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오타니 마사히코 시세이도 CEO. 사진 블룸버그
우오타니 마사히코 시세이도 CEO. 사진 블룸버그
최인한시사일본연구소 소장 현 경희사이버대 일본학과 강사, 전 한국경제신문 온라인총괄 부국장
최인한시사일본연구소 소장 현 경희사이버대 일본학과 강사, 전 한국경제신문 온라인총괄 부국장

1872년 9월, 도쿄 긴자에 일본 최초 서양식 약국이 문을 열었다. 올해로 창업 150주년을 맞은 일본 1위 화장품 메이커 시세이도(資生堂)의 발상지다. 이 회사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미를 창조하는 기업’을 추구해왔다. 회사명 ‘資生堂’는 동양 고전인 ‘역경(易經)’의 ‘至哉坤元 萬物資生(대지의 큰 덕을 입어 만물이 생성된다)’에서 따왔다. 

시세이도는 약국에 이어 치약(1888년), 화장품(1897년), 소다수 및 아이스크림(1902년), 향수(1917년) 등 다양한 신제품을 일본 소비자에게 선보였다. 화장품 업계에선 후발 주자였으나 고품질과 유통 차별화 전략으로 정상 자리에 올랐다. 그런 시세이도도 2020년에 영업 적자를 낼 뻔했다.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악재’를 피해 가진 못했다. 2014년 영입된 우오타니 마사히코(魚谷雅彦)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100년 만의 위기’ 극복을 위해 사업 재편을 서두르고 있다. 이 회사의 장기 비전은 ‘2030년 글로벌 1위 화장품 업체’다. 300년 장수 기업을 향해 뛰고 있는 시세이도의 새 성장 전략을 소개한다. 



일본 화장품 산업 주도…매출 1조엔 달성

메이지유신(1868년) 4년 뒤 창업한 시세이도의 성장사는 일본 자본주의 역사와 궤적을 같이한다. 약국에서 화장품으로 주력 업종을 바꾼 시세이도는 계열사 87개, 연 매출 1조엔(약 9조원), 전체 직원 3만5318명(2021년 기준) 규모로 커졌다. 회사 사시는 ‘美의 힘으로 보다 좋은 세계를(Beauty innovation for a better world)’이다. 1927년에 ‘주식회사 시세이도’를 출범시켰다. 1931년에 화장품을 첫 해외 수출했다. 

시세이도는 1949년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 창업 100주년을 맞은 1972년에는 기업의 외형 성장에 맞춰 사회적 책임을 실천했다. ‘시세이도 사회복지사업단’을 만들었고, 제1회 시세이도 국제회의를 개최했다. 1990년대에는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서 글로벌 화장품 업체로서 위상을 한 단계 높였다. 화장품 본고장인 프랑스 파리에 향수 전문점을 열었다. 우리나라에도 합작회사인 ‘한국 시세이도’를 설립했다. 

국내외로 사세를 키워온 시세이도는 2010년대 이후 시련을 겪었다. 일본의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국내 소비시장이 위축됐기 때문이다. 창사 이후 처음으로 외부에서 CEO를 영입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마케팅 귀재로 불리는 우오타니 사장이 시세이도의 부활을 이끌고 있다.

 

‘메이드인 재팬’의 부활

시세이도는 올해 5월 말 후쿠오카현 쿠루메시에 총 450억엔(약 4000억원)을 투입, 첨단 공장을 완공했다. 중간 가격대 스킨케어 브랜드 ‘에릭실’ ‘아쿠아레벨’을 주로 생산한다. 현재 근로자는 500명이지만, 오는 2026년까지 1000명으로 늘려 연간 생산량을 1억4000만 개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 공장에는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시설 내 소비전력의 100%를 재생 에너지로 조달한다. 사물인터넷(IoT)을 적용한 최첨단 시설이다. 스킨케어 화장품을 만드는 가마솥이 디지털 생산 방식으로 바뀌었다. 지금까지 숙련된 근로자의 경험과 촉에 의지했던 농도와 끈기 등이 자동 조절된다. 용기 뚜껑을 닫고, 박스를 포장하는 일도 로봇이 담당한다.

앞서 2019년 12월 도치기현 나스에도 총 350억엔(약 3150억원)을 투자한 새 공장이 가동에 들어갔다. 시세이도가 36년 만에 건설한 생산시설로 화제가 됐었다. 이어 2021년 9월에는 오사카부 이바라키에 총 635억엔(약 5710억원)을 투입한 공급 거점도 문을 열었다. 물류센터가 함께 들어선 시세이도의 첫 번째 생산시설이다. 시세이도 고급 스킨케어 브랜드를 생산한다. 

