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0월19일, 1997년 10월27일, 2001년 9월11일, 2008년 9월16일. 이 네 가지 날짜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답은 ‘미국 주가가 폭락한 날’이다. 역사상 가장 하락 폭이 컸던 블랙 먼데이, 아시아 외환위기에 따른 주가 급락, 9·11테러에 따른 주가 폭락 그리고 리먼브라더스와 메릴린치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바로 그 날들(나열된 날짜 순서대로)이다. 그런데 이 날짜에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주가 폭락 이후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는 점이다. 놀란 가슴에 무턱대고 주식을 집어 던진 수많은 이들이 있은 덕분이다.

예측 가능한 상황보다 불확실성에 연동

작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글로벌 주식시장에 가장 자주 등장한 용어는 바로 ‘투자심리(Sentiment)’다. 2008년 주가 흐름 또한 투자심리의 영향이 컸다. 

투자심리는 예측 가능한 상황보다는 예측이 어려운, 즉 불확실성에 가장 크게 연동된다. 신용위기가 어디까지 잠복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 향후 경제가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과도한 낙 폭을 보이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실질적인 시장의 모습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불안한 투자심리 때문에 실체를 놓치는 실수를 자주 범하게 되는 점이다. ‘주가는 결국 실적에 수렴한다’는 말이 있다. 단기적으로 급등락이 있더라도 펀더멘탈(Fundamental: 경제기초)을 벗어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 두려웠던 외환위기도, IT버블 붕괴도 극복하기 힘들었지만 결국 정상화됐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합리적인 판단보다는 단기적인 흐름에 휩쓸리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일까? 이에 대해 경제학자 케인즈는 미인대회 예를 들어 적절하게 설명해 준다.

“한 신문사가 100명의 미인 사진을 게재하고 이들 중 최고 미인으로 뽑힐 후보를 선택한 사람에게 상을 준다는 현상응모를 실시했다. 이 결과 응모자들은 자신이 가장 미인이라고 생각하는 후보를 고르는 대신 다수의 사람들이 미인이라고 생각할 것 같은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주식투자도 마찬가지다. 투자자들은 정말 좋은 기업이라서 주식을 사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살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에 그 주식을 사는 것이다.”

주가를 예측하는 것은 신의 영역이라고 불린다. 해볼 수는 있지만 결과로 보자면 부질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남들이 모두 주식을 버릴 때 나는 산다’는 이른바 역발상 투자(Contrarian)다. 투자의 대가라고 불리는 워렌 버핏이나 프랭클린 템플턴은 역발상 투자의 원칙을 꿋꿋하게 지켜냈던 이들이다. 그들은 시장의 비관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유유히 헐값의 주식들을 사들여 시간에 투자했다. 그러나 전설 같은 이들의 투자 스토리를 통해서도 우리는 단기적인 주가 예측이 수익률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극에 달한 때가 오히려 기회

심리학자로서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다니엘 카너먼 교수는 ‘경제 주체의 의사결정은 반드시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는 이론을 정립해 행동경제학의 지평을 열었다. 카너먼 교수의 이론은 당연해 보이지만 애덤 스미스 이래로 경제학은 ‘합리적 판단을 하는 인간’을 전제로 했다. 고전 경제학자가 길을 가다 돈이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한 경우를 말하자 카너먼 교수는 그럴 리 없다고 반응한다. 효율적인 시장에서 공짜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길을 가다 돈이 떨어져 있는 걸 본 경험이 있고, 그것을 주워 본 경험도 있다. 이처럼 인간이 실제로 어떻게 선택하고 행동하는지, 그 결과로 어떠한 사회현상이 발생하는가를 고찰하는 학문이 행동경제학이다. 주식시장의 비이성적인 투자심리 역시 이 틀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주식시장 참여자들은 전형적인 다니엘 카너먼형 인간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의 심리를 반영한 가격은 급등과 급락을 거듭한다. 하지만 꽤 오랜 시간이 흘러 그 순간을 되짚어 보면 급등과 급락은 미세한 움직임으로 기록된다. 그리고 급등에 사고 급락에 팔았던 쪽은 패자가 되고, 그 반대의 경우는 승자가 된다.

지금은 모두가 잃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시기다. 하지만 지금과 유사한 과거의 금융위기를 되돌아보면 비관론이 극에 달했던 때가 기회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기회를 잡았던 이들은 낙관론이 극에 달했을 때 준비를 해 놓았던 이들이다. 비관론에 빠진 우리가 오히려 뼈아프게 되돌아보아야 할 것은 좋았던 시절의 과도한 낙관론일지도 모른다.

공동기획 : 미래에셋증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