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 소비와 무관한 속옷 매출액은경기침체 여부를 나타내는 현장 지표다. 사진 셔터스톡
과장 소비와 무관한 속옷 매출액은경기침체 여부를 나타내는 현장 지표다. 사진 셔터스톡
최용민 WTCS 대표 광운대 경영학 박사, 한국무역협회 전 FTA통상연구실장·전 베이징 지부장· 전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최용민 WTCS 대표 광운대 경영학 박사, 한국무역협회 전 FTA통상연구실장·전 베이징 지부장· 전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흔히 글로벌 경제는 숫자로 움직인다고 말한다. 각국 정부나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굵직한 국제기구가 수시로 내놓는 수치가 뉴스를 타고 전문가들에 의해 의미가 부여되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의 경제정책이 만들어지며, 기업은 투자 방향을 결정한다. 소비를 주도하는 개인은 쓰거나 저축하는 비율을 조정해 주어진 미래에 대응한다. 세계 시장이 촘촘하게 연결되면서 그 어떤 나라도 글로벌 경제를 완벽하게 좌지우지 못 하기 때문에 보다 섬세하게 경제 흐름을 짚어보고 그 상황에 가장 적합하고 유리하도록 행동하고자 노력한다. 이런 과정에서 세간에서는 공식적인 경제 지표보다 현장 경기를 더 잘 반영하고 이해하기 쉬운 지표들이 더 많이 회자하고 흥미로운 포장으로 인해 일반인의 뇌리에 오랫동안 여운을 남긴다. 또한 현장 경기가 변화무상함을 반영해 지표들의 인기는 부침이 심하고 종종 새로운 지표들이 출몰하기도 한다.

최근 경제 전문가라면 예외 없이 미국의 지표에 집중한다. 특별히 현재 미국의 경제가 침체를 보이고 있는지, 아니면 코로나19 이후에 연착륙을 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혼돈의 과도기를 겪는지 헷갈린다면서 논쟁하기에 바쁘다. 한쪽은 40년 만에 가장 높다는 물가와 낮은 경제성장률을 근거로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지만 그 반대편에 있는 전문가들은 완전고용에 가까운 실업률(2022년 6월 3.6%, 미국은 통상 4% 이하는 경제에 문제없는 수준으로 봄)을 내세우고 2분기에만 100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창출됐다는 지표를 언급하며 맞선다.

최근 후자의 전문가들이 그들의 주장에 힘을 싣기 위해 다소 생소한 지표를 하나 꺼내 들었다. 남성 속옷 매출 지표(Men’s Underwear Index)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8월에 의류 판매액이 전월보다 0.3% 늘었을 뿐만 아니라 작년 8월보다 3.7%가 증가했다면서 의류 판매액 증가는 남성용 속옷에 의해 주도됐다고 외신은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다. 오랫동안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을 지낸 앨런 그린스펀은 수년 전 과장 소비와 무관한 속옷 매출액은 경기침체 여부를 아주 사실적으로 나타내는 현장 지표라면서 2008년 금융위기 때 증명됐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2021년 미국의 속옷 매출액은 55억달러(약 7조8870억원)에 달해 미국 경제에 큰 문제가 없었던 2016년 54억달러(약 7조7436억원)를 넘어섰다. 코로나19 발생 직전인 2019년(48억달러·약 6조8832억원)을 크게 웃도는 수치로도 심각한 불황이 아님을 확인시키고 있는 셈이다.

심리적 반응을 통해 경기를 진단하는 대표선수로 언급되는 것이 립스틱 효과다. 코로나19와 함께 몰아치고 있는 글로벌 인플레이션으로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지만, 그럴수록 소비자는 기분 전환이 필요하다. 약간의 투자로 심리 전환을 꾀할 수 있는 ‘저렴한 사치품(Affordable luxury)’ 중 대표적인 아이템이 립스틱이다. 여성들은 주머니 사정이 좋을 때 드레스와 신발과 같이 더 비싼 상품에 대한 구매를 통해 만족감을 느끼지만, 경제난에 빠지면 저렴한 립스틱으로 그 만족감을 대체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마케팅 전문 조사기관인 NPD가 조사한 미국 뷰티 시장의 올해 상반기 판매 추이를 살펴보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립스틱을 포함한 메이크업류가 20% 증가하고, 스킨케어류도 12%나 늘었다. 결국 립스틱의 매출 증대는 경기가 여전히 바닥을 헤매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2010년을 전후로 일본과 필리핀 등을 중심으로 네일아트가 유행하면서 통상 인플레이션 블루(높은 물가상승으로 우울해지는 증상)를 치유하는 가방과 신발의 대체재로 등장했다. 코로나19로 마스크를 사용하는 여성들은 심리적 행복과 과시를 좇아 겉으로 보이지 않는 립스틱보다 노출되는 손과 발의 네일아트로 소비를 늘리고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경기침체를 설명하면서 언급되지만 갈수록 그 설득력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지표도 있다. 미국의 와튼스쿨 교수였던 조지 테일러가 1925년에 처음 제안한 헴라인 지수(Hemline Index)는 우리나라에선 미니스커트 지수로 유명한데 여성 스커트 길이가 짧으면 경기가 호황기임을 나타내고 그 반대면 경기의 불황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했었다. 여성들이 주머니 사정이 좋으면 실크 스타킹을 보여주려고 스커트를 짧게 입지만 경기가 나쁘면 스타킹을 살 돈이 부족해 긴 치마로 스타킹을 가린다는 논리다. 그러나 최근에는 용어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이의 제기와 의류의 다양화로 인용 횟수가 크게 줄어든 상황이다. 이발 지수(Haircut Index)는 아주 서민적이다. 소비자들이 경제 호황기에는 6주마다 미용실을 방문하지만, 소비자 신뢰가 떨어지면 8주마다 방문할 것이라면서 경기를 진단한다. 코로나19로 여러 나라에서 상당수 이발소가 문을 닫고 집에서 스스로 이발하는 문화도 나타나면서 지표로서 명을 다했다는 평가다.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이 가장 애용했다는 드라이클리닝 지수는 소비자 신뢰가 낮을 때, 즉 경기가 침체기일 때 드라이클리닝 매출이 떨어졌다가 경기가 좋아지면 다시 회복한다고 하지만 대부분 스스로 세탁하는 흐름에 밀려 빛이 바래고 있다.

