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NO’ DVD ‘YES’…회원 급증

혹독한 경기 침체로 기업들의 생존이 불투명한 속에서 홀로 승승장구하는 기업이 있다.

세계 최대의 온라인 DVD 대여업체, 넷플릭스(Netflix). 월가발(發) 금융위기가 글로벌 경제를 초토화시킨 지난해 이 기업이 거둔 성적표는 놀라울 정도다. 회원 수 26% 증가, 기업 매출 19% 증가, 지난 4개월 동안 주가 2배 상승. 발밑이 무서워 한 걸음도 떼기 힘든 올해 들어서도 이 기업은 위를 보며 행진하고 있다. 올 들어 2개월 동안 넷플릭스의 회원 수는 60만 명이 더 늘어 회원 수 1000만 명을 돌파했다. 4인 가족 기준으로 보면 미국 가구 일곱 집 건너 한 집은 넷플릭스 회원이란 얘기다.

넷플릭스는 기본적으로 영화 DVD를 빌려주는 비즈니스다. 영화 타이틀 개수 10만 개, 스트리밍 서비스가 가능한 영화 타이틀도 1만2000개를 갖추고 있다. 한 달에 일정액을 내면 정해진 DVD 개수 안에서 무한정 빌려볼 수 있고, 연체료가 전혀 없는 것이 특징이다. 가장 인기 있는 플랜은 한 달에 16.99달러를 내면 한 번에 3개까지 DVD를 빌려볼 수 있고,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영화를 보는 스트리밍도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다. 3개 범위 내에서는 아무리 오랫동안 DVD를 반납하지 않아도 전혀 문제 삼지 않는다. 회원 중에는 같은 DVD를 2년 넘게 들고 있는 사람도 있다. DVD를 한 번에 한 개만 빌리는 서비스는 8.99달러만 내면 된다. 경기 침체에 지갑이 얇아진 미국 소비자들이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는 금액이다. 1930년대 대공황 당시 극장에서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보며 고통을 달랬던 미국인들은 이번 경기 침체 때 다시 극장을 찾고 있고, 그것도 여의치 않은 사람들은 넷플릭스를 통해 여가를 보내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블록버스터 등 다른 영화 DVD 대여 서비스업체와 달리 철저히 우편을 이용하는 게 특징이다. 하와이와 알래스카까지 미국 전역에 모두 58개 집배송센터를 두고, 오늘 신청하면 내일 배달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신청한 DVD의 97%는 다음날 배달된다. 1등급 메일로 우송되는 넷플릭스는 우편비용으로만 연간 3억달러를 쓴다. 미국 우편 서비스의 최대 고객이다.

넓은 땅을 가진 미국 전역에 전부 개별적으로 주문을 받아 바로 다음날 배달하는 시스템. 쉽지 않아 보이는 넷플릭스 서비스의 비밀은 새벽에 집배송센터를 방문하면 풀린다. 지난 3월10일 오전 7시 뉴저지 주 뉴어크의 넷플릭스 집배송센터. 뉴욕과 뉴저지 일대 회원들에게 DVD를 배송하는 이 센터의 40여 명 직원들은 새벽 3시 반에 출근한다. 미국 우편 서비스 당국이 밴에서 내려놓은 넷플릭스 우편물은 박스 단위로 직원들 앞에 놓이고, 이들은 재빨리 봉투를 열어 DVD를 검사하고 상태에 따라 분류하는 작업을 한다. 이 가운데 오늘 다시 배달돼야 하는 DVD는 따로 분류돼 배달될 곳의 우편번호가 붙는다. 한 사람이 한 시간에 650개 DVD를 처리했다. 하지만 마치 가내 수공업을 보는 듯한 극도로 노동집약적인 공정은 여기까지다.

바코드 형태의 우편번호가 붙은 DVD를 컴퓨터와 연결된 컨베이어벨트처럼 생긴 분류장치에 올려놓자, 컴퓨터가 자동으로 DVD가 담긴 우편물을 읽어 배달지역별로 나눠 순식간에 분류했다. 컴퓨터에서 일을 보는 직원 한 명, 자동으로 분류 박스에 담긴 DVD 우편물을 나르는 직원 두 명이 이 일을 했다. 이 기계는 원래 미국 우편 서비스 당국이 자동으로 우편물을 분류할 때 사용하던 장치였는데, 여기에 DVD를 올려 같은 시스템 내에서 돌아가도록 한 게 넷플릭스의 혁신이다. 3개의 기계라인은 라인당 한 시간에 3만 개의 DVD를 분류했다. 사람이 했으면 하루 꼬박 걸릴 일을 불과 1~2시간 만에 기계는 처리했다. 

