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한 해도 얼마 남지 않은 요즘, 월스트리트가 진앙지인 부실금융의 쓰나미는 자동차 산업과 유통산업 등 실물경제의 영역으로 옮겨가고 있다. 미국의 현직 대통령인 부시는 월스트리트를 위한 구제금융에 납세자들의 돈 7000억 달러를 쏟아 부었고, 새 대통령으로 당선된 오바마는 산업과 미국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2차 경기부양책을 준비 중이다. 중국도 내수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800조원 규모의 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잘못을 저지른 일부 사람들로 인해 다 같이 망하게 됐으니 어쩔 수 없이 정부가 나서 모든 납세자들이 부담하고 있는 현재의 세금은 물론이고 미래의 소득 중 일부를 미리 집행하는 것이므로 그 형평성과 효과를 두고 논란이 한창이다.

미국 독립의 아버지 벤자민 프랭클린은 사람의 생애에서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죽음’과 ‘세금’을 꼽았고,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사람은 자기 소유물을 빼앗겼을 때보다 부친이 죽은 쪽을 더 빨리 잊어버리는 법”이라고 말했다. 미시경제학 교과서에는 세금은 경제주체들의 후생을 세금만큼 감소시킨다는 수요공급 그래프를 보여주고 있으며, 자유주의 경제학의 거두 프리드만(M. Friedman)은 “모든 세금은 나쁜데, 그나마 가장 덜 나쁜 세금은-부동산은 가격에 대해 가장 비탄력적 공급곡선을 갖는 재화이므로-부동산 보유세”라고 말한 바 있다.

이라크 전쟁비용이면 모든 미국 사람에게 의료혜택 가능

한편 수정자본주의를 천명한 케인즈(J. M. Keynes)는 “늑대들의 자유는 양들에게는 재앙”이라며 경제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정당화했다. 하지만 일부 늑대들이 저지를 잘못 때문에 발생한 위기를 힘없는 모든 양들의 혈세까지 동원해서 구제해야만 하는가라는 의문이 남는다. 양대 경제학파의 해묵은 논란에도 정부의 개입이 기정사실화돼 진행 중이다. 정부의 개입이 과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가를 판단할 수 있다면 향후 주식시장과 경기흐름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 미국이 이라크전쟁을 위해 쏟아 부은 비용은 공식지출이 5270억달러이고 이로 인한 간접비용까지 감안할 경우 최소 1조달러, 즉 연평균 2000억달러라는 막대한 금액을 투입했다고 한다. 직접비용만 계산해도 가구당 약 7000달러(우리 돈으로 1000만원)에 달한다. 이 돈이면 모든 미국인들에게 의료보호혜택을 줄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평범한 중산층 미국인들은 주택 한 채를 위해 은퇴할 때까지 모기지대출을 갚아야 한다. 자동차와 같은 내구제품은 대부분 할부로 구입하며,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5~10년 동안은 학자금대출의 원리금을 갚아 나가는 ‘빚쟁이 인생’임은 우리도 이미 알고 있는 바다.

더 자세한 예를 들어 보면, 미국의 경우 의료보험상품에 따라 보험료가 천차만별이지만 평범한 미국 직장인(4인 가족 기준)이 가입하는 의료보험의 경우 월 보험료는 800~1200달러 수준이고, 고용조건이 좋은 회사들은 이중 일부를 부담하므로 개인은 월 500~800달러를 부담한다. 따라서 고용조건이 열악한 근로자들이나 영세한 자영업자들은 월평균 1000달러에 달하는 보험료 부담으로 인해 의료보험 가입을 꺼리고 있고 이에 따라 미국 인구 중 약 15%인 4600만 명은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해마다 신용파산자로 전락하는 가계의 50%에 해당하는 약 200만 명이 의료비 부담으로 인해 파산을 신청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미국인들이 의료보험료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면 매달 1000달러의 소득이 즉시 증가하고 이는 모기지대출 20만달러가량의 이자(연6.0%)를 상환할 수 있는 금액과 일치한다. 

지난 1929년의 대공황은 유럽과 미국의 산업 부문에서 발생했고 유효수요 창출을 위한 루즈벨트 대통령의 대대적 뉴딜정책에도 결국 전쟁을 통해 극복할 수 있었다. 즉, 유럽대륙의 산업시설 파괴를 통해 수요와 공급을 일치시킨 것이라 볼 수 있다.

채무상환능력 향상은 위기상황 극복의 첩경

한편 현재 벌어지고 있는 위기는 금융 부문에서 과도하게 공급된 유동성이 급격하게 회수되면서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감소하고 이것이 다시 자동차 산업과 같은 제조업의 도산으로 전개되고 있다. 따라서 과도한 부채로 인해 가계가 부담하는 이자와 원금을 상환할 수 있는 능력, 즉 채무상환능력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위기상황을 효과적으로 그리고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첩경이다.

참고로 이번 사태의 주범으로 비난받고 있는 앨런 그린스펀은 “미국은 이번 사태의 본질인 주택 가격 하락을 방지하기 위해 이민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만약 얼마 전 미국의 새 대통령으로 선출된 버락 오바마와 그의 행정부가 불필요한 전쟁비용 지출을 줄이고 미국인들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의료비와 학자금 지원 등에 재정을 사용한다면 미국인들의 채무상환능력은 상당히 높아질 수 있을 것이고, 금융위기 또한 당초 예상보다 빠르게 극복될 수 있을 것이라 판단된다. 주식시장 참여자들은 미국 정부는 물론이고 우리 정부 역시 재정을 어느 쪽으로 투입하는가를 유심히 관찰해야 할 것이다.

공동기획 : IB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