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한시사일본연구소 소장 현 경희사이버대 일본학과 강사, 전 한국경제신문 온라인총괄 부국장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 현 경희사이버대 일본학과 강사, 전 한국경제신문 온라인총괄 부국장

일본에서 골프는 20여 년 전에 이미 보통 사람들이 즐기는 대중 스포츠였다. 고베에 거주할 당시 동네 목욕탕을 운영하는 노인이 종종 골프백을 들고 나가는 걸 보며 ‘일본은 부자 나라’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골프는 비즈니스맨이나 부자들이 하는 운동으로 여겨지던 시기였다. 일본은 ‘골프 천국’이다. 골프장은 남쪽 오키나와부터 북쪽 홋카이도까지 전국에 2200개가 넘는다. 골프장 이용료가 저렴한 편이고, 비회원들도 예약하기가 어렵지 않다.

일본의 버블(거품) 경제가 꺼진 뒤 2000년대 들어 골프 산업은 대표적인 사양 업종으로 꼽혔다. 장기 경기 침체에다 인구 감소까지 겹쳐 골프 관련 시장이 지속적으로 쪼그라들고 있다. 그러던 골프 시장에 모처럼 활기가 돈다. 코로나19 여파로 골프장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골프용품도 잘 팔린다.

일본에서 골프 시장은 골프장, 골프연습장, 골프용품을 포함한다. 연간 시장 규모는 2020년 기준 1조1650억엔(약 10조4000억원)으로 집계됐다. 골프장 7180억엔(약 6조4000억원), 골프용품 3170억엔(약 2조8000억원), 골프연습장 1300억엔(약 1조1000억원)씩이다. 이는 2011년과 비교해 각각 22.1%, 5.1%, 4.4%씩 감소한 수준이다. 전체 골프 시장은 10년 전보다 2270억엔(약 2조원) 줄었다.


2021년 골프장, 골프용품 매출 증가

10여 년간 줄곧 내리막이던 골프 시장이 2021년에 증가세로 전환됐다. 지난해 골프장 입장자 수는 1002만8048명으로 전년보다 10.4% 증가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 여파로 골프장들이 영업 일수를 줄여 이용자가 891만 명까지 떨어졌다. 2019년 골프장 입장자는 929만 명이어서 지난해 이용자는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도 더 많은 수준이다. 골프연습장은 골프장보다도 더 호황이다. 2021년의 골프연습장 이용자는 2494만 명으로 전년보다 11.1% 증가했다. 2019년과 비교해도 27.9% 급증했다. 난생처음 골프를 시작하는 젊은이나 여성 초보자들이 많아진 덕분으로 풀이된다. 골프용품 시장은 전년보다 20% 정도 확대됐다. 일본 총무성 가계조사에 따르면 2021년 가구당 골프장 지출액도 전년보다 0.5% 증가했다. 특히 29세 이하 젊은층의 지출 규모가 두 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요즘 일본에서는 실내 밀집과 밀폐를 피할 수 있는 골프, 캠핑 등 실외 스포츠의 인기가 커지고 있다. 특히 골프가 ‘사회적 거리 두기’에 가장 적합한 스포츠로 인식되면서 골퍼들이 부쩍 늘어났다. 그동안 골프를 멀리했던 젊은이나 여성들이 골프에 새로 입문하고 있다. 골프연습장이나 골프장을 찾은 이용자가 급증하는 배경이다. 게다가 버블 경제기에 법인카드를 이용해 골프를 즐겼던 비즈니스맨들이 골프장을 다시 고객 접대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야노경제연구소는 최근 2년 동안 골프를 새로 시작한 사람이 6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일본 골프장, 2002년 정점 찍고 감소 추세