DVD를 봉투에 집어넣고, 봉합하는 과정도 ‘스터퍼(stuffer)’라고 불리는 기계가 대신했다. 봉투를 접고, DVD를 붙이고, 봉합하는 6단계를 기계가 순식간에 처리, 시간당 4000여 개 DVD를 완벽한 우편물로 만들어냈다. 과거 사람이 대신할 땐 시간당 750개를 처리할 수 있을 뿐이었다. 넷플릭스는 이 기계를 만드는 데 거의 10년이 걸렸다고 했다.

이런 식으로 미국 전역 58개 센터에서 하루 평균 200만 개, 타이틀 개수로 4만6000여 개를 각 가정에 배달한다. 

빨간 봉투에 담긴 넷플릭스 우편은 이제 미국 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 우편배달부는 넷플릭스 우편을 ‘앵커 메일(anchor mail)’이라고 부른다. 문 앞에 우편물이 배달됐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가 집는 사적인 메일이라는 의미다. 과거엔 생일축하카드 등이 ‘앵커 메일’ 구실을 했으나, 이메일이 발달하면서 이 자리를 이제 넷플릭스가 대신했다.

넷플릭스는 미국 토크쇼 프로그램인 <엘런(Ellen)>, <닥터 필> 등의 소재로 등장했고, <뉴욕타임스(NYT)>의 ‘선데이 크로스퍼즐’, 퀴즈쇼 <제퍼디>의 문제로 출제된다. 남녀노소 다양한 회원 분포는 바로 ‘미국 자체’라고 회사 측은 설명한다.

넷플릭스는 지난 1999년 회원 서비스를 시작하며 정식으로 설립됐다. 설립자인 리드 헤이스팅스(Hastings) 최고경영자(CEO)가 넷플릭스를 세운 동기는 의외로 간단했다. 헤이스팅스는 1997년에 영화 <아폴로 13> 비디오테이프를 빌렸다가 몇 주간 연체하자 당시 무려 40달러에 이르는 연체료를 물었다. 그는 “좀 심하다”고 생각했고, 마침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다가 한 달에 일정한 회비만 내면 몇 번을 운동하든 상관없는 헬스클럽 운영방식을 영화 DVD 대여에 도입하겠다고 결심했다. 당시 벤처캐피탈리스트들은 DVD를 메일로 빌려주는 헤이스팅스의 아이디어를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 없다”며 좀처럼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몇 차례 부도의 위기를 맞았으나 넷플릭스는 꾸준히 회원을 늘려가며 2001년 4분기에 흑자를 냈고, 2002년 5월 기업공개에 성공했다. 넷플리스의 회원 수는 설립 이래 연간 64%씩 늘었다. 지난 2005년 6억8220만달러이던 수입은 작년엔 13억6570만달러로 증가했고, 순이익도 2005년 4200만달러에서 작년엔 8300만달러로 4년 사이에 2배로 늘었다.

넷플릭스는 이제 새로운 단계를 맞고 있다. 영화는 이제 바로 인터넷으로 다운받거나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는 추세로 넘어가고 있다. 넷플릭스 회원의 20%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우리나라의 LG, 삼성전자와 손잡고 스트리밍을 이용한 서비스 확대에 나서고 있다. LG와 삼성전자는 미국 시장에서 판매되는 블루레이 플레이어를 발전시켜 바로 넷플릭스의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넷플릭스는 티보 박스, 마이크로소프트의 X박스 등을 이용해서도 스트리밍 서비스를 즐길 수 있도록 했고, LG전자는 아예 TV로 직접 넷플릭스 스트리밍 서비스를 즐길 수 있는 제품을 개발, 올 하반기에 본격 출시할 예정이다.

 인터넷을 이용한 영화 서비스 제공업체는 애플, 아마존, 훌루, 유튜브 등 백가쟁명의 양상을 띠고 있다. 넷플릭스는 이들과 다시 한차례 격전을 치러야 한다. 헤이스팅스 CEO가 설립할 당시, 넷플릭스의 궁극적 모델은 바로 스트리밍 서비스였다. ‘넷플릭스’라는 회사명도 ‘넷(인터넷의 약자)’과 ‘플릭스(영화를 뜻하는 영어 속어)’의 약자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DVD 문화가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스티브 스웨이시(Steve Swasey) 넷플릭스 부사장은 “앞으로 최소 5~10년 동안 DVD 문화는 여전히 강세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인터넷이 몰고 오는 변화의 속도를 생각하면 넷플릭스 경영진의 전망과 달리 DVD 문화는 의외로 빨리 몰락의 길을 걸을지 모른다. 넷플릭스는 지난 10년간 가시밭길을 헤쳐 왔지만 앞으로의 여정도 순탄해 보이지는 않는다. 인터넷이라는 호랑이 등에 앞서 올라타고 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종세 조선일보 뉴욕특파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