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신고용 대국 일본에서 당연시되던 ‘부업(副業) 금지’ 원칙이 무너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이 3년째 계속되면서, 부업·겸업을 허용하는 대기업이 늘어나는 등 고용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4월 10일 자 도쿄(東京)신문은 “기업이 사외 겸업(兼業)·부업을 용인하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면서 “본업(本業)에 대한 영향이나 과로 우려 등의 과제는 있지만, 본업 이외의 일을 경험함으로써 사원 자신의 성장이나 경력을 생각할 기회를 얻는 이점도 있다”고 썼다. 도쿄도(都)가 작년 4월 공표한 도내 기업 실태조사에서는 34.9%의 기업이 전면적, 혹은 조건부로 겸업·부업을 인정했다. 겸업·부업을 인정한 기업의 이유로는 ‘유연한 노동에 따른 우수 인력 채용’이 38.7%로 가장 많았고, 이직률 저하(37.8%)가 뒤를 이었다. 인정하지 않는 기업의 이유로는 ‘본업이 소홀해질 수 있다’가 67.7%로 최다였다. 도입하려는 기업의 과제로는 ‘직원 건강관리(41.2%)’ ‘사내 업무에 지장(40.3%)’ 등이 언급됐다.


도쿄 기업의 35% “부업·겸업 인정한다”

부업 등 외부 경험의 중요성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기업도 나오고 있다. 올해 초 대형 보험사인 미쓰이스미토모 해상화재보험은 앞으로 부업이나 자회사 파견 등의 경험을 과장 승진 조건에 추가한다고 선언했다. 일본 대기업이 관리직 승진에 외부 경험을 필수 조건으로 부과하는 것은 극히 드물다. 미쓰이스미토모 해상화재보험이 이례적 조건을 내건 이유는 다양한 경영 감각을 갖추려면 사외 경험이 필수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파견·부업 등에서 얻은 지식이나 인맥을 사내에서 살려 신규 사업 개발을 촉진하겠다는 것이다. 손해보험은 주력인 화재와 자동차보험의 성장이 한계에 달한 상태다. 따라서 다양한 인력 양성과 외부 연계 강화가 과제로 떠올랐다.

이 회사의 부·과장은 현재 3900명인데, 중도 채용자를 포함해 20%가 외부 경험이 있다. 회사는 우선 2025년까지 외부 경험이 있는 부·과장 비율을 30% 이상으로 높일 계획이다. 빠르면 2030년부터 새로 과장에 승진하는 모든 사원에게 외부 경험을 요구하겠다는 방침이다.

도시 시스템 설계 회사인 엑시오그룹은 지난 2월 창사 이래 지속했던 사원 부업 금지 규정을 해제했다. 대신 새로운 지식이나 풍부한 경험을 가진 인재 육성과 채용을 목적으로 하는 부업 제도를 도입했다. 아울러 다양한 경험자를 기간 한정으로 외부에서 받아들이는 ‘부업 인재’ 채용 제도도 시작했다.

부업 해금(解禁)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회사 성장과 연결하는 동시에, 일하기 좋은 회사라는 이미지를 높여 인재를 더 확보하는 게 목적이다. 다만 부업은 원칙적으로 시간 외(근무 시간 외나 휴일)에 하는 것을 인정하고, 활동 시간이 너무 길어져 건강에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사원에게 정기적 상황 보고를 요구하기로 했다. 한편 부업 인재 채용은 현재 10개 분야를 모집 중인데, 앞으로도 필요한 인재 모집을 그때그때 실시할 예정이다.


 


미즈호은행 등 사내 부서 간 겸업 허용도

다른 기업에서의 부업 허용뿐 아니라, 사내 소속 부서와 다른 부서의 겸업도 늘고 있다. 미즈호은행은 주 1일 타 부서 업무를 겸업하는 제도를 시작해 현재까지 500명 가까이 이 제도에 참여하고 있다.

또 기린 홀딩스, 야후와 전직(轉職) 지원회사 파솔캐리아는 지난 2월부터 3사 간에 부업 인재를 받아들이는 실증 실험을 시작했다. 우선 총 7명이 참가, 소속 기업 이외의 신규 사업 개발이나 사내 다양성 추진 분야에서 일한다. 부업 사원의 커리어 의식 변화나 업무 성과를 검증하는 것이 목적이다. 부업 기간은 3개월이며, 부업은 일주일에 하루 정도다. 부업자는 상대 기업과 업무 용역 계약을 맺으며 보수는 월 5만~10만엔(약 50만~100만원) 정도다.

파솔캐리아의 연구기관인 파솔종합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부업 수용에 관한 기업의 주된 과제는 ‘번잡한 노무 관리’ ‘업무 노하우 유출’ 등이었다. 이번 상호 부업 실증 실험에서는 참가 기업끼리 미리 업무 내용을 합의함으로써 노하우 유출에 대한 불안을 줄이면서도 서로 강점을 배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부업하고 싶은 사람과 기업을 연결하는 부업 매칭 서비스 ‘슈마츠 워커’를 운영하는 슈마츠 워커의 지난 2월 보고서에 따르면, 자사가 다루는 부업 서비스 고객사가 전년보다 20%, 5년 전보다 420% 증가했다. 2017년 조사에서는 고객사가 54개 사였지만, 올해 조사에선 225개 사였다. 부업 서비스 형태 가운데 82%가 원격 서비스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나, 팬데믹으로 뉴 노멀의 생활 양식이 부업에도 그대로 침투되고 있음이 확인됐다.


기린·야후·파솔캐리아 등 대기업 3사, 부업 인재 상호 채용 위해 실증 실험

부업은 개인 입장에선 자기 업무 영역 혹은 소득을 넓히는 방법일 수도 있지만, 조직 입장에서도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직원이 조직에 속한 일 이외의 새로운 일을 함으로써, 개인은 물론 조직에 새로운 아이디어와 활력을 불어넣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창작이 주 업무인 경우엔 특히 그렇다. 일본 사례는 아니지만, 패션 회사 샤넬에서는 크리에이터들에게 본업 이외의 외부 사업이나 프로젝트에 참여할 자유가 주어진다. 예를 들어 샤넬의 루시아 피카 화장품 총괄 디렉터는 패션 잡지 에디터를 겸했다. 샤넬에 속해 있으면서 외부 일감을 이따금 하는 정도가 아니라, 어떻게 보면 두 가지 ‘메인 잡’을 동시에 하는 것까지 허용된 셈. 샤넬 경영진이 자사 크리에이터들에게 본격적인 ‘투잡’을 허용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창의적인 사람은 자유가 없으면 매우 불행해지고, 불행해지면 창의성이 사라지고, 그렇게 되면 샤넬의 신제품 출시에 악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최원석 조선일보 국제경제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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