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사’로 유명한 경제평론가 박경철씨는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수호신으로 불린다. 철저히 일반인들의 가려운 곳을 팍팍 긁어주는 의견을 개진해서다. 어느 곳에도 적을 두지 않고, 이해관계에도 얽히지 않은 순수함이 거침없는 발언의 원천이다. 이는 개미 투자자들에게 큰 지지를 받는 요인이기도 하다. 당사자는 인터뷰 내내 “거품 섞인 이미지가 부담스럽다”는 말로 깊은 속내를 내비쳤다. 자신의 능력이나 역할이 제한적임에도 맹목에 가까운 지지가 때론 고마움의 단계를 넘어 불편하다는 의미다. 그가 털어놓은 한계는 여기까지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을 구할 능력은 없습니다. 그러나 수심의 깊음을 알아보는 눈은 다행히 갖고 있어 ‘접근금지’ 경고는 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비하면 지금은 저가…

그러나 투자 올 스톱하고 관망할 수밖에”

신중하면서도 과묵한 이미지의 그는 올 하반기나 내년 초에 2차 금융기관 부도가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아직 공론화되지 않았지만 개연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핵심은 민간부채가 너무 많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는 현재 부채 구조를 봤을 때 민간경기가 좋아질리 만무하다고 안타까워했다. ‘경제수장’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에 대해서는 극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자타가 공인하는 세제 전문가인 강 장관이 현 시점에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라는 지적이다.

“폭풍우가 세차게 몰아치고 있는데 비가 온 뒤에 브랜드 디자인을 구성할 인사가 경제수장을 꿰차고 있으니 메인스트림이 잘못된 것이죠. 태평성대에 어울리는 인물입니다.”

9월 위기설을 잠재우겠다며 나섰던 외국환평형기금채권 발행을 일례로 들었다. 너무나 한심하고 답답했다는 것이다.

“9월 위기설은 진작부터 나돌았습니다. 그렇다면 진작에 발행했어야 했는데 그 시점이 다가와 발행한다면 우리가 원하는 가격에 되겠습니까. 더욱이 외환보유고가 얼마인지 실시간 우리 패를 다 보여주는 것을 보고 위기관리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다시 한번 현 시점은 세제 전문가가 아닌 환율 전문가나 무역 전문가가 나서서 경제 정책을 이끌어야 한다고 일갈했다.

한국 경제가 어렵다고 난리입니다. 해법은 무엇일까요.

- 더 이상 제조업 기반을 훼손해선 안 됩니다. 지적 역량이나 혁신 DNA를 적극 활용해 제조업을 필사적으로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지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더 높일 수 있는 제조업과 미래를 대비해 나아가야 하는 서비스의 균형을 맞춰가는 겁니다. 아울러 일반인들은 절대적으로 빚을 줄여야 합니다. 하루빨리 채무에 대한 가혹한 구조조정을 시행하십시오.

우리나라가 직면한 경제위기 핵심은 무엇인지요.

- 신용위기입니다. 돈이 있어도 떼일 것 같아 빌려주지 않는 것이 신용위기죠. 이는 주식과 부동산에 얹혀있는 가계부채와 직결됩니다. 경제 여건이 침몰해 소득, 소비, 경기가 나빠지는 악순환에 빠지면 결국 가계부채의 뇌관이 터져 수습이 불가능해집니다. 그러면 거품이 꺼지면서 신용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를 잘못 대응하면 뱅크런(예금 인출 사태)으로 인한 경제 아노미(무규범) 현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지금의 경제위기 상황을 외환위기 때와 비교하는 시각이 많습니다.  

- 구조적으로 보면 외환위기 당시와는 상황이 많이 다릅니다. 피부에 와 닿는 위기의 심각성으로 따지면 외환위기 때보다는 덜하다고 봅니다. 외환위기 때는 산업구조나 시스템 붕괴 이후 투기적 가수요를 불러일으켜서 망가진 경제를 살리려고 했죠. 지금은 그 당시 문제가 원인이 아닙니다. 투기적 가수요의 결과로 빚어진 문제죠.

