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가운데) 전 자민당 정조회장이 9월 29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당선된 후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기시다 후미오(가운데) 전 자민당 정조회장이 9월 29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당선된 후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최인한 시사아카데미 일본경제사회연구소장 현 경희사이버대 일본학과 강사, 전 한국경제신문 온라인총괄 부국장
최인한
시사아카데미 일본경제사회연구소장 현 경희사이버대 일본학과 강사, 전 한국경제신문 온라인총괄 부국장

사실상 차기 일본 총리를 뽑는 9월 29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64) 전 자민당 정조회장이 승리했다. 기시다 신임 자민당 총재는 10월 4일 소집된 임시국회에서 스가 요시히데에 이어 100대 일본 총리로 선출됐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에서는 국회 다수당의 총재가 총리를 맡는 구조다. 새로운 총리의 등장으로 일본의 경제 정책은 물론 한·일 관계 등 외교 정책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근대화와 산업화를 위해 서구 문물과 제도를 적극 수용했다. 의원내각제도 그중 하나다. 서구 열강과 부국강병(富國强兵) 경쟁에 뛰어든 일본은 강력한 천황제 아래 행정 실무를 총괄하는 초대 내각을 1885년 첫 출범시켰다. 군국주의 일본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연합군의 신탁통치를 받고 서구식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탈바꿈한다. 민주정치의 막이 열렸지만, 초기 10년은 그야말로 진통의 연속이었다. 사회·경제적 혼란, 급격한 민주적 개혁, 점령 정책의 변화 등으로 격동과 혼란의 시기를 거쳤다. 이런 불안정한 국가의 마침표를 찍은 주역이 1955년 자유당과 민주당의 보수 대통합을 통해 탄생한 ‘자유민주당(자민당)’이다.


자민당의 장기 집권으로 파벌 정치 정착

자민당 탄생 순간부터 당내에 이들 두 파벌이 형성됐다. 장기 집권이 이어지면서 힘 있는 지역 출신의 정치인이나 총리를 지낸 인물을 중심으로 파벌이 분화됐다. 파벌 수장은 인사권과 돈을 쥐고 의원 공천이나 총리 선출 과정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자민당 내 주요 파벌은 2021년 지금도 매주 목요일 당사에서 파벌별로 모여 점심을 함께하며 단합을 꾀한다. 2012년 말부터 지난해 9월까지 장기 집권한 아베 신조가 속한 호소다파, 아소 다로 재무상이 이끄는 아소파,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의 니카이파 등이 자민당 내 주요 파벌이다.

1955년 출범 이후 자민당이 야당에 정권을 내준 것은 1993년과 2009년 두 번밖에 없다. 약 5년간 예외적인 기간을 제외하고 60년 이상 집권당 지위를 유지했다. 2021년 10월 현재 자민당 지지율은 30~40%대이나 제1 야당인 입헌민주당은 한 자릿수에 그친다. 야권 분열로 사실상 견제 세력이 없어 자민당 독주 체제가 상당 기간 이어질 전망이다.

보수 자민당의 홈페이지에는 6대 중점 정강 정책이 명시돼 있다. 오는 11월 차기 총선 공약으로도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① 강한 외교·방위로 국익을 지킨다 ② 강한 경제로 소득을 늘린다 ③ 인생 100년 사회를 만든다 ④ 최첨단을 가는 활기찬 지방을 만든다 ⑤ 재해로부터 생명과 생활을 지킨다 ⑥ 헌법 개정을 목표로 한다 등이다.

집권 자민당의 경제 정책은 최근 10여 년 동안 ‘아베노믹스(아베 신조의 경제 정책)’로 대표된다. 2012년 말 출범, 8년 동안 재임한 아베 신조 총리와 그의 지원으로 총리에 오른 지 1년 만에 물러난 스가 요시히데 총리 기간에 해당한다. 스가 총리는 무파벌 출신인 데다 재임 기간이 짧아 자신만의 뚜렷한 정책 색깔을 드러내기 어려웠다.

