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 위기에 몰린 중국 2위 부동산 개발 업체 헝다그룹의 광둥성 선전 본부. 사진 셔터스톡
파산 위기에 몰린 중국 2위 부동산 개발 업체 헝다그룹의 광둥성 선전 본부. 사진 셔터스톡

파산 위기에 몰린 중국 2위 부동산 개발 업체 헝다(恒大·Evergrande)그룹이 홍콩 증시에서 거래 정지된 가운데 또 다른 부동산 개발 회사 판타지아(화양년홀딩스)도 채권 이자를 제때 지급하지 못해 파산 위기에 놓였다. 헝다 위기가 아시아 고수익 채권 시장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 부동산 개발 업체로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를 키우고 있다. 미국의 테이퍼링(점진적인 양적완화 축소)과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리스크가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판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터지는 것 아니냐는 성급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블룸버그는 10월 4일(이하 현지시각) 판타지아가 이날 만기가 도래한 2억570만달러(약 2480억원)의 채권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판타지아의 자회사인 부동산 관리 업체 컨트리가든서비스도 같은 날 만기가 돌아온 1억800만달러(약 1302억원)의 대출을 상환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판타지아의 신용등급을 ‘투자 부적격’ 수준인 CCC-로 낮췄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신용등급을 B에서 CCC로 내렸다. 무디스 역시 B3로 한 단계 낮췄다.

3대 국제신용평가사는 앞서 헝다의 신용등급도 6월부터 연쇄적으로 강등해 왔다. 피치의 경우 9월에만 두 차례 헝다의 신용등급을 떨어뜨렸다. 부채가 3000억달러(약 361조8000억원)에 이르는 헝다는 9월 23일과 29일 각각 달러표시채권 이자 8350만달러(약 1007억원)와 4750만달러(약 573억원)를 갚지 못하고 30일간 지불을 유예한 상태다. 달러표시채권이 200억달러(약 24조12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는 신용등급이 낮은 중국 부동산 개발 업체들의 채권 금리가 최근 1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오르면서 경영 위험이 커졌다고 전했다. 중국 정부가 부채 위기를 선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작년 9월 자산부채비율 등 세 가지 기준의 마지노선을 부동산 개발 업체에 적용하면서 이들의 자금난이 심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 고수익 채권을 추종하는 ICE 지수 투자자들이 9월에만 10%의 손실을 봤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전했다.

빈민촌 출신 쉬자인(許家印) 회장이 1997년 설립한 헝다그룹은 부동산으로 사업을 시작해 금융, 헬스케어, 여행, 스포츠, 전기차 등으로까지 사업을 확장했다. 쉬자인 회장은 2017년 중국 최대 부자에 등극하기도 했다. 중국 경제 매체 차이신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헝다가 진행 중인 800여 개의 부동산 프로젝트 중 500여 개가 자금 부족으로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돈을 빌려준 중국 은행들이나 건설사 등 협력업체, 미국·스위스·프랑스 등의 대형 금융사들로 위기가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0월 4일 헝다그룹 주식 거래가 정지되면서 홍콩항셍지수가 2% 넘게 급락했다. 증시 동향을 알리는 한 전광판 앞. 사진 AP연합
10월 4일 헝다그룹 주식 거래가 정지되면서 홍콩항셍지수가 2% 넘게 급락했다. 증시 동향을 알리는 한 전광판 앞. 사진 AP연합

연결 포인트 1
홍콩 증시 거래 정지
헝다그룹 쪼개지나

헝다그룹과 계열 부동산 관리 자회사인 헝다물업이 10월 4일 홍콩 증시에서 거래 정지됐다. 헝다 측은 대규모 거래 가능성이 있다는 공시만 했지만, 같은 날 거래 정지된 부동산 업체 허성촹잔이 헝다물업을 인수할 것이라는 관측이 중국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다. 

거래소 측은 헝다 측이 대규모 거래와 관련한 내부 정보를 발표하기 전에 거래 정지를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중국 경제 매체 차이롄서는 허성촹잔이 헝다물업 지분 51%를 인수해 경영권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인수 금액은 400억홍콩달러(약 6조1000억원)를 넘길 것라는 전망이 나온다. 허성촹잔은 “홍콩 증시 상장사 지분을 인수하기로 합의했으며 거래소 규정에 따라 거래 정지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헝다그룹이 소유한 헝다신에너지자동차도 홍콩 증시에 상장돼 있지만 자산 매각설이 계속 나온다.

올해 들어 9월 말까지 홍콩 증시에서 헝다그룹 주가는 79.14%, 헝다물업은 43%, 헝다신에너지자동차는 90% 하락했다.


헝다 계열 전기차 업체 NEVS의 전기차. 사진 NEVS 홈페이지
헝다 계열 전기차 업체 NEVS의 전기차. 사진 NEVS 홈페이지

연결 포인트 2
헝다 후폭풍
스웨덴 전기차 회사로 번져

헝다그룹의 파산 위기 후폭풍이 북유럽 스웨덴으로도 번졌다. 10월 3일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헝다 계열사 헝다신에너지자동차(헝다자동차)와 합작해 전기차를 개발하고 있는 스웨덴 자동차 회사 NEVS는 최근 공장 직원 670명 중 절반에 가까운 300명을 감원했고, 새로운 자금줄을 찾고 있다. NEVS는 2012년 파산한 사브(Saab)의 자산을 인수하며 설립된 회사다. 헝다그룹은 전기차 부문에서 테슬라를 따라잡겠다는 목표를 갖고 2019년 헝다자동차를 통해 NEVS를 인수했다.

헝다자동차는 최근 중국 내 공장 협력업체에 대금을 지급하지 못했다. 헝다자동차의 한 직원은 헝다자동차가 직원들에게 지급하던 무료 식사 제공도 중단하고, 10월 한 달간 무급 휴가를 신청할 것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스테판 틸크 NEVS 최고경영자(CEO)는 “헝다와 일이 잘되지 않을 것을 가정해 움직이고 있다”며 “우리는 인수 또는 프로젝트 자금 지원 의향이 있는 이들과 협의에 들어갔다”고 했다.


헝다그룹의 광둥성 선전 본부 앞에 9월 23일 공안과 경비원들이 배치돼 있다. 사진 AP연합
헝다그룹의 광둥성 선전 본부 앞에 9월 23일 공안과 경비원들이 배치돼 있다. 사진 AP연합

연결 포인트 3
국민연금에 불똥
헝다그룹에 400여억원 누적 투자

헝다그룹 부채 위기 불똥이 한국 자본으로도 튀고 있다. 국민연금은 헝다그룹에 5년간 총 410억원을 투자해 적지 않은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인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월 5일 국민연금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2016년부터 9월 22일까지 중국 헝다그룹에 투자한 누적 금액은 400여억원이다. 국민연금은 세 곳의 위탁 운용사를 통해 헝다그룹 주식에 투자한 것으로 집계됐다. 2016년 26억원에서 2017년 123억원, 2018년 106억원 수준으로 파악됐다. 이어 2019년 87억원, 지난해 60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투자 잔액은 9월 22일 기준으로 8억원인데, 김 의원은 올 들어서만 42억원의 평가 손실이 발생했을 것으로 추산했다.

김 의원은 “국민연금은 중국 정부와 헝다그룹의 대응을 면밀하게 주시하고 필요할 경우 위탁 운용사에 전액 매도 지시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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