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 일본 경제계의 최대 이슈는 ‘적대적 인수합병(M&A)’이다. 각 기업이 적대적 M&A를 방지하기 위한 기법을 도입하는 한편, 정부에서도 대책을 수립중이다. 도쿄증권거래소에서도 M&A를 방지하기 위해 법률적인 허점을 없애는 작업을 실시하고 있다. 거의 패닉 상태에 가깝다.

 사실 한국에서도 환란 직후인 1998년 무렵 적대적 M&A 바람이 경제계를 휩쓸고 지나갔고, 그 이후에도 외국 펀드들의 경영권 참여 사건이 있었다. 물론 미국 쪽으로 가면 그 이전부터 적대적 M&A가 여러 차례 사회적인 관심사가 됐다. 오히려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법석은 ‘늦바람’으로 여겨지기까지 할 정도다. 도대체 이 M&A 소동의 의미는 무엇일까.

 최근 일본에서 M&A 소동이 벌어진 원인은 라이브도어라는 한 인터넷 기업이 후지산케이라는 거대 그룹에 대한 적대적 M&A에 나서고부터다. 후지산케이그룹은 일본 신문시장 5위의 산케이신문과 후지TV란 방송국을 중추로 하는 거대 미디어그룹이다. 거대 음반사인 포니캐년, 프로야구단 요코하마 베이스터즈 등이 모두 이 그룹 산하다.

 반면에 라이브도어는 불과 32세의 사장이 이끄는 인터넷 기업이었다. 사장 호리에 다카후미(堀江貴文)는 원래 도쿄대 문학부 재학 시절 소프트웨어 개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1996년에 아예 길을 돌려 홈페이지 제작 회사인 ‘온 더 에지’를 설립한 인물이다. 그는 이듬해 학교를 중퇴하고 줄곧 기존 개념에 얽매이지 않는 길을 걸었고, 다른 회사가 진행중인 교섭에 돌연 참가하는 등 형식을 중시하는 산업계에서 이단아 취급을 받았다. 작년에는 프로야구단 인수를 하겠다고 나서 일약 유명해졌고, 이후에는 후지TV의 토크쇼에 단골 출연하면서 개그맨처럼 된 캐릭터였다.

 원래 일본 후지산케이그룹은 창업자인 시카나이(鹿內) 일가가 경영하고 있었다. 시카나이 일가는 닛폰방송이란 라디오 방송국의 최대 주주였고, 이 닛폰방송이 후지TV의 최대 주주, 후지TV가 다시 산케이신문의 최대 주주가 되는 형식을 취해 얼마 안되는 자본으로 거대한 그룹을 움직여 왔다. 그러나 92년 일부 중역들을 중심으로 한 사내 ‘쿠데타’가 일어났고, 창업주 일가를 단 10분만에 회장(의장)직에서 전격 해임해 버렸다.

 시카나이 가문이 반격을 노릴 것으로 예측됐으나, 결국 작년에 갖고 있던 닛폰방송 주식을 모두 팔아버리고 경영에서 빠졌다. 쉽게 말해 임자 없이 붕 뜬 상태가 됐다. 이에 따라 후지산케이그룹은 “증시에서 닛폰방송 주식을 사들여 자회사로 만들고 완전 독립을 성취하겠다”며 주식시장에서 닛폰방송 주식 공개 매수를 시작했다.



 인터넷 기업이 거대 그룹 M&A 나서

 이런 상황에서 끼어든 것이 바로 호리에 사장이다. 그는 지난 2월8일 리먼브러더즈에서 800억엔(8000억원)의 자금을 조달, 하루만에 닛폰방송 주식 35%를 시장에서 사들였다고 발표했다. 호리에 사장이 갑자기 기자회견에서 “후지산케이그룹 경영권 지배 의사가 있다”고 밝히자 후지산케이그룹은 크게 당황했다. 여기까지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적대적 M&A였다.