아베노믹스는 아베 총리의 재임 중반까지는 어느 정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경제 성장률, 국민소득, 물가가 애초 목표치에 미달했지만, 일자리가 크게 늘어난 덕분이었다. 경기 회복과 고용 증가를 최대 성과로 내세웠던 아베노믹스는 코로나19발 대량 실업으로 약발이 다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흔히 세 개의 화살로 알려진 아베노믹스의 골자는 대담한 금융 완화, 기동적인 재정 정책, 민간 투자 유도를 통한 경제 성장 정책이다. 첫 번째 화살은 엔화 약세를 유도해 수출 대기업의 수익성을 높이자는 전략이다. 일본 증시도 많이 올랐다. 하지만 코로나19 발생 이후 경쟁국들이 경제난 타개를 위해 엄청난 돈을 풀고, 재정 지출을 늘리면서 아베노믹스는 추진 동력을 잃었다.


경제 정책 최우선 과제…분배와 격차 축소

집권 자민당 내에서 총리가 교체됐지만, 새 정부의 경제 정책은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코로나19 사태가 지속하고 있고, 장기간 이어진 아베노믹스에 대한 변화 요구가 많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방역과 재난지원금 지급 과정에서 드러난 낙후된 디지털화 상황과 장기 침체에 대해 과감한 혁신을 요구하는 국민이 다수다.

기시다는 코로나19로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재분배와 격차 축소를 새 경제 정책의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그가 아베노믹스와 다른 행로를 걸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기시다는 총재 선거 과정에서 아베노믹스의 혜택이 대기업으로만 쏠리고 근로자의 임금 인상으로 이어지지 않은 점을 지적, 신자유주의로부터의 전환과 변화를 강조했다.

기시다는 행정의 디지털화와 연금 개혁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올 9월 초 출범한 디지털청이 행정 절차의 온라인화와 중앙정부·지방자치단체의 디지털화를 이끌게 된다. 디지털청은 정부 시스템의 규정을 표준화하고, 클라우드상에서 운용 가능한 구조로 개편하게 된다. 아동수당과 개호(간병) 신청할 때 사용해온 종이서류를 스마트폰으로 바꾼다. 마이넘버(주민등록)를 활용, 은행 계좌와 연동해 지원금 지급 등 디지털 행정 서비스가 가능한 사회가 목표다.

고령화와 재정 적자 확대로 어려움에 처한 공적연금 제도도 개편 대상이다.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도 현행 연금제도는 후보자 간 최대 정책 이슈였다. 지난해 6월 5일에 공포한 연금제도개정법이 2022년 4월부터 시행되지만, 국민의 불만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내년부터 적용되는 새 연금제도는 후생연금보험 및 건강보험의 적용 범위 확대, 수급 개시 시기의 선택지 확대 등이 골자다.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현행 최고 70세에서 75세까지로 늦춰진다.

일본에서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연령은 원칙적으로 65세이지만 60~70세에서 고르는 것이 가능하다. 이번 법 개정에 따라 내년 4월부터는 60세에서 75세 사이, 원하는 시기에 연금을 수령할 수 있다. 수령 개시를 66세 이후로 늦추는 ‘지연 수급’의 경우, 1개월 늦출 때마다 연금액이 월 0.7%씩 증가한다. 새 개편안에 대해 국민의 절반가량이 연금 지급 시기를 늦추기 위한 방편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4월부터 근로자에게 만 70세까지 취업 기회를 연장토록 하는 ‘개정 고령자 고용안정법’이 시행돼 정년을 70세로 늘릴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상태다.

고령화와 저출산 탓에 재원 부족으로 지급액이 줄어들고, 지급 시기를 늦추는 일본의 공적연금 개편 방향은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인구 구조 측면에서 일본을 따라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눈앞에 다가온 현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