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꼭 4년 전에 미국 대선에서 개표 시비가 붙은 바 있다. 소송으로 이어졌지만 득표 결과가 명쾌하지는 않았다. 결국 현재의 대통령인 부시(Bush)가 고어(Gore)를 누르고 당선이 확정됐다. 그 당시 KBS에서는 밤 10시쯤에 도올 김용옥 선생이 진행하는 <논어> 강의를 방영했는데, 당시 미국의 대선과 관련된 도올의 코멘트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미국은 지난 20세기 동안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에 대한 원폭 투하 등 여러 어두운 면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인의 동경을 받는 나라였다. 미국이란 나라의 역사를 보면 종교의 자유를 찾아 유럽을 떠난 사람들이 인류 최초로 지구상에 건설한 유토피아였다. 세금과 권리를 연결시켜 독립을 쟁취했고, 왕 또는 왕이 임명하는 총리를 대신할 임기제 대통령을 선출했다. 그리고 자유와 꿈을 갈망하는 전 세계인들의 이민을 받아들였다. 이와 같은 미국의 자유주의 정신은 비행기와 자동차, 전구와 같은 물질문명의 획기적 발전으로 이어졌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미국인들을 세계 1등 시민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미국의 이번 대선 결과는 어쩌면 미국이란 나라의 몰락을 의미하는 단서일 수도 있다. 세계의 리더를 자부하는 나라에서 득표 계산도 제대로 못했다. 한국에서조차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미국의 경제 패권 흔들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도올의 불길한 예언은 현실이 돼가고 있는 것일까? 금융시장이 망가진다고 해서 나라가 망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기축통화와 금융파워로 세계 경제(GDP)의 25%, 세계 주식시장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의 패권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 근력에 비해 지방이 잔뜩 쌓이다 보니 건강을 잃었다. 10년 전 외환위기로 인해 서러움을 겪은 바 있는 한국인 입장에서 보면 ‘저희들도 별 수 없네’라고 조롱할 수도 있지만, 미국 금융 시스템의 붕괴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아시아 동쪽 끝에서-당하다 보니 이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유럽연합이나 일본, 새롭게 부상한 중국 등이 당장에 미국의 역할을 대신할 수준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얼마나 소요될지는 알 수 없지만 금융위기는 결국 미국 스스로의 힘에 의해 극복될 것이다. <표2>는 지난 1년 동안 15개 주요 금융기관들의 주가 성적을 보여 주는데, 이미 알고 있듯이 모기지 관련 회사와 이를 많이 다룬 투자은행들이 몰락했다. 다만 이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플러스 성과를 낸 몇몇 금융기관들-주로 예금은행과 신탁회사-이 있다.

마치 우리의 외환위기 때 대기업 대출을 많이 취급했던 시중은행들이 몰락하고 개인 위주로 영업했던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이 살아남았던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11월4일이면 미국인들은 새 대통령을 뽑는다. 만약 민주당 후보인 오바마(Obama)가 당선된다면, “누구라도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을 실현할 수 있다”라는 감동적 희망을 보여 줄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투머로우(The Day After Tomorrow·2004)>라는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다음과 같다. 지구 온난화의 후폭풍으로 인해 북반구는 빙하시대로 접어든다. 미국 영토의 대부분 역시 거대한 얼음장으로 변했고 살아남은 미국인들은 멕시코 땅 어디엔가 난민촌을 꾸린다. 그런데 방송에 등장한 미국 부통령은 “멕시코 정부와 국민들에게 감사한다”라는 인사말에 이어, 어이없게도 “미국에 대한 멕시코의 채무를 면제하겠다”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