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독일에서 출간된 ‘앙겔라 메르켈의 젊은 시절’ 책 표지에 젊은 시절 메르켈의 얼굴이 실려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우) 2015년 미국 ‘타임’ 선정 ‘올해의 인물’로 꼽힌 앙겔라 메르켈. 사진 타임
(좌) 독일에서 출간된 ‘앙겔라 메르켈의 젊은 시절’ 책 표지에 젊은 시절 메르켈의 얼굴이 실려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우) 2015년 미국 ‘타임’ 선정 ‘올해의 인물’로 꼽힌 앙겔라 메르켈. 사진 타임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67) 독일 제8대 연방 총리(Bundeskanzlerin)가 9월 26일(이하 현지시각) 열리는 독일 총선 후 퇴임한다. 메르켈은 2005년부터 16년째 4 연임하며 총리를 맡고 있다. 메르켈이 물러나면 헬무트 콜(1982~98년 재임)과 함께 역대 최장수 독일 총리가 된다. 메르켈은 미국과 프랑스 대통령 각 4명, 영국 총리 5명과 맞상대로 지냈다.

퇴임을 앞뒀지만, 메르켈의 인기는 여전하다. 6월 독일 공영방송 ARD가 정치인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메르켈에 대해 ‘만족한다’는 응답은 63%로, 차기 총리 후보로 각 당에서 지명된 기독교민주당(이하 기민당)의 아르민 라셰트(32%), 사회민주당(이하 사민당)의 올라프 숄츠(42%) 등을 앞섰다.

메르켈의 인생 여정은 한 편의 드라마다. 서독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가 동독으로 이주해 동독에서 자랐다. 메르켈은 1954년 7월 북부 독일의 중심 도시인 함부르크에서 목사의 딸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고 몇 주 후에 아버지는 가족을 데리고 동독으로 이주했다. 1950년대에는 해마다 약 23만 명의 동독 주민이 서독으로 탈출했는데 메르켈의 부친은 자발적으로 동독으로 간 것이다. 이는 더 낮은 곳을 향해 간다는 종교적 신념 때문으로 추정된다. 동독으로 이주한 메르켈의 부친은 목사로 활동했다. 메르켈은 초·중·고교를 마치고 동독 라이프치히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1986년에 박사 학위를 받고 연구 과학자로 활동했다. 1989년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동독의 평화혁명 격변기에 메르켈은 정치에 뛰어들었다. 동독에서 물리학자로 활동한 경력을 바탕으로 헬무트 콜 내각에서 환경부 장관을 역임했다. 1990년 12월에는 통일 후 첫 총선에 기민당 후보로 출마해 연방 하원 의원에 당선됐다. 2000년에 기민당 대표직에 취임한 이후 2005년 총선에서 제1당을 차지했다. 메르켈이 유럽 최대 경제 대국 독일의 총리로 재임하는 동안 남유럽 경제 위기와 시리아 난민 사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등 국제적 현안이 다수 제기됐다.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메르켈은 광범위한 영향력을 가지게 됐다. ‘이코노미조선’은 메르켈의 주요 여정을 다섯 가지 장면으로 정리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019년 12월 6일(현지시각)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를 찾았다. 사진 조선일보 DB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019년 12월 6일(현지시각)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를 찾았다. 사진 조선일보 DB

장면 1 | 때를 기다린 메르켈

메르켈은 2002년 총선에서 기민/기독사회당의 총리 후보로 총선에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자매 정당인 기독사회당(이하 기사당) 대표 에드문트 슈토이버가 후보가 되겠다고 더 의욕적으로 나왔다. 이때 메르켈은 슈토이버에게 양보하고 그의 승리를 위해 뛰었다. 그러나 슈토이버는 재임 중이던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사민당)에게 패배했다. 2005년에 메르켈에게 기회가 왔다. 슈뢰더 총리의 제의로 연방 하원이 조기에 해산하고 9월에 총선이 실시됐다. 메르켈은 기민/기사당 총리 후보로 총선에 나서서 승리했다. 때를 기다린 끝에 동독 출신(동독에서 성장한) 첫 독일 총리이자, 첫 여성 총리가 됐다. 이는 1990년 동서독이 통일된 지 15년 만의 일이었다. 메르켈은 이후 2009년, 2013년, 2017년 총선에서 연속해서 승리하며 4선 총리가 됐다.


