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 겐이치로(吉田憲一郎) 소니 CEO 도쿄대 경제학부, 전 소니 사장실장, 전 소니네트워크커뮤니케이션 사장, 전 소니 최고재무책임자(CFO)
요시다 겐이치로(吉田憲一郎) 소니 CEO
도쿄대 경제학부, 전 소니 사장실장, 전 소니네트워크커뮤니케이션 사장, 전 소니 최고재무책임자(CFO)

해외 투자자들은 존재조차 잘 몰랐다. 소니 내부에서 그에게 거는 기대가 딱히 큰 것도 아니었다. 2018년 4월, 소니의 11대(代)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로 부사장인 요시다 겐이치로(吉田憲一郎)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취임했을 때의 일이었다. 그는 강렬한 개성과 천재성에 빛났던 역대 소니 사장들과 달랐다. 소니 경영자라고 하면, 공동 창업자 모리타 아키오(盛田昭夫)와 이부카 마사루(井深大) 이 두 사람을 시작으로 하는 ‘강렬한 개성’이 공통점이었다. 프로 성악가로도 활약했던 5대 사장 오가 노리오(大賀典雄·1982~95년 재임)는 CD를 세상에 내놓으며 음악 감상의 세계를 디지털화했다. 6대 사장 이데이 노부유키(出井伸之)는 소니를 AV(음향·영상) 기업에서 IT 기업으로 변신시키는 데 매진했다. 9대 하워드 스트링거는 소니 최초의 외국인 사장이었다. 10대 사장 히라이 가즈오(平井一夫)는 음악 사업 자회사인 CBS 소니(현 소니뮤직) 출신으로 소니 톱 경영자에 오른 이색 경력을 지녔다.


2018년 취임 당시 평가는 ‘가장 소니답지 않은 지루한 톱 인사’

요시다 사장은 재무 출신으로, 그에 대한 사내외 인물평 가운데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성실하다’이다. 취임 때는 ‘가장 소니답지 않은 지루한 톱 인사’라는 얘기도 나왔다. 그러나 취임 후 3년 반이 지난 현재, 그가 이뤄낸 실적은 놀랍다. 사업 구조에 큰 칼을 휘두름으로써 수익력을 회복했다. 10월 28일 일본 소니 그룹은 올해(2021년 4월~2022년 3월)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9% 증가한 1조400억엔(약 10조4000억원)이 될 전망이라고 발표했다. 실적이 확정된다면 창업 75년 역사상 처음으로 영업이익 1조엔을 넘어서게 된다. 11월 16일 현재 소니의 시가총액(시총)은 18조400억엔(약 180조4000억원)으로, 요시다 사장이 취임했을 때보다 3배 가까이 올랐다. 소니의 시총은 어느덧 코스피 시총 1위 삼성전자(약 426조원)의 44% 수준까지 따라왔다. 코스피 2위 SK하이닉스(약 81조원)보다는 2배 이상 높다.

2020년 5월 8일 자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요시다를 처음 보는 사람은 붙임성 있게 남의 말에 귀 기울이는 모습에 놀란다. 감정을 드러내는 테크 기업 경영자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다. 하지만 그가 소니의 과거 확대주의를 냉정히 되돌아보는 자세는 미국 알파벳의 순다르 피차이 CEO나 마이크로소프트(MS)의 사티아 나델라 CEO 등 테크 기업의 신세대 리더와도 통한다”고 분석했다. 속단은 금물이지만, 재임 3년간의 성과를 볼 때, 그가 훗날 ‘소니판(版) 팀 쿡’으로 불리게 될지도 모른다. 팀 쿡은 스티브 잡스라는 전설적인 카리스마 경영자 뒤를 이으며 시장의 불안을 불러왔지만, 잡스 시절보다 애플을 훨씬 더 크고 수익력이 뛰어난 기업으로 키워냈다.

남의 말 주의 깊게 듣는 타입…직원들은 “사장님” 대신 “요시다상”이라 불러

확실히 요시다 사장은 카리스마가 넘치거나 개인적 매력으로 승부하는 타입은 아니다. 소니라는 대기업을 이끄는 수장이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소니 직원들도 그를 “샤초(社長·사장님)” 대신 “요시다상”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공부에 열심이다. 궁금했던 것을 끝까지 따지고 생각도 아주 깊다”는 평가도 나온다.

