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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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민 WTCS 대표 광운대 경영학 박사, 한국무역협회 전 FTA통상연구실장·전 베이징 지부장· 전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최용민 WTCS 대표 광운대 경영학 박사, 한국무역협회 전 FTA통상연구실장·전 베이징 지부장· 전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정책은 타이밍이다. 수요와 공급을 골자로 한 경제학을 배우고 소비자 심리학까지 섭렵한 엘리트 관료들은 종종 ‘정책이 실기(失機)했다’고 말한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글로벌 차원에서 이런 실기의 전형이 나타난 느낌이어서 국제기구나 경제전문가들이 할 말이 없는 지경이다. 올해 6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22년 세계경제성장률을 3.0%로 전망했다. 이는 지난해 12월 전망치보다 1.5%포인트 낮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지난해 10월에 2022년 전 세계 교역 증가율을 4.7%라고 점쳤다가 올해 4월 3%로 수정했다. 최고의 엘리트들이 버티고 있는 전문기관들이 장기 전망을 수정한 것이 아니다. 몇 개월 사이에 같은 해 경제성장률이나 무역 규모를 3분의 1 이상 싹둑 잘라낸 것으로 거의 전망무용론이 나올 정도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이 그 기간에 발생했지만, 대폭적인 수정을 정당화하기에는 부족하다. 결국 코로나19라는 충격에 몰두한 나머지 제대로 경기 흐름을 짚어내지 못한 것이다. 전 세계가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돈을 풀어 경기를 살리는 데 전력을 다했다. 그러다 보니 엄청난 유동성을 언제부터 회수해야 할지 제대로 고민하지 않았다. 넘쳐나는 돈은 기록적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유발했고 이를 치유하기 위해 금리를 초고속으로 올리는 지경에 내몰렸다. 점프하는 금리는 투자를 막아 경제성장을 짓누르는 상황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유동성을 조절하는 조치를 앞당겨 단계적으로 시행했다면 인플레이션을 적당한 선에서 막고 급격한 금리 인상이라는 대가도 지불할 필요가 없어, 올해는 완만하지만 확실한 성장 기조를 이어갔을 것이라는 지적에 아쉬움이 크다.



코로나19 극복 매몰…물가안정 정책 실기

잠시 코로나19 초입으로 돌아가 보자. 세계 최강국 미국은 돈을 푸는 데만 너무 열중했다. 미국은 2020년 3월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위기에 빠진 경제를 살리기 위해 1조2000억달러(약 1640조원)를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전 국민에게 1인당 최소 1000달러(약 136만원)를 무상으로 지급하는 재난 지원금도 포함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런 발표는 경기성장에 필요한 지렛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명분하에 수차례 반복됐다. ‘흥청망청’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현금 뿌리기가 극에 달했다는 증거가 올해 5월에 공개됐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보유한 자산이 9조달러(약 1경2303조원)에 달해 과거 두 차례 글로벌 금융위기의 9000억달러(약 1230조원·2007년 1월)와 2조3000억달러(약 3144조원·2009년 1월) 수준을 엄청나게 웃돌았다. 중앙은행에 자산이 많다는 것은 시장에 그만큼에 해당하는 현금이 풀려 물가를 자극하는 마중물이 됐다는 방증이다. 

코로나19 초기에 영국은 재정 지출을 200억파운드(약 32조원) 확대하고, 국내총생산(GDP)의 15%에 달하는 330억파운드(약 52조8000억원) 규모의 대출 보증도 병행하기로 하여, 현금으로 경제성장률을 사는 듯한 인상을 줬다. 이웃 국가인 프랑스는 450억유로(약 61조원)를 재난 지원금으로 투입하면서 국민에 대한 지원은 물론 경영이 어려운 기업을 정부가 직접 사들이는 전대미문의 대책도 내놓았다. 재정적자로 선두를 달리는 일본도 2009년 금융위기 당시 지원했던 1인당 1만2000엔(총 2조엔, 약 19조6000억원)이라는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경제 강국들의 돈을 푸는 코로나19 위기 탈출기는 얼마 전까지 계속됐다. 경기진작을 넘어 경제에 발목을 잡을 수십 년 만의 인플레이션이 곧 닥쳐올 것을 모르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미국을 살펴보자. 2019년 6월에 2.5%에 달했던 미국 중앙은행 금리는 코로나19로 인해 급전직하의 속도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코로나19가 글로벌 위기로 부상한 2020년 3월에 바닥 수준인 0.25%로 내려앉았다. 이런 초저금리 추세는 올해 3월에 0.50%로 다시 올릴 때까지 지속됐다. 같은 달 미국의 물가 상승률은 8.5%를 기록하며 41년 만에 최고치라는 신기록을 세웠는데, 세계 최고의 브레인들이 선제적인 조치는 못 하고 사후약방문만 내건 것이다. 