이들 3개 공장의 신설로 시세이도의 국내 생산공장은 최근 3년 새 3개에서 6개로 증가했다. 시설 투자비는 총 1400억엔(약 1조2600억원)에 달한다. 회사 전체 생산량은 연간 4억2000만 개로 크게 늘었다. 우오타니 사장은 “고품질 제품을 확실히 공급할 수 있는 국내 생산체제가 완성됐다”고 평가했다. 최첨단 국내 공장의 잇따른 건설은 시세이도의 성장 전략이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수출 확대를 위해 해외 생산을 늘리던 전략을 바꿔 국내에서 고가 신제품을 생산하기로 했다. ‘메이드 인 재팬(Made In Japan)’의 부활이다.


매출 2조엔, 영업이익률 18% 목표

시세이도는 코로나19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지난해부터 ‘WIN 2023’을 실행 중이다. 내년 말까지 회사를 성장 궤도로 다시 올려놓는 게 목표다. 시세이도의 혁신을 이끌고 있는 CEO가 일본 코카콜라 대표를 지낸 마케팅 전문가 우오타니 사장이다. 시세이도그룹 임원을 경험하지 않은 외부인을 CEO로 영입한 것은 창사 이래 처음이다.

우오타니 사장은 브랜드 파워를 높이는 전략으로 매출을 늘려왔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19 복병을 만났다. 그는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메이드 인 재팬’ 전략에 대해 “세계 시장에서 이길 수 있는 일본발 글로벌 뷰티 컴퍼니가 목표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브랜드 가치를 높이려면, 연구개발력을 뒷받침하는 서플라이체인과 공장, 물류가 없으면 안 된다”면서 “세계 최첨단 기술을 활용, 근로자들이 편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도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회사 장기 비전과 관련, “코로나19 사태로 100년 만의 대위기가 찾아왔다. 어디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오래 고민한 끝에 시세이도의 ‘원점’으로 돌아가 가장 경쟁력 있는 부문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래서 시세이도가 도달한 것은 ‘피부에 대한 고집’이다. 창업 당시 조제 약국에서 스킨케어, 화장수를 개발하고 화장품 업체로 성장한 시세이도의 역사야말로 글로벌 위기를 뛰어넘을 수 있는 ‘비장의 무기’라는 주장이다. 

세계 화장품 업계에서 시세이도는 매출 기준 5위다. 1위 프랑스 로레알이나 2위 영국 유니레버와 비교하면 아직 격차가 있다. 이들 선두 업체를 따라잡기 위해서도 최고 ‘스킨케어’ 업체가 돼야 한다는 게 우오타니 사장의 판단이다. 이를 위해 사업구조 재편도 서두르고 있다. 샴푸, 세안제 사업은 투자펀드에 매각했다. 돌체앤가바나와의 글로벌 라이선스 계약은 종료시켰다. ‘스킨케어’에 경영 자원을 더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화장품 업계 경력이 없던 우오타니 사장은 시세이도에 성장 활력을 다시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취임 직후 2020년, 목표로 내걸었던 ‘매출 1조엔’을 3년 앞당겨 달성했다. 브랜드 고급화와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 전략이 성과를 냈다. 그동안 시세이도의 약점으로 지적됐던 ‘e커머스’도 강화해 판매 채널 다변화에도 성공했다. 시세이도는 2022년 매출이 전년 대비 6% 증가한 1조750억엔(약 9조6750억원), 영업이익은 46% 늘어난 620억엔(약 5580억원)을 예상한다. 

장기 비전인 ‘세계 1위 화장품 메이커’ 달성이 실제로 가능할까. 오는 2030년 경영 목표는 매출 2조엔(약 18조원), 영업이익률 18%다. 관련 업계와 학계에서는 세계 1위 목표 달성이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유통·마케팅 전문가인 일본 간사이대 상학부 최상철 교수는 “세계 최고 화장품 업체가 되려면 브랜드 가치를 더욱 키우고, 글로벌화 전략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뛰어난 경영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앞으로 2년 뒤 우오타니 사장의 뒤를 이어 글로벌 1위로 이끌 후계 경영인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글로벌 사업 전략과 세계적 수준의 전문 경영인 부재’는 시세이도만의 문제는 아니다. 1990년대 전성기에 비해 글로벌 경쟁력이 약화된 다수 일본 기업들이 안고 있는 공통 과제이기도 하다. 시세이도의 ‘메이드 인 재팬’ 회귀 전략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최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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