일본의 골프장은 2002년에 2457개로 정점을 찍은 뒤 줄어드는 추세다. 코로나19 사태 속에 2020년에도 11개 감소했다. 일본골프장경영자협회(NGK)에 따르면 골프장은 2020년에 2216개로, 전성기에 비해 241개 사라졌다. 골프장은 버블 경제 덕분에 1980년대 중반부터 급증하기 시작, 2000년대 초반까지 줄곧 증가했다. 버블 경제 당시 골프장과 부동산 투자 붐이 겹쳤다. 전국 어디에나 골프장을 만들고 회원권을 발행하기만 하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버블 경제가 꺼진 뒤에도 골프장은 계속 증가했다. 골프장 건설은 기획에서 완공까지 오랜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골프장은 2003년부터 감소세로 전환했지만, 급격하게 줄어들진 않았다. 한 번 개장하면, 경영이 힘들어져도 웬만해선 문을 닫지 않는다. 골프장 오너가 되고 싶은 경영자나 거대 국내외 골프장그룹에 의한 매수 등 인수자들이 존재하는 덕분이다.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대지진도 골프 시장에 큰 충격을 줬다. 2만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대지진 여파로 동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많은 골프장이 폐쇄됐다. 2014년 한 해만도 50개의 골프장이 문을 닫은 적이 있다. 골프장은 한번 방치하면 황무지가 되기 때문에 다른 사업 용도로 쓰기가 쉽지 않다. 일본에서 문을 닫는 골프장은 태양광 발전 용지로 사용되는 사례가 많다. 최근 재생 가능 에너지의 일본 내 수요가 급증하는 추세여서 골프장을 대규모 태양광 단지로 바꾸는 곳이 늘고 있다.

골프장 이용료(비회원, 캐디피 포함)는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저렴한 편이다. 도쿄, 오사카 등 대도시 인근 괜찮은 골프장은 평일 1만5000엔(약 13만원), 주말 2만엔(약 18만원) 선에 이용할 수 있다.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 골프장의 경우 1만엔(약 9만원) 이하에 이용할 수 있는 곳이 꽤 있다.


‘2025년 인구 감소’, 골프 시장 회복 한계

일본 골프 시장이 회복세로 돌아섰지만, 추세적인 전환인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인구 감소가 10년 이상 이어지고 있는 데다 근로자들의 임금이 장기간 오르지 않고 있어서다. 소득이 많은 상류층의 경우 골프 대신 승마, 요트를 즐기는 인구도 많다. 전체 인구에서 골퍼 비율은 5.8%에 불과하다. 골프 산업이 마주한 또 다른 악재는 ‘2025년 문제’다. 인구수도 많고 소비력이 왕성한 ‘단카이(전후 1947~49년에 태어난 베이비 붐) 세대’가 후기 고령자인 75세가 넘는 2025년부터 골프 인구가 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관련 업계에서는 골프 인구 감소에 대비해 회원권에 의존해온 골프 비즈니스모델을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단카이 세대들은 버블 경제 당시 주로 회사 접대비로 골프를 쳤지만, 요즘은 접대비가 줄어 골프장 경영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시카와 토모히사 일본총합연구소 연구원은 “신규 골퍼를 늘리려면 18홀 코스를 절반으로 나눠 젊은 초보 골퍼나 가족 단위 이용자들이 싼 가격으로 즐길 수 있게 바꾸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인구 감소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맞는 골프 비즈니스모델의 혁명적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한다.

포스트 코로나와 저출산, 초고령 시대를 맞아 골프장에 전원주택이나 실버용 주택을 지어 분양하자는 구상도 나온다. 지방에 버려진 골프장을 재택근무시설로 바꾸자는 아이디어다. 케이안컴퍼니의 다카오카 고조 대표는 “골프장 내 부지를 사용해 별장이나 은퇴자용 주거시설을 만들어 분양하면 새로운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올 하반기, 일본 골프투어 증가 예상

올 하반기에 일본 여행이 재개되면 한국 등 외국인 골프투어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한국에선 20~30대 젊은이들까지 골프를 즐기는 본격적인 골프 대중화 시대로 접어들었다. 수도권은 물론 지방도 평일 골프장 예약이 어려울 만큼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다. 골프장 이용료도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비싼 편이다. 관광 업계에선 일본 여행 재개를 앞두고 새로운 골프투어 상품을 준비하는 곳도 나타나고 있다. 일본 전문 여행사인 미래재팬의 이순애 대표는 “지리적으로 가깝고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비용이 적게 드는 일본 여행을 가려는 대기 수요가 많다”며 “올 하반기에 일본 여행이 재개되면 골프투어 여행자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또 “코로나19 발생 이전처럼 교통이 불편한 산중의 골프장에 갇혀 3, 4일 동안 골프만 치는 기존 골프 패키지와 다른 차별화한 새로운 형태의 골프투어 상품이 인기를 끌 것”이라고 말했다.

최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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