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자국 빅테크 기업의 해외 상장을 규제하고 나섰다. 사진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 AP연합
중국 정부가 자국 빅테크 기업의 해외 상장을 규제하고 나섰다. 사진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 AP연합

중국 차량공유 업체 디디추싱은 6월 30일(이하 현지시각) 44억달러(약 5조1000억원)를 조달하며 뉴욕 증시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이틀 뒤인 7월 2일 중국 당국으로부터 국가안보 규정 위반이라는 혐의로 ‘인터넷 안보’ 조사를 받았고, 중국의 모든 애플리케이션(앱) 스토어에서 디디추싱 앱을 삭제해야 했다. 사실상 중국 내 영업 금지 조치를 받은 것이다. 이런 중국 당국의 규제로 디디추싱의 주가는 6월 30일 14.14달러(약 1만6400원)에서 7월 13일 12.42달러(약 1만4407원)로 12.2% 하락했다.

그동안 중국 빅테크 기업은 미 증시에 상장하며 거액의 자본을 모았고, 월가의 투자은행(IB)은 이 상장을 주관하며 막대한 수수료를 챙겼다. 이런 중국 기업과 월가 자본의 협력 구조는 미·중 무역 전쟁이 격화된 올해에도 이어졌다.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중국 기업 36곳이 미 증시에 상장하며 자금 136억7200만달러(약 15조8000억원)를 끌어모았는데, 이는 지난해 중국 기업 34곳이 미 증시에 상장해 조달한 122억6000만달러(약 14조2000억원)를 넘어선 규모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당국이 자국 빅테크 기업의 해외 상장을 규제하고 나선 것이다. 디디추싱처럼 중국의 교통·지리 데이터와 사용자 개인 정보를 가진 기업이 미 증시에 상장하는 과정에서 미국 당국에 민감한 데이터가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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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2일에는 짧은 동영상 앱 ‘틱톡’을 운영하는 중국 바이트댄스가 중국 당국의 제지에 미 증시 상장을 포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장이밍 바이트댄스 창업자가 지난 3월 정부 당국자들을 면담한 이후 해외 상장 계획을 보류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CAC) 관계자들은 면담 자리에서 바이트댄스 앱들의 데이터 보안에 대해 우려했고, 바이트댄스가 데이터를 어떻게 수집하고 관리하는지를 집중적으로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트댄스는 지난해부터 미국 또는 홍콩 증시 상장을 추진해왔다.

그동안 중국 당국은 구글·아마존·페이스북 등 미국 기업의 중국 시장 침투를 막으면서 자국 기업의 성장을 지원했다. 이 기업들의 자국 시장 내 독과점도 용인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들어 중국 당국의 정책 방향은 완전히 바뀌었다. 중국 빅테크 기업들이 14억 중국 소비자로부터 막대한 양의 개인 정보를 수집·축적하면서 과도한 영향력을 가졌다고 판단, ‘플랫폼 경제 반독점 지침’ 등을 내놓으며 규제에 나선 것이다. 지난해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의 핀테크 자회사 앤트그룹의 상장 중단은 중국 당국이 테크 기업을 규제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에 따라 미 증시에 상장하려던 중국 기업들의 계획 차질도 예상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알리바바가 투자한 자전거 공유 스타트업 ‘헬로’, 텐센트가 투자한 교육 스타트업 ‘스파크 에듀케이션’과 의료 데이터 스타트업 ‘링크독 테크놀로지’ 등의 미 증시 상장 계획이 어그러질 위기에 처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중국 빅테크 기업의 ‘본토 증시 회귀’도 전망했다.


미 증시에 상장한 중국 차량공유 업체 디디추싱. 사진 로이터연합
미 증시에 상장한 중국 차량공유 업체 디디추싱. 사진 로이터연합

연결 포인트 1
중국 내 자금 유입 대폭 감소 “2030년까지 5경원 손해 볼 것”

중국 정부가 자국 빅테크 기업의 해외 증시 상장 규제를 강화하면 향후 약 10년간 45조달러(약 5경2200조원)의 손실을 입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 싱크탱크인 애틀랜틱카운슬의 프레드릭 캠프 회장은 7월 10일 CNBC 기고문을 통해 “디디추싱 사태는 중국의 다른 빅테크 기업들로 확장될 것”이라면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때 옹호했던 시장자유주의로부터 돌아선 것은 큰 비용 리스크를 일으킬 것”이라고 했다.

기고문에서 미국 컨설팅 업체 로디움그룹은 중국 정부가 빅테크 기업의 해외 증시 상장을 제한하는 등 규제를 강화할 경우, 2030년까지 연간 중국 내 자금 유입은 2020년 수준인 2조9000억달러(약 3300조원)에 머물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규제를 완화했을 때보다 45조달러 위축된 규모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경쟁 촉진과 독점적 관행 단속을 지시했다. 사진 AP연합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경쟁 촉진과 독점적 관행 단속을 지시했다. 사진 AP연합

연결 포인트 2
미국도 반독점 규제 강화 “경쟁 없는 자본주의는 착취”

미국도 빅테크 기업을 타깃으로 한 반독점 규제 강화에 나서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7월 10일 경쟁 촉진과 독점적 관행 단속을 지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는 “경쟁 없는 자본주의는 진정한 자본주의가 아니라 착취”라며 “지난 수십 년 동안 경쟁은 줄이고 집중을 허용한 결과, 미국 경제가 발목을 잡혔다”라고 했다. 이 행정명령에는 시장 지배적인 기업이 잠재적으로 경쟁이 될 신생 기업을 인수해 혁신 제품 개발을 사전에 차단하는 ‘킬러 인수’ 제한 등이 담겼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와 같은 역할을 하는 연방거래위원회(FTC) 수장에 ‘아마존 킬러’로 불리는 리나 칸 컬럼비아대 법대 교수를 임명하며 반독점 정책 강화 의지를 분명히 한 바 있다. 또한 빅테크 기업의 영향력을 제한하기 위해 백악관경쟁위원회를 신설했다.

박용선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