예상치를 뛰어넘는 물가 행진에 이번에는 ‘빅스텝(0.5% 포인트 인상)’이나 ‘자이언트 스텝(0.75% 포인트 인상)’을 반복하면서 한국의 금리 수준(2022년 7월 기준)을 넘어섰다. 석학들에게 경제 정책을 맡겼는데 선제적인 조치를 통해 경기를 잘 조절하기는커녕 결과적으로 냉온탕식 정책으로 경제성장률을 깎아 먹은 것이다. 만약 미국이 지난해 말부터 물가 상승세를 예측하고 돈 풀기를 어느 정도 자제하면서 느슨한 수준의 금리 인상 조치를 취했다면 물가 상승과 고금리라는 부작용을 최소화했을 것이다. 

정책 실기는 세계 경제성장률의 하향세 반전으로 연결되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2020년 세계 경제성장률은 -3%를 기록했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성장세라는 설명이 따라붙었다. 그러나 2021년에 곧바로 6.1%로 뛰어올라 스프링 같은 회복세를 보였다. 이런 좋은 흐름도 계속될 것 같지 않다. 올해와 내년의 성장세는 3%로 내려앉을 것이 확실시되는 상황이다. 국제통화기금(IMF)과 OECD는 새로운 예측치를 내놓을 때마다 수치를 하향하기에 바쁘다. 더욱이 돈을 너무 풀어, 경기를 끌어올리는 정책수단이 없는 상황이다. 정부와 민간이 빌려 쓰고 있는 세계 부채는 2007년 146조달러(약 19경9000조원)에서 2020년 말에는 306조달러(약 41경8000조원)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GDP를 기준으로 환산하면 같은 기간 정부의 부채비율은 274%에서 400%로 뛰어올라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상황이다. 재정을 흥청망청 쓴 데는 선진국이 앞장섰다. 선진국의 경우 정부 부채는 2008년 GDP의 76%에서 2020년 136%로 급증했다. 반면 개도국은 기업 부채가 GDP의 58%에서 121%로 높아져 선진국과 다른 모습을 보였다. 

한국의 부채 수준을 돌아보면 더 암담하다. 윤석열 정부 경제책임자는 빚이 늘어날 대로 늘어나 곳간이 텅 비었다는 표현까지 했다. 한국에 1997년은 외환위기로 경제주권을 넘긴 시기로 기억된다. 당시 외환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기업의 높은 부채 비율(107%)이 거론됐다. 그러나 2021년 기업의 부채 비율은 115%로 더 높아졌다. 이는 주요 20개국(G20)과 선진국은 물론 신흥국(111%)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더 심각한 것은 가계와 정부의 부채 비율이다. 외환위기가 비등할 때 가계 부채는 50%(1997년)로 비교적 양호했으나 지난해에는 107%로 두 배 이상 높아졌다. 한국의 가계 부채비율은 개도국의 수준(51%)을 두 배나 웃돌아 금리 상승기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전망이다. 외국에서 한국 경제를 볼 때 가장 큰 강점 중 하나인 재정건전도에도 큰 손상이 발생해 같은 기간 정부의 부채 비율이 6%에서 46%로 8배 정도 높아졌다. 결국 정부는 물론 민간도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실탄 없이 전쟁터에 내몰리는 상황이다. 그 결과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1%대로 추락했다는 진단까지 나온다.

글로벌 차원에서 코로나19 극복에 너무 매몰된 나머지 물가안정 정책이 실기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기는 힘들다. 물가지수와 금리가 동시에 올라가는 그래프를 보면 더욱 그렇다. 전례를 찾기 힘든 물가 상승률로 실질 소득의 뒷걸음질을 기정사실화하고 민간과 정부가 경제성장을 위해 빼 들어야 할 비장의 수단을 빼앗긴 실정이다. 통상 금리와 재정은 정부가 경제성장을 위해 사용하는 두 장의 든든한 카드다. 시장에 돈을 공급해 금융비용을 낮춰 투자와 소비를 촉진하게 만드는 디딤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행적인 정책 시행은 코로나19 대응에서 가장 뼈아픈 실책으로 다가온다. 후대 경제학자들은 많은 연구를 통해 그 원인을 밝혀내고 물가 상승도 막으면서 성장에도 도움이 되는 타이밍을 찾는 예측 모델을 만들어 낼 것으로 기대한다. 역사에서 교훈을 찾지 않으면 같은 실패가 반복된다. 모든 나라가 상품과 돈으로 연결된 글로벌 경제에서 미국의 실기는 모두의 책임과 희생으로 돌아온다. 

또 하나의 숙제가 다가오고 있다. 금리 인상 기조를 언제쯤 끝내야 적절한지를 두고 갑론을박이다. 현 위기를 단기로 보느냐, 아니면 구조적인 경기침체로 보느냐에 따라 금리와 재정 정책에 대한 전환점이 언제가 될지 지금부터 분석해야 한다. 

최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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