현 증시는 악재입니까, 호재입니까.

- 악재의 끝은 호재이고 호재의 끝은 악재죠. 맞는 말이지만 틀린 말입니다. 가장이란 말은 어느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맞추면 현자죠. 결과만이 말해주기 때문에 우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것을 알면 금융시장을 제패하지 않았겠습니까.

현 상황에서 주식투자를 해야 합니까, 하지 말아야 합니까.

- 과거에 비하면 지금은 저가예요. 싸다는 말이죠. 그러면 저평가니 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유자산이 있다면 투자할 만도 합니다.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선뜻 매입하라는 말을 못해요. 국내외 모두 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이죠. 현재로선 투자는 올 스톱하고 관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때 ‘부채도 자산’이라는 말이 나돌았습니다. 부채 청산을 강조하는 이유는요.

- 인간은 탐욕이 문제입니다. 투자는 수익을 동반한다는 지극히 잘못된 망상을 갖고 있죠. 시장 환경이 좋든 나쁘든 부채를 떠안고 투자한다는 게 용납돼선 안 됩니다. 빚을 지는 건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것입니다. 결국엔 노예가 됩니다. 가장 중요한 투자는 빚을 없애는 것이죠.

개인 투자자들이 주식시장에서 돈 벌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 일반인들이 주식시장에서 돈 벌 확률은 5% 미만입니다. 투기판에 들어왔다는 이유만으로 돈을 벌지는 못합니다. 주식이란 자리를 털고 그만 둘 때 수익을 내야 합니다. 도박판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개미 투자자들은 수익을 내면 내는 대로, 잃으면 잃은 대로 주식시장을 못 떠나고 맴돕니다. 결과적으로 성공률은 5% 미만에 그칩니다. 자산이 필요로 하는 부의 금액까지는 노동을 통해 채운 뒤 그 나머지 잉여자산을 투자하면 승률이 높아지지요. 하지만 그 부족분을 채우려고 한다면 실패는 자명하고, 그것은 명백한 투기입니다. 

개미 투자자들 사이에서 수호신처럼 떠받들어지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 사실 제 전망이 옳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실수도 많았고 때에 따라 저 때문에 손해를 볼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작은 실책은 감싸주고 넘어가더군요. 금융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강자들 틈에서 아무 이해관계 없이 목소리를 내는 저에게 호의를 베푼다고 생각합니다. (개미 투자자들의) 대표성을 부여하고 싶은 거 아닐까요. 솔직히 국민연금의 주식투자 확대와 관련해 금융권 관계자들은 비판할 수 없습니다. 수익과 직결되는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는 아닙니다. 우리가 낸 돈 곱게 지켜 달라고 비판하는 것이죠. 일반인들이 저를 지지해주는 이유는 제가 잘나거나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세상 밖으로 의견이 노출되는 통로가 유지되기 바라는 거죠. 

예측이 빗나갈 때도 있었죠?

- 신이 아닌데 당연하죠. 항상 맞으면 제가 왜 여기 있겠습니까. 지난해 ‘한국 증시 고점론’ 전망은 맞았지만 향후 ‘1500포인트 조정 후 반등’ 전망은 빗나갔죠. 작년 9~10월 중국 펀드 운용사를 비판하면서 고점론을 주장했습니다. 금융권의 분석가들은 비웃었죠. 당시 5500포인트였던 상하이지수가 2000포인트까지 떨어지고, 다우지수는 10000포인트가 무너질 것으로 봤습니다. 그리고 2000포인트를 넘어섰던 코스피지수는 1500포인트 선에서 조정을 거친 뒤 반등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당시는 자산시장의 문제점을 거품 측면에서만 봤던 것이죠. 신용 거품의 구조에 대해선 생각이 짧았습니다. 미국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문제가 제일 심각하고, 중국은 산업 구조조정이 심할 거라고 봤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상대적으로 그 위험성에서 다소 떨어져 있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죠. 결과적으로 전망이 빗나갔고 그 오류를 인정했습니다.

 

주식투자에서 바닥에 들어가면 성공한다고 하지만 맞추기가 어렵지 않을까요.