소니는 요시다 사장의 평생직장이었지만, 그의 경력은 소니의 주류에서 벗어나 있다. 대학(도쿄대 경제학부) 졸업 후 1983년 곧바로 소니에 입사했지만, 테크 중심의 기업이었던 소니에서 그는 주로 증권·재무 쪽이었고, 주니어 시절부터 자회사와 해외 파견 등 ‘변방’을 많이 돌았다. 1998년 이데이 사장 시절에 사장실장을 잠시 맡기도 했지만, 이후 2000년 자회사인 소니 커뮤니케이션네트워크(현 소니네트워크커뮤니케이션)로 출향(出向·소속을 아예 자회사로 옮기는 것)됐고 2005년 소니 커뮤니케이션네트워크 사장이 됐다. 일본 기업에서 중견 이후에 출향된 직원이 본사로 복귀하는 일은 드물다. 그러나 요시다는 2013년에 히라이 당시 소니 CEO의 부름을 받고 본사로 복귀, CFO에 취임한 2014년부터 개혁의 참모역으로서 활약했다. 이때 재무·포트폴리오 전략을 면밀하게 세운 덕분에 소니는 급속히 부활하게 된다. 물론 당시 CEO였던 히라이의 역량 덕분이지만, 당시에도 요시다가 ‘소니 부활’의 숨은 일등 공신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최근 요시다 사장이 강조하고 있는 ‘감동과 사람을 축으로 한 경영’이라는 방향성도 이때 시작됐다.

‘조용한 개혁’ ‘선택과 집중’으로 올해 역대 최고 영업이익 달성할 듯

최원석 조선일보 국제경제 전문기자 온라인 칼럼 ‘최원석의 디코드’ 필자, ‘테슬라 쇼크’ ‘왜 다시 도요타인가’ 저자, 전 ‘이코노미조선’ 편집장
최원석 조선일보 국제경제 전문기자
온라인 칼럼 ‘최원석의 디코드’ 필자, ‘테슬라 쇼크’ ‘왜 다시 도요타인가’ 저자, 전 ‘이코노미조선’ 편집장

소니는 10년 전만 해도 삼성·애플 등에 밀려 거의 망해가고 있었다. 2008년 이후 2011년까지 4년 연속 적자였고 2011년엔 7조원대라는 창사 이래 최대 적자 늪에 빠졌다. 2012년에 잠시 흑자 반전했다가 다시 2013~2014년 연속 적자. 소니의 침몰에 일본인이 입은 충격과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최근 소니 결산을 보면 게임·전자 부품·금융·음악·영화 등에서 골고루 이익을 늘리며 각 부문끼리의 시너지 효과를 키워나가고 있다. 정액의 과금 수입을 얻는 구독경제를 구축하면서 수익 안정화에 성공한 부분도 크다. 물론 이러한 사업 구조 전환을 요시다 사장이 전부 한 것은 아니다. 역대 사장들이 당대의 실적은 좋지 못했더라도, 전자 기술과 엔터테인먼트의 융합을 목표로 지속적으로 변화를 시도했던 것이 지금 와서 빛을 보게 된 측면이 적지 않다. 그러나 소니가 사업의 선택·집중에 성공하면서 실적이 빠르게 회복한 것엔 재무에 밝고, 또 남의 말에 귀 기울이고 깊이 고민하는 타입이지만 구조조정에 신속한 요시다 사장의 공이 크다.

소니는 지난 5월의 경영방침 설명회에서 자사의 게임·영화·음악 IP를 서로 연결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동시에, 콘텐츠 체험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소니의 반도체·영상·스마트폰·통신·AI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D2C와 보유 IP 간, IP와 기술 간 시너지 강조

요시다 사장이 강조하는 것이 D2C(Direct to Consumer), 즉 소비자와의 직접 유대 강화다. 게임의 네트워크 서비스인 ‘PS 네트워크’의 월간 액티브 유저 1억1000만 명 등을 더하면, 지금도 1억6000만 명의 소비자와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직접 연결돼 있다는 게 소니 설명인데, D2C 대상을 장기적으로 10억 명으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소니는 이러한 목표(purpose)에 정확히 초점을 맞춰 사업을 전개해 나가는 동시에 거기에 꼭 필요한 기업을 적극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반대로 목표에 맞지 않는 사업이나 기술은 과감히 정리해 나가는 중이다. 이를테면 플레이스테이션의 인기 게임 ‘언차티드’를 블록버스터 영화로도 만들고, 소니가 판권을 가진 영화 ‘스파이더맨’을 게임으로도 만드는 등 자사 IP를 다양하게 연결해 수익을 높이는 식으로 자사 IP의 시너지를 노리는데, 이에 필요한 기술 기업이나 IP 자산은 적극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소니는 최근에 단순한 재미를 추구하되 특별한 스토리가 존재하지 않는 모바일 게임을 만들어온 사업부를 통째로 매각했는데, 앞으로는 게임이라도 영화·드라마화할 수 있는 것의 개발에 집중키로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