장면 2 | 난민 문제와 ‘무티’ 리더십

메르켈의 리더십은 권력을 내세우지 않으며 조용하게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를 그의 이름에 빗대어 ‘메르켈리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메르켈의 정치사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난민 문제였다. 2015년 시리아 내전으로 100만 명 이상의 난민이 유럽에 물밀 듯이 들어오자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핵심이던 독일은 메르켈 총리를 중심으로 난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른바 ‘무티(Mutti·독일어로 어머니)’ 리더십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독일에 들어온 난민들이 주민 살인 등 문제를 일으키자 반(反)난민 정서가 퍼지며 메르켈은 정치적인 어려움에 부닥쳤다. 2015년 12월 14일 메르켈은 기민당 연례총회에서 10분 동안 1000여 당원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지지율 하락세를 면치 못하던 그가 이날 격한 지지를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난민 유입을 줄이겠다”는 발언 덕분이었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차 영국을 방문한 문재인(오른쪽) 대통령이 6월 12일(현지시각) 영국 콘월 카비스베이 양자회담장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 AP연합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차 영국을 방문한 문재인(오른쪽) 대통령이 6월 12일(현지시각) 영국 콘월 카비스베이 양자회담장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 AP연합

장면 3 | 경제 강자로 거듭난 독일

독일은 2005년 메르켈이 집권을 시작했을 당시 ‘유럽의 병자(sick man of Europe)’로 불렸다. 통일 후 경제는 내리막길을 치달아 당시 실업률이 11%에 달했다. 하지만 8월 말 현재 실업률은 5.5%로 낮아졌으며 국민의 생활 수준도 개선됐다. 메르켈의 전략은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정책을 수정하지 않고 꾸준히 확실하게 나라를 끌고 가는 것이었다. 독일 마인츠대학의 카이 아르츠하이머 교수는 “‘우리는 앞만 보고 운전한다(We are driving on sight)’는 것이 그의 캐치프레이즈였다”라고 평가한다.

이런 메르켈의 면모는 2011년 이탈리아가 재정위기에 처했을 때 돋보였다. 당시 다른 나라들로 위기가 전파할 우려가 커졌고 메르켈이 유로존(유로를 사용하는 국가)에서 위기에 취약한 나라들을 축출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하지만 당시 메르켈은 “유로존이 실패하면 유럽도 실패한다. 이를 내버려 둘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독일은 이 나라들에 재정을 지원하고 경제 회복을 위한 정책을 집행했다.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 이탈리아 등에서도 EU 탈퇴를 시도하는 포퓰리스트들이 극성을 부렸지만, 메르켈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남유럽 국가들이 부채 위기를 겪고 있을 때 메르켈은 2012년과 2015년 재정 지원 대가로 사회보장 축소 등 혹독한 긴축을 요구했다.


장면 4 | 자유 세계의 수호자로 등극

애초 메르켈은 총리 4선을 계획하지 않았다. 그가 마음을 바꾼 결정적 계기는 2016년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었다. 미국 선거 8일 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작별인사차 베를린을 방문했다. 베를린의 한 호텔에서 만찬 도중 오바마는 메르켈에게 총리직에 다시 출마해서 서방 진영과 세계가 단합하도록 이끌어 달라고 촉구했다. 불과 4일 후에 메르켈은 4선에 도전한다고 발표했다. 이후 메르켈은 서구 언론으로부터 ‘자유 세계의 수호자(defender of the free world)’ 등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메르켈이 트럼프로 대표되는 민족주의나 국수주의로부터 세계의 다원주의와 국제 협력을 구했다는 평가다.


장면 5 | 코로나19 위기 속 유럽 통합

메르켈은 코로나19 위기 속 찢어진 EU를 하나로 묶어내는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 다시 주목받았다.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진영의 리더’들이 판치는 상황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보였다. 2020년 7월 21일 EU 27개국 회원국 정상들은 코로나19가 불러온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7500억유로(약 1048조원) 규모의 경제회복기금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여기서 메르켈 총리는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일대일 설득에 나서며 협상의 돌파구를 연 것.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협상안에 가장 극렬히 반대했던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의 동의를 얻어낸 이도 메르켈 총리였다. “남유럽이 망하면 유럽 전체가 망한다”면서 끈덕지게 설득한 결과라는 것이다.

김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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