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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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달러화 가치가 고공행진하면서 국내외 자본시장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하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자 국내에선 기업 이익이 감소하고, 외국인 투자자를 중심으로 투자 심리가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다만 환율 상승이 장기화하면 싼 가격에 한국 주식을 사려는 외국인 자금이 유입되거나 고환율 수혜주가 주목받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 시장에서는 강(强)달러 환경이 기업 이익 창출에는 대체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업종마다 상이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해외(미국 밖)보다 내수(미국 내) 매출 비중이 높은 기업 주가에는 호재가 되더라도, 해외에서 더 많은 돈을 버는 기업 주가에는 반대로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外人 ‘보텀 피싱’, 기업 이익 악화 우려 여전

서울외환시장(운영협의회)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을 넘은 것은 6월 23일이다. 

이날 장중 환율은 달러당 1302.8원까지 올랐고 종가는 1301.8원을 기록했다(환율이 1300원을 넘은 것은 2009년 7월 14일(고가 기준 1303.0원) 이후 12년 11개월 만이다). 한 달여 후인 7월 26일 원‧달러 환율은 1307.6원에 마감하며 여전히 1300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환율이 장기간 높은 상태를 유지하면서 증권가의 관심은 외국인 자금 흐름으로 향했다. 환율 변동성이 높은 시기에는 외국인의 수급이 영향을 받고, 증시 방향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환율이 높으면 달러화를 바꿔 원화로 한국 주식을 살 때는 유리하다. 하지만 국내 주식을 팔고 달러화로 바꿀 때는 환차손이 발생한다.

대부분 전문가는 높은 환율로 인한 외국인 자금 유출을 우려한다.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면 원화 자산에 투자한 외국인이 달러화로 바꿔 자금을 회수할 때 발생하는 환차손을 우려해 원화 자산 투자를 꺼리기 때문이다. 환율이 높은 상태가 오래 유지될수록 외국인 자금 유출 가능성이 커진다는 의미다.

김남종, 김현태, 박해식 금융연구원 연구위원들이 2002년 3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외국인 자본 유출입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환율 상승률이 2년 이내에 15%를 초과할 경우 외국인 자본 유입 규모는 평균 360억~420억달러(약 47조9800억~55조9800억원) 감소했다. 자본 유출입이란 국제수지 금융 계정 중 증권 투자(주식+채권)와 차입 항목을 합한 것이다.

김현태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외국인 자금의 급격한 유출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글로벌 유동성 긴축 기조로 지정학적 리스크 등 대내외 불확실성 요인이 현실화하는 경우, 환율이 추가 급등하고 외국인 자본 유출이 재발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높은 환율이 기업 이익 감소로 이어진다는 전망도 나왔다. 원유 등 원자재를 수입해서 제품을 만드는 기업의 비용이 늘어 이익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환율이 올라 기업의 원자재 수입 원가가 더 뛸 수 있다”며 “강달러를 촉발한 이유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상승 등이기 때문에 기업의 비용 부담이 가중돼 이익 감소로 이어질 여지가 크다”고 했다.

다만 일각에선 환율 상승이 싼 가격에 한국 주식을 매수하려는 외국인 자금 유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달러화를 바꿔 원화로 한국 주식을 매수하는 외국인 입장에선 환율이 높으면 싸게 주식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는 이를 ‘보텀 피싱(bottom-fishing·저가 매수 후 반등하면 매도하는 전략)’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환율이 1300원을 돌파한 초기에는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인의 자금 이탈이 집중적으로 발생했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는 달라졌다. 6월 23일부터 7월 13일까지 외국인은 유가증권 시장에서 7378억원을 순매도했다. 이후 14일 외국인은 3988억원을 순매수했고 19일까지 4거래일 연속 순매수했다. 

환율이 1300원을 돌파한 6월 23일부터 7월 26일까지 누적 통계를 보면 외국인은 유가증권 시장에서 1조1201억원을 순매수한 것으로 집계된다.


고환율 수혜주 옥석 가리는 투자자

일부 투자자는 고환율 수혜주로 분류되는 업종이 주목받을 기회라고 평가했다. 2분기 실적 발표 시즌이 본격화한 가운데 환율 상승이 자동차, 반도체, 조선 등 수출 중심 기업의 실적 전망과 주가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시각이다.

노동길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환율이 오르면 원화 환산 수출 증가 효과가 있기 때문에 수출주는 다른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은 성과를 보인다”면서 “반도체와 더불어 환율 상승에 민감한 자동차 등 대형 수출주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수석연구원)은 “2000년 이후 환율이 1200원을 돌파했던 여섯 번의 환율 상승 국면에서 주가가 많이 오른 업종은 하드웨어, 통신, 음식료, 자동차”라며 “하드웨어와 자동차는 환율 상승에 따른 수출 증가 기대를 호재로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높은 환율 효과는 지난 1분기 실적에서 이미 입증됐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와 비교했을 때 올해 1분기 영업이익에 기여한 환율 효과가 3000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현대차도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영업이익 증감을 분석한 결과, 환율 상승으로 인한 이익 증가분이 5510억원에 달한다고 했다.


美 증시 희비…빅테크 울고 유틸리티 웃고

미국 주식시장에서는 강달러 기조가 대체로 호재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이지만, 국내와 마찬가지로 업종마다 상이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미국 밖)보다 내수(미국 내)로 벌어들이는 돈이 많은 기업 주가 흐름은 좋은 반면, 내수보다 해외 매출 비중이 높은 기업 주가는 부진했다.

황수욱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미국에서 자국 내 매출이 많은 기업은 강달러 환경이 이익 창출에 긍정적이지만, 해외 매출이 많은 곳에는 오히려 안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다”며 “국내 투자자가 많이 투자하는 빅테크들이 대표적으로 해외 매출이 많은 기업이라 강달러 환경에서 부정적 영향에 노출된 곳”이라고 덧붙였다.

글로벌 금융정보 업체 팩트셋과 메리츠증권에 따르면, 미국 S&P500 기업 매출의 60%는 미국 내에서 발생하고, 40%는 해외에서 발생했다. 

업종별로 보면 전기생산·가스·재생에너지 등 유틸리티의 내수 비중이 98%로 가장 높았다. 뒤이어 △부동산(83%) △금융(78%) △산업재(68%) △일반 소비재(66%) △헬스케어(64%) △에너지(61%) 등이 S&P500 기업의 평균적인 내수 비중을 웃돌았다.

한편, 해외 매출 비중이 높은 일부 미국 기업은 실적 전망치가 하향 조정되기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지난 6월 올해 2분기 매출이 기존보다 약 4억6000만달러(약 6100억원), 순이익은 약 2억5000만달러(약 3300억원)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발표했다. 세일즈포스 역시 강달러가 수익에 미치는 타격이 올해 연간 매출액을 기준으로 최대 6억달러(약 8000억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강달러의 수익 영향 규모에 대한 기존 전망치는 3억달러(약 4000억원)였다. 달러화 강세 현상이 기업 매출에 미칠 타격이 두 배가량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김일혁 KB증권 연구원은 “최근 실적을 발표한 기업 중 해외 매출 비중이 높은 기업 대부분이 달러화 강세로 인한 환손실을 언급했다”며 “글로벌 경기 우려를 반영해 (안전자산인)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달러화 강세가 기업 실적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달러화 환산 이익이 감소한 영향이기도 하고, 경기 우려 때문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