 늘리는 것이 향후 높은 성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마치 장사를 하는 데 가격이 쌀 때 많이 사뒀다가 가격이 비싸질 때 팔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같은 ‘편도체의 오류’를 피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졸음이 마구 몰려오는 데 억지로 잠을 참는 것 같이 본능을 억제해야 하기 때문에 어렵다. 따라서 이러한 잘못된 투자 판단을 피하기 위해서는 우선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방법이 가장 현실적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자산관리 잡지 <머니(Money)>의 선임필자인 제이슨 츠바이크는 “펀드 가격의 추이를 계속 확인함으로써 자신을 극도로 조급하게 만들지 말고 확인 횟수를 줄여 1년에 네 차례만 가치를 점검해야 한다”며 “투자한 종목을 충동적으로 자주 확인하는 것은 자신의 금융수익을 줄일 뿐만 아니라 생활의 나머지 부분에서 귀중한 시간을 빼앗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장이 급변할 때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잘못된 결과로 이어지기 쉽다. 차라리 가만히 두는 것이 훨씬 낫다. 이 기회를 투자와 관련된 좋은 책들을 찾아 읽는 기회로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