 그러나 다음 절차는 좀 특이했다. 일본의 미디어와 TV 토크쇼 등은 일제히 호리에를 적대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간성’을 문제 삼고 나왔다. 호리에의 라이브도어가 ‘성인 전용’ 서비스를 갖고 있다는 점 때문에 뭇매를 맞았다. ‘경영권 지배’는 단순히 “기업을 협박해서 주식을 비싼 값에 되팔고 떠나는 (이른바 ‘그린메일’ 작전) 투기꾼이 아니라 정말 경영을 하겠다”는 의미의 용어지만, TV 토크쇼에선 “젊은 놈이 건방지게 어디 ‘지배’를 하겠다고 하느냐”는 패널들이 다수 등장했다. 일본 자체의 정서는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땀 흘려 가꿔 온 기업을 벼락부자 젊은이가 인수하는 것 자체를 용서치 않았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후지산케이측은 변칙적인 ‘방어술’을 선보였다. 어느 날 갑자기 신주를 발행, 모회사에 안기려 했다. 물론 적대적 M&A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이렇게 일방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특단의 이유가 없는 한 ‘불법’이다. 그러나 일본 TV들은 증권인들이 모여 있는 가부토초 르포에서 “불법이 아니다”는 코멘트들을 줄줄이 소개했다. 한 TV는 어느 쪽을 지지하느냐는 설문을 증권 전문가들에게 돌린 다음 긴 그래프의 양쪽에 산케이와 라이브도어를 놓고 그 중간에 의견을 점으로 찍었다. 육안으로 그래프를 보기에는 백중세인 데도 멘트는 “압도적으로 후지산케이측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했다.

 결국 후지산케이측의 이런 신주 발행은 법원에 의해 제지당했다. 이후 언론에 “100%의 전문가들이 후지산케이의 신주 발행이 적합치 않았다”고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가 실렸다.

 후지산케이측 경영진이 파견돼 있는 닛폰방송은 “라이브도어처럼 이름 없는 기업의 산하에 들어가는 것은 기업 가치가 줄어드는 것이므로 당연히 넘길 수 없다”고 버텼다.

 그 다음에는 닛폰방송의 핵심 계열사인 포니캐년을 미리 다른 기업에 팔아넘기겠다는 방안도 나왔다. 핵심 기업을 팔아 M&A의 의의를 줄이겠다는 것인데 (이른바 ‘왕관의 보석’ 작전)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기존 주주들에 대한 배임 의혹까지 생기는 것이어서 결국 포기했다.



 변칙 방어술로 위기 모면

 최후로 후지산케이가 쓴 방법은 ‘백기사’였다.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그룹의 한 계열사에 후지TV 주식을 ‘대여’했다. 이 경우 닛폰방송을 라이브도어가 장악해도 후지TV까지는 경영권이 미치지 않는다는 얘기다. 물론 대여한 것이기 때문에 배임 의혹은 적다고 한다. 사실 잘 보면 최선을 다한 방어지만 M&A에도 ‘룰’이 있다는 점에서 보면 반칙이 난무한 셈이다.

 결국 호리에 사장은 닛폰방송을 삼키는 데 성공했지만, 후지TV라는 산케이그룹의 핵심 기업을 장악하는 것은 소프트뱅크에서 빌려 줬던 주식을 다시 받아 오는 5년 후에야 가능하다. 그동안 후지산케이 역시 방어책을 준비할 시간이 생긴다. 앞으로 모든 점에서 적대적 M&A에 불가능해지도록 법이 바뀔 것으로 보인다. 도요타 등 기업들은 적대적 M&A에 대비, 미리 신주인수권을 설정해 놓는 ‘극약법’을 도입할 예정이다.

 결국은 경제계가 심정적인 합의하에 후지산케이그룹 경영권을 지켜준 꼴이다. 서방 언론들은 이번 사건이 일본 경제의 폐쇄적 구조를 보여준 것이라고 하고, 일부에선 일본 경제가 증시를 기본으로 하는 주주 중심의 자본주의를 완전히 이해치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대주주나 오너에 ‘인격’이나 ‘나이’를 따지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는 견해다. 물론 일본 언론들은 그렇게 보도하는 서방 언론들을 “황당하게 보도했다”고 주장한다. 같은 자본주의를 해도 그 모습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최흡 조선일보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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