- 바닥은 아무도 모릅니다. 오늘일 수도 있고, 내일일 수도 있고 한참 후일 수도 있죠. 저점을 정확히 맞출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점을 정확히 포착해 투자하겠다는 건 인간의 탐욕에 불과하죠. 극단적 상황이 시장 가격에 반영된 거면 지금이 바닥이고, 또 다른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면 바닥이 아닌 것이죠. 결과는 한참 후에나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투자이론에 점수를 매긴다면요.

- 높게 주면 교만하고 낮게 하면 겸손하다고 하겠죠. 75점을 주고 싶네요.

남들에게 직업이 무엇이라고 말하는지요.

- 직업은 엄연히 의사입니다. 그 외 경제 현상이나 투자이론 공부는 일종의 취미생활이죠. 문제는 거품이 많아 주변의 오해를 많이 산다는 것이죠. 거품 때문에 별의별 사람들을 많이 만납니다. 제 거품 섞인 이미지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의학공부하기도 바빴을 것 같은데 언제 투자이론을 연구했는지요.

- 제가 80년대 학번인데 대학시절 투자이론을 처음 접했습니다. 영어공부 삼아 <타임>, <뉴스위크> 등을 보는데 주식과 관련된 내용이 자주 헤드라인에 올라오더군요. 그때 지적 호기심이 발동해 미국에 있는 선배를 통해 주식투자 관련 서적을 구입한 뒤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대형 서점에 가보니 주식 관련 서적이 전무하더군요. 객장도 초보적 단계였습니다. 아마 10~20년 후면 우리도 미국처럼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죠.

의사, 경제평론가, 칼럼니스트, 사외이사 등 활동으로 바쁠 것 같습니다.

- 원래 지적 호기심이 많습니다. 한 가지도 제대로 못하면서 이것저것 하는 것을 박이부정(博而不精)이라고 하죠. 널리 알지만 정밀하지 못해요. 한 가지를 잘 하는 사람은 그 일 하기도 바쁘지만 저 같이 한 가지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이 여러 가지 하는 거지요.

그는 땀 흘려 벌지 않으면 투기라며 주식투자는 투기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어 곳간에 쌓아둔 금액이 많고 적음을 떠나 당사자가 판단한 액수를 모을 때까지는 절대 한 눈 팔아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투자를 핑계로 투기판에 나서지 말라는 얘기다.

“투자는 잉여자산으로 해야 합니다. 여유자산을 투자로 모으려는 행위는 투기에 불과합니다.”

그는 주식투자에서 손을 뗀 지 오래됐다. 일종의 자기검열이다. 법적으로 하자는 없음에도 도의적 차원에서 관심을 끊었다. 현행 증권거래법(42조)에는 증권회사의 임원 및 직원은 유가증권의 매매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돼 있다.

“투자자의 위치에서만 벗어났을 뿐입니다.”

재테크 포트폴리오도 대부분 자신이 직접 하지 않고 신뢰하는 곳에 맡긴다고 했다.

그는 일부 운용사 중심으로 권력화가 형성됐다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증권사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에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못하죠. 여기서 정보의 불공정성이 발생합니다.”

결국 경박한 예측, 맹목적인 장밋빛 전망이 남발한다는 것이다. 특정 운용사의 권력화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수차례 언급했다. 그는 “시장의 건강성을 위해 바로잡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국 증시와 관련해 그는 “성장통을 앓는 사춘기”라며 “잘못 보내면 폭삭 망가진다. 잘 극복해 나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시종일관 동서양 철학을 넘나들며 독특한 재미를 안겨준 그는  어느 사안이든 논리정연하면서도 차분하게 설명했다. 모르는 게 없는 만물박사에 다가왔을 정도다. 원래 술, 담배를 하지 않고 운동도 좋아하지 않는 그의 취미는 무한한 지적 호기심이다. 그의 안동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는 대신 무려 1만2000권의 다양한 방면의 책들이 있다. 1남1녀의 아빠인 그는 아이들에게 좋은 뒷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쓰며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결코 눕지 말 것을 강조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