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지침서는 원자바오 총리 '말'

중국은 경제와 정치가 한 덩어리로 엉켜서 돌아가는 나라다. 어느 나라든 경제와 정치가 따로 움직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경제를 움직이는 사람들이 하는 말과 정치를 움직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한 글자도 다르지 않은 나라는 중국 이외에는 없을 것이다. 중국의 경제와 정치를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고리에 있는 사람은 총리다. 총리는 중국 정치를 이끄는 중국공산당의 권력서열 제2인자로, 중국 경제와 정치를 연결하는 첫고리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해마다 3월 초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 나와서 총리가 한 말은 중국 경제를 관찰하는 키워드가 된다. 잘 보면, 전인대에 나와서 총리가 한 말은 앞으로 1년 동안 중국 경제인들의 입에서 되풀이 되고 또 되풀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3월13일 내외신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회견은 중국 총리가 해마다 전인대 폐막 직전에 딱 한 번 갖는 연례 기자회견이라 할 수 있다. 중국 경제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이 연례 기자회견에 나와서 총리가 한 말을 1년 동안 경제를 운용하는 기본 지침으로 삼는다.

“남의 불을 빌리는 것보다는 부싯돌을 마련하는 것이 낫다. 남의 우물에 가서 물을 긷는 것보다는 우물을 파는 것이 낫다(乞火莫如取燧 寄汲莫若鑿井).”   

문자 쓰기를 즐기는 원자바오 총리는 대화체의 백화(白話)가 아닌 고문 인용 형식으로 그런 말을 했다. 원 총리는 <인민일보>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그런 말을 했고, 그 질문은 “총리는 전인대 개막일에 정부 공작 보고를 통해 올해 경제 성장율 목표를 8%로 제시했으나 국외에서는 회의적으로 보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었다. 원 총리가 말한 ‘남의 불’과 ‘부싯돌’, ‘남의 우물 물’과 ‘자기가 판 우물 물’은 중국 경제가 받는 국제 경제적 영향과 국내 경제적 요소를 비유한 것이었다. “어떤 국가든 홀로 설 수는 없고,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국제 경제적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요즘의 중국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지난 몇 달 동안의 노력으로 중국인들의 마음이 따뜻해지기 시작한 것이며, 사람들의 마음이 따뜻해지면 경제도 따뜻해질 수 있다”는 것이 원 총리의 견해였다. 부싯돌로 붙인 불, 스스로 판 우물의 물에 해당하는 중국 경제를 보는 중국인들의 신뢰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원자바오 총리는 묘한 말로 중국 경제의 8% 성장 달성이 무리라는 외부의 시각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설명을 했다. “발전 목표란 선박에 단 나침반과 같은 것으로, 나침반이 없는 배는 어디를 향해 항해하는지도 알 수 없고, 언제 도착할지도 알 수 없으며, 그런 배를 기다리는 것은 역풍뿐이지 순풍을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듣기에 따라서는 “8% 성장이란 목표일뿐이고, 그런 방향을 향해 중국 경제가 나아갈 것이란 점은 분명하지만 꼭 달성할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고 들어도 무리가 없는 말이었다.

원자바오 총리가 기자회견에서 한 또 다른 중요한 말은 “우리는 충분한 탄약을 준비했다”는 말이다. 지난해부터 중국 경제에 화두처럼 떠오른 ‘내수 확대를 위한 4조위안(약 800조원)의 투자’가 과연 가능한가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원 총리가 한 말이다. 구체적으로는 “4조위안의 투자 계획 가운데 1조1800억위안은 중앙정부가 내놔야 하는데 그럴만한 돈이 있는가”하는 질문에 “1조1800억위안 가운데 5915억위안은 이미 확보했다”고 한 뒤에 그런 말을 했다. 원 총리의 말을 잘 들어 보면 “확보된 것은 5915억위안뿐이고 나머지는 아직 확보되지 않았다”는 말과 같은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충분한 탄약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말인 것이다.

베이징에 주재하는 외국 특파원들 사이에서 원자바오 총리는 ‘경제를 잘 모르는 사람’으로 통한다. 돼지고기 값이 오르면 경제 정책을 펼 생각을 하기 보다는 양돈 농가들을 돌며 생산을 독려하고, 유가가 오르면 정유회사로 달려가 근로자를 독려하기를 즐기기 때문이다. 문제는 원 총리가 그렇게 하면 돼지고기 값이나 유가가 다소 떨어지기는 한다는 점이다. 또 그런 원 총리의 행동은 그의 이력서에 한 성(省)의 경제를 책임져야 하는 성장(省長)이나 성 당위원회 서기의 경력이 없다는 데에서 비롯된다는 말들도 많이 한다.

원 총리의 기자회견도 결국은 국제적인 금융위기 상황에서 중국 경제가 8% 성장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수 확대를 위한 4조위안의 투자라는 것도 결국은 준비 없이 한 말이라는 데 대한 원 총리의 대답이 무엇인가를 듣는 자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자리에서 원자바오 총리는 “8% 성장을 외국에서는 회의적으로 보고있는데”와 “4조위안의 내수 확대 투자의 재원 마련이 과연 가능한가”하는 두 가지의 핵심질문에 대해 같은 패턴으로 답했다. 우선 “8% 성장이란 항해 목표에 불과하다”, “4조위안의 내수 확대 투자에 중앙정부가 마련해야할 1조1800억위안 가운데 현재 준비된 것은 5915억위안밖에 없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그리고는 금융위기라는 국제경제의 영향을 남의 불을 빌리는 것이나, 남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오는 것에 비유해서 “남의 불을 빌리는 것보다는 부싯돌을 준비하는 것이 낫고, 남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오는 것보다는 자신의 우물을 파는 것이 낫다”고 말해 중국의 국내 경제가 뜨거워질 것으로 기대한다는 말을 한 것이다. 4조위안의 내수 확대를 위한 투자에도 재원 확보가 충분하지 않은데도 “우리에게 탄약은 충분하다”고 말해 뭔가 기대할 것이 있다는 말을 한 것이다.

한 마디로 원자바오 총리의 말은 냉철한 경제학 논리나 과학적 논리에서는 벗어난 것이다. 경제 논리나 과학적 논리로 보면 8% 성장은 국제경제의 영향 때문에 어려울 것이고, 4조위안 투자란 것도 재원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는 말인데, 과거부터 중국 정치와 경제가 의존해오던 ‘군중논리’에 따라 “남의 불보다는 부싯돌, 남의 우물의 물보다는 내 우물의 물이 중요하다”고 말한 것이고, 4조위안의 투자도 과학적으로 경제논리로 보면 재원이 불충분 하지만 총리가 인민들에게 “탄약이 충분하다”고 말하면 어디선가 탄약이 생길 것을 기대한다는 말을 한 것이다.

우리는 내년 2월 말이면 과연 원자바오 총리의 말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전례를 보면 중국 경제는 과학적 요소나 냉철한 경제논리보다는 대중 선동적 구호가 실제로 수치가 되어 나타나는 일이 더 많았다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총리가 한 말을 1년 내내 경제인들이 되풀이하고, 또 되풀이 하다보면 뜻밖의 수치가 현실로 되어 나타나는 일이 흔한 것이 중국 경제이기 때문이다.

박승준 조선일보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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