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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민 WTCS 대표 광운대 경영학 박사, 한국무역협회 전 FTA통상연구실장·전 베이징 지부장· 전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최용민 WTCS 대표 광운대 경영학 박사, 한국무역협회 전 FTA통상연구실장·전 베이징 지부장· 전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국내 유명 정치인이 우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지구 반대편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발생했다고 표현할 정도로 이 전쟁은 초기에 경제적 측면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단기전이 무산되면서 현실은 완전히 달라졌다. 글로벌 경제가 촘촘한 공급망으로 얽혀 있음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했다. 1단계로 우크라이나의 수출품에 대한 걱정이 컸지만, 이제는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경제 제재와 러시아의 수입 및 수출 금지 카드가 나오면서 부작용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에 따른 물류비 충격에 원자재 가격 급등이 겹치면서 인플레이션 공포가 글로벌 경제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단순히 공급망을 복수화하는 소극적인 전략에서 벗어나 자원에 대한 대외 투자를 늘리고 원자재 수출 규제를 막는 국제적인 룰 세팅(제정)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빠르면 3일, 늦어도 1주일 내에 종료될 전쟁으로 인식됐다. 대다수 기업은 잠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예견은 완전히 빗나갔다. 현재로선 종료 시점을 기약하기 힘들고 생산 시설이나 농장이 완전히 파괴돼 이를 복구하는 데도 상당한 기간이 필요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올해는 물론 내년까지 그 여파가 이어질 전망이다. 이제는 원자재 대외 의존도가 높은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글로벌 차원에서 최대 이슈로 부상했다. 

우려의 시선이 가장 몰리는 곳은 우크라이나가 생산하는 곡물 자원이다. 우크라이나는 미국, 브라질, 아르헨티나에 이어 세계 4위 옥수수 생산국이다. 시장점유율도 두 자릿수에 달해 개전 이후에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다. 옥수수는 사료(80%)와 다른 가공식품의 원료(19%)로 주로 소비되는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로부터의 공급이 동시에 제한되면서 올해 2월 이후 큰 폭의 가격 상승세를 보였다. 3월에 부셸당 가격이 765센트(약 9500원)까지 상승하며 지난해 연말 대비 30% 정도 뛰어올랐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공급량이 전 세계의 30%에 육박하는 밀은 식량(32.9%), 가공(30.8%), 사료(36.3%) 등 다양한 방면에서 골고루 사용되고 있다. 제빵, 제과, 라면, 음료 등에 주로 사용되면서 우크라이나에 ‘유럽의 빵 공장’이라는 닉네임을 부여한 곡물인데 올해 3월 부셸당 가격이 1425센트(약 1만7800원)까지 뛰면서 지난해 말보다 85%나 상승했다. 특히 러시아는 유럽연합(EU)을 제외하면 밀 최대 수출국이라는 명성을 누리고 있다. 앞으로가 더 심각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번 전쟁으로 내년까지 밀과 옥수수 가격은 약 20%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며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이러한 가격 고공행진은 상당 기간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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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물, 에너지 등 국제 원자재 시장 영향력 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가 압도적인 공급자인 희귀 가스는 더 큰 문제다. 네온과 크립톤은 반도체 제조 공정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소재로, 대체가 어렵고 지구상에 극미량만 존재해 공급이 제한적이다. 특히 우크라이나가 전 세계 공급량의 70%를 차지하는 네온은 반도체는 물론 디스플레이 공정을 위한 엑시머 레이저, 전구, 절연 보안경 등의 제조에 필수 소재다. 크립톤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세계 생산량의 약 80%를 차지한다. 이에 따라 네온과 크립톤의 국내 수입 단가는 최근 두 배 이상 급등했다. 네온 가격은 킬로그램당 150달러(약 18만7000원)를 돌파했으며, 크립톤은 킬로그램당 700달러(약 87만6000원)에 육박한 데 이어 앞으로도 상승곡선이 점쳐지고 있다. 다행히 지난해까지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네온을 최근 포스코가 국산화에 성공하면서 조만간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에너지 관련 원자재와 비철금속으로 눈을 돌리면 러시아의 영향력은 더 크다. 특히 서방의 수입 규제와 러시아의 수출 규제가 맞물리면서 해당 원자재 시장은 안개가 자욱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다. 거의 모든 제품의 생산 원가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원유에서 러시아 생산량은 세계 2위다. 러시아 크렘린의 입에 의해 가격이 들썩일 정도인데 만약 공급 차질이 본격화하면 원유 가격 상한선은 예단이 불가능하다. 이미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천연가스는 러시아의 비중이 17%에 달해 전 세계가 영향권이다.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은 EU가 공급선 다변화 및 소비 감축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천연가스 가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만약 전쟁이 장기화하면 러시아로부터 직접 공급받는 유럽은 물론 여타 지역 물량으로 유럽의 부족분을 메워야 하므로 글로벌 쇼크가 우려된다. 

비철금속 중 알루미늄과 니켈에 대한 러시아 입김은 상당하며 팔라듐은 40%를 웃돌아 절대적이다. 팔라듐은 가볍고 단단해 고급 외과 수술용 기구, 열계측기, 베어링, 장식용 귀금속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특히 수소를 잘 흡수하고 수소를 방출시키면 활성도가 높아져 수소 정제에 쓰이는데, 역시 가격이 요동치고 있다. 한때 가격이 톤당 3000달러(약 375만원)를 돌파하며 지난해 말보다 60% 이상 급등했으나 수요 조절에 의해 현재는 2000달러(약 250만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구리, 알루미늄, 니켈, 팔라듐 채굴이 이뤄지지 않아 구리광, 알루미늄광 등 광석 형태의 비철금속을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비철금속 광석을 수입해 제련·가공을 통해 괴·판·박 등 형태로 가공하는 정도여서 국제 원자재 리스크에 그대로 노출된 상황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지속적인 물가 상승)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성장률 둔화와 함께 원자재 인플레이션 쓰나미가 오는 것 아니냐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에스토니아와 핀란드를 중심으로 경기침체가 예상되며, 에너지 대외의존도가 높은 중국과 일본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더불어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 금지로 공급 축소가 예견되면서 올해 상반기에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7%를 상회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무역수지 악화가 불가피하고 기업은 제조 원가 상승분을 판매 가격에 모두 전가하기가 어려워 채산성 악화 및 가격경쟁력 약화에 직면해 있다. 수입 원자재 가격이 10% 상승했을 때 국내 기업의 제조 원가는 제조업에서 1.1%, 전 산업에서 0.43% 각각 오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코로나19에 버금가는 또 다른 복병이 나타난 셈이다. 따라서 원유와 천연가스에 대한 관세(현재 3%)를 감면하고 시세 차익을 노린 매점매석을 단속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도 원자재 비축을 늘리고 해외 자원 개발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