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최용민 WTCS 대표 광운대 경영학 박사, 한국무역협회 전 FTA통상연구실장·전 베이징 지부장· 전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최용민 WTCS 대표 광운대 경영학 박사, 한국무역협회 전 FTA통상연구실장·전 베이징 지부장· 전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세계 경제에 빨간불이 들어왔다’고 말하면 대부분 서민은 ‘나와 무슨 상관인데’라며 무시해 버린다. 그러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은 일반 대중의 밥상을 위협하고 서민의 삶을 팍팍하게 만드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흐름을 반영해 경제학자들이 고안한 것이 ‘고통지수(Misery index·인플레이션+실업률)’다. 이 지수는 특정한 기간 서민의 생활에 밀접하게 영향을 미치는 인플레이션율(물가 상승률)·실업률·국민소득 증가율 등 경제적 수치를 계량화해서 표시한 것이다. 그 기원은 불쾌지수에서 출발했다. 불쾌지수가 온도나 습도 등 기상 요소들을 고려해 산출했다면, 고통지수는 일반 국민이 느끼는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체감도를 나타낸 것으로 국가 간 비교용으로도 사용된다. 미저리(misery)라는 영어 단어가 의미하는 고통과 불행이 다름 아닌 일반 서민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최근 위드 코로나(With Corona·단계적 일상 회복) 시대의 개막으로 해외여행이 일반화되는 등 외부 활동도 정상 수준에 근접하고 있으나 서민의 고통은 또 다른 장벽을 만나 역사적으로 아주 높은 고통지수를 만들어내고 있다. 올해 6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자체 전망치를 기준으로 올해 전 세계 고통지수를 산출한 결과 13.7로 예상됐다. 이는 2013년부터 2019년까지의 평균 8.2에 비해 거의 두 배 정도 높아지는 수준이다. 지난해의 9.9에 비해서도 가파른 상승세다. 전 세계 국가의 실질 경제성장률이 지난해 5.8%로 코로나19 위기에서 벗어나는 모양새를 보였으나 올해는 3.0%로 급격히 둔화하는 추세다. 이에 따라 전 세계 광의의 고통지수(협의의 고통지수에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뺀 것)는 지난해 4.1에서 올해는 10.7로 로켓처럼 솟아오르고 내년에도 8.5를 기록해 비슷한 추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한국의 고통지수도 지난해 2.0에서 올해는 5.3으로 두 배 이상 높아지고 내년에는 4.4로 전망된다. 

특히 물가 상승에 따른 서민의 고통은 올해 상반기에 급반전의 역사를 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예상된 OECD 국가의 올해 물가 상승률은 4.4%에 불과했으나 올해 6월 발표한 예상치는 8.8%로 정확하게 두 배 뛰었다. 더욱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국)은 2.7%에서 7.0%로 거의 세 배 정도 높아졌다. 2023년 수치도 녹록지 않다. 지난해 말에 2023년 물가 상승률은 1.8%에 불과할 정도로 낮게 예측됐지만, 현재로서는 5%에 근접할 것으로 OECD는 내다보고 있다. 여타 지역들도 내년에 6%를 웃돌 것으로 보여 거의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길을 갈 것이라는 빨간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튀르키예(옛 터키)는 올해와 내년에 각각 70%대와 40% 선의 폭발적인 물가 상승률이, 아르헨티나도 각각 60%와 50%의 고공행진이 예고돼 이들 국가의 고통지수가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최고조에 달할 전망이다.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복병인 ‘인플레이션 감염병’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진국인 독일, 영국, 미국에선 이미 40년 만에 최고치라는 기록적인 인플레이션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최근 가장 큰 피해를 본 국가는 유럽이며, 에너지 부족이 난민 유입보다 더 큰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지난해 12월에 2022년 유로존 인플레이션은 2%대를 점쳤으나 올해 6월에는 7%대로 뛰어올랐다. 실제로 석탄의 국제가격은 1년 전과 비교해 60∼70% 상승하는 곡선을 그리고 있으며, 밀의 국제 가격 상승 폭도 60%대로 올라섰다. 가스 가격은 미국에선 50% 이상, 유럽에선 30% 올랐다. 