자산을 늘리는 투자 영역에서도 전문가의 심오한 견해와 진단보다 심플하면서도 정형된 지수가 일반 투자자들을 안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영국의 경제학자가 고안한 마셜케이(Marshallian K)는 한 나라의 통화 공급의 적정 수준을 측정하는 지표(M2 통화량/국내총생산)로 수치가 높으면 채권 시장의 거품이 존재하는 것으로 해석해 향후 주가의 하락을 점치게 된다. 중장기적으로 특정 국가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과 국채수익률이 엇비슷하다는 점을 감안해 1을 바람직한 수준으로 여긴다. 미국의 이 지수는 1990년 이후 2010년까지 1~2 수준에 맴돌았으나 코로나19 이후에는 7~8 수준에 도달해 거품이 상당 수준임을 보여주고 있다. 

또 최근 미국의 버핏 지수가 사상 최고치라는 점도 자산 가격 거품을 뒷받침하는 지수로 인용된다. 이 지수는 GDP 대비 시가총액(주식 시장 시가총액/GDP)을 나타내는 숫자로 100을 기준으로 높을수록 증시 과열로 해석한다. 2000년부터 2021년까지 이 지수는 186%이었으나 지난해 4분기에는 334%까지 치솟기도 했다. 이들 지수를 바탕으로 판단한다면 코로나19로 시중에 현금이 너무 많이 풀렸으니 당장 주식 시장에서 발을 빼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장단기 금리가 역전되는 경우에도 쉽게 경기침체의 징조로 해석된다. 1년 후에 돈을 못 받을 가능성보다 10년 후에 돈을 못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장기 금리가 더 높아야 한다. 당장 경기가 안 좋으면 곧바로 20년 만기 고정금리 채권을 사는 것보다 1년 단위로 금리 상승을 향유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지속적으로 1년짜리 채권의 금리가 올라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올해 4월에 미국의 2년 만기 국채금리는 2.44%인 반면 10년 물은 2.38%로 역전됐다. 지난해 4월만 해도 10년물이 1.5%포인트 더 높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실물 움직임을 보다 더 잘 반영한다는 의미에서 국가별로 특정한 통계들이 언급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영토가 넓은 중국에서 공식적인 GDP를 점검하기 위해 철도 운송량과 전기 사용량을 같이 봐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있다. 화물운송이나 전기 소비에 대한 수치는 그 자체가 경기의 좋고 나쁨을 그대로 반영해 복잡한 과정을 통해 산출되는 GDP보다 신뢰도가 높다는 의견도 있다. 최근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에서는 1일 수출액과 주가가 같이 간다는 전문가 분석이 화제가 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는 유가의 향방에 관심이 매우 높다. 단순히 원유가격 변동으로 석유를 생산하지 못하는 국가들의 지출에 영향을 준다는 일차적인 충격보다 그 자체가 경기에 대한 가늠자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석유 공급이 수요에 미치지 못한 상황임에도 갑자기 유가가 하락하면 글로벌 경기의 침체국면을 확인해 주는 전조로 여긴다. 

경제위기는 반복된다. 그러기에 그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최소화하기 위해 징후를 미리 아는 것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조차 공식적인 지표를 두고 엇갈리게 해석하는 상황이 적지 않음을 감안할 때 일반인도 쉽게 경기를 해석할 수 있는 친근한 지수의 등장은 매우 흥미롭다. 그러나 하나에만 너무 의존하기보단 여러 지표를 두루 살피는 현명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최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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