물가 상승이 서민의 삶을 얼마나 팍팍하게 만드는지는 유명한 팝송으로도 확인된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미국의 흑인음악 스타였던 마빈 게이(Marvin Gaye)는 ‘Inner City Blues’라는 곡을 통해 적나라하게 고통을 호소한다. “인플레이션으로 자산을 늘릴 기회는 사라지고 있는데 각종 고지서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쌓여만 간다. 청년들을 팍팍한 삶의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고 내가 살아가는 처지를 스스로 바라보며 분노하고 있다네.” 이 노래의 그다음 구절은 물가 상승에 대한 악몽을 더욱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범죄가 늘어나고 경찰은 미친 듯이 총을 쏘고 공포가 사회를 덮치고 이런 우리 사회의 내일을 아마 신만이 알겠지(필자가 임의 번역).” 서민의 지갑을 얇게 하고 좀 시간이 지나면 경기 침체로 일자리를 앗아가며 사회 분위기가 흉흉해져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악의로 마음을 채우게 된다는 인플레이션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명곡이다. 

최근 물가 상승은 오일쇼크 등 특정 원자재를 중심으로 폭등한 이전의 상황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일반 서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가스와 석유는 물론 옥수수와 밀 등 먹거리와도 직결되는 상황이다. 특히 인도 등의 극심한 가뭄과 갈수록 종료 시기가 미뤄지고 있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사태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많은 상품 시장에서 중요한 공급업체라는 점을 새겨야 한다. 이들의 공급량을 합하면 세계 밀 수출의 약 30%, 옥수수·광물·비료·천연가스 등은 20%, 석유가 11%를 각각 차지한다. 먹거리 제조에 필수적인 식용유에 대한 글로벌 공급망도 붕괴 직전이다. 전 세계 국가의 3분의 2가 해외 공급선에 의존하는 식용유 비율이 50%를 넘는데 전쟁 발생 이후 가격이 30% 정도 치솟아 금값이라고 지칭되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 식량은 부족을 넘어 일부의 생존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악화될 수밖에 없다. 이는 아프리카 등 저소득 국가와 선진국 내 하층 소득자의 생활 수준을 빠른 속도로 끌어 내릴 것이다. 

물가 폭등을 통한 고통지수 급상승은 어떤 이유 때문일까.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그리고 글로벌 공급망 붕괴, 코로나19에 따른 물류비 상승과 재정지출 확대 등이 우선 거론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한 실정이다. 특히 미국발 인플레이션은 달러에 대한 높은 가치 유지(강달러) 정책을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더불어 천정부지로 치솟는 이자율도 문제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빅스텝’과 ‘자이언트 스텝’을 언급하면서 최근 한 번에 0.75%포인트 금리 인상이라는 초강수를 행동으로 옮겼다. 올해 연말에는 미국 금리가 4% 정도로 수직 상승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이자율 상승은 각국 주식시장에 부담을 주고 개도국의 금융시장과 환율의 교란 요인으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모든 상품의 제조 원가를 높여 물가 상승에 불쏘시개가 된다. 특히 통화량 증발로 인한 물가 상승은 통화의 환수라는 고육책이 있지만 원가 상승(Cost Push-up)에 따른 물가의 고공행진은 고착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상당히 존재한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전 세계에 가격전쟁을 촉발했다. 2022년 OECD 국가의 인플레이션은 전쟁 발생 전에 예상했던 것의 두 배인 거의 9%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적으로 높은 인플레이션은 가계의 실질 가처분소득과 생활 수준을 잠식해 빈부격차와 국가 간 생활 질 간극을 크게 확대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불확실성이 대폭 확대돼 기업 투자를 억제하고 이에 따라 향후 수년간 공급이 억제될 것이라는 위협도 존재한다. 동시에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은 글로벌 공급망을 계속 짓누르고 있어 기업의 생산붕괴를 야기할 수도 있다. 또한 미국과 중국 간 대결로 야기된 반도체 문제는 여타 품목으로 언제든지 확산될 수 있다. 따라서 즉각적인 국제 협력이 없다면 식량 위기라는 시한폭탄을 불발탄으로 되돌리기 힘들다. 식량, 에너지, 자원, 재정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국가별 능력도 큰 차이를 보여 갖지 못한 자의 생활고는 회복하기 쉽지 않은 깊은 낭떠러지로 추락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