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원 공개 거부하는 기자에 법원의 잇단 실형 선고



 얼굴을 모르지만 기자가 늘 유심히 읽는 뉴욕타임즈 기자 중 한 사람이 주디스 밀러라는 여기자다. 그는 뉴욕타임즈에 요즘 ‘외교데스크’라는 난을 쓰고 있는 중견 기자로, 아마 외교 문제를 전문으로 하는 것 같다는 것 이외엔 사실 아는 게 없다. 그런데도 그의 기사를 관심 깊게 읽는 것은 다른 신문에서 보지 못하는 깊은 정보들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최근 그가 줄기차게 쓰고 있는 유엔 내부의 부패 문제에 대한 심층 보도들도 마찬가지다. 그의 글을 읽어야 비로소 유엔이 과거 석유 금수 조치를 한 이라크에 대해 식량 지원 차원에서 준 돈이 어떻게 후세인의 부패 자금으로 전용되었는지의 의혹과 과정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그런 밀러 기자가 작년말부터 그 자신이 언론의 취재와 보도 대상이 됐다. 이라크의 핵무기 개발에 관해 쓴 기사들 때문이다. 그는 소위 ‘리크게이트’로 불리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의 이름 누설과 관련한 수사에 연루돼 있다. 그는 자신의 취재원을 연방 대배심 앞에서 증언하라는 판사의 명령을 언론 자유 침해라며 거부, 법정모독죄를 적용받았다.

 다른 한 가지는 그 자신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의혹 때문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한 기자의 보도 때문이라면 믿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그의 기사와 책이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침공을 결심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게 많은 미국 언론의 지적이다.

 그는 이미 1차 걸프전 때 <사담 후세인과 걸프만의 위기>라는 책을 써 후세인의 야망을 적나라하게 공개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전에는 당시까지 미국이 이라크 정보의 절대량을 의존했던 아흐메드 찰라비(당시 이라크 국회의회 의장)와 깊은 교류를 하면서 수많은 특종 정보들을 빼냈다는 게 미국 언론의 보도다.

 미국이 이라크 침공을 한 결정적 이유는 후세인이 대량 살상 무기, 특히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밀러 기자는 후세인의 핵 개발 의혹을 최초로 보도한 기자였다. 그는 2002년 9월 “후세인이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부품인 ‘알루미늄관’을 획득하려 하고 있다”는 보도를 했고, 곧이어 미국은 이라크의 핵무기 개발 의혹을 침공의 최대 사유로 제시했다. 그 상당한 정보가 찰라비로부터 나왔다는 게 미국 언론들의 보도다.



 <뉴욕타임즈>밀러 기자에 18개월 투옥형

 그런 밀러 기자는 작년 8월 워싱턴의 연방대배심에 소환됐다. 특별검사까지 임명돼 조사가 벌어지고 있는 소위 리크게이트 수사 때문이다. 리크게이트는 사담 후세인이 문제의 ‘핵 개발용 알루미늄관’을 아프리카에서 사오려 할 때 관여한 발레리 플레임이라는 CIA 비밀 정보 요원의 이름을 누가 로버트 노박이란 칼럼니스트에게 ‘리크(흘리다는 뜻)했느냐’를 조사하는 사건이다. 미국 법률상 비밀 정보요원의 이름을 누설하면 중형에 처해진다.

 밀러 기자는 발레리 플레임이란 요원의 이름을 자신의 기사에 쓰지는 않았지만, 후세인의 알루미늄관 구입을 최초로 보도한 장본인이어서 수사 대상이 되었고, 연방대배심 앞에서 취재원을 공개하라는 판사의 명령을 받은 것이다.

 밀러 기자는 이를 거부했다. 소환에도 응하지 않았다. 뉴욕타임즈사는 그런 밀러 기자를 강력히 보호했다. 그러나 소환장이 발부된 두 달 뒤인 작년 10월, 토마스 호건이란 판사는 증언을 거부하는 밀러 기자에게 법정모독죄를 적용, 18개월 투옥의 형을 선고했다. 다만 항소심에서 재판이 끝날 때까지는 형을 집행치 않겠다는 조건부였다.

 밀러 기자는 요즘 미국 언론들이 겪는 수난의 대표적인 경우다. 법원의 취재원 공개 명령에 불복한 죄로 실형을 선고받는 기자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AP통신에 따르면 전국에서 최소한 14개 언론사 기자 16명이 취재원 보호 문제로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다.

 스파이 혐의로 기소된 대만 출신 핵물리학자 리원호 재판에서 5명의 기자들은 취재원 공개를 거부, 역시 법정모욕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로드아일랜드주에선 민간인을 가장한 연방수사국(FBI) 요원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시청 관계자의 모습을 찍은 비디오테이프 출처를 밝히기를 거부한 짐 태리카니 기자가 6개월간 가택연금형을 받고 복역중이다.

 미국 수정헌법 제1조는 언론의 자유 보장 규정이다. ‘의회는 언론 자유를 제약하는 법률은 제정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만큼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가장 근본적 부분이라는 선언을 담고 있다. 그러나 미국 검찰은 언론도 법적 정의 구현에는 예외일 수 없으며, 검찰 수사에 취재원을 밝혀야 할 의무가 있다며 기자들을 기소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기자들은 지금 두 가지의 선택 기로에 서 있다. 범죄 수사를 위해 판사의 명령에 따라 취재원을 공개해야 하느냐, 아니면 헌법이 선언한 언론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익명의 취재원 이름을 무덤까지 갖고 가야 하느냐다. 현재의 미국 판결들은 기자들이라도 범죄 수사를 위해선 익명의 취재원을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법원이 의존하는 판례는 마약을 만드는 장면을 목격한 기자는 범죄 해결을 위해 취재원을 밝혀야 한다는 1972년 대법원의 ‘브랜즈버그’ 판결로, 판사들은 이 법 해석을 따르고 있다. 2003년 시카고 고등법원도 “기자도 다른 증인들처럼 법원의 소환에 응해야 한다”고 판시, 소환 거부 불가라는 판례를 남겼다.

 만일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이 특종의 주인공인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 기자가 법원으로부터 ‘딥 스로트’를 공개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면 어떻게 했을까. 우드워드 기자는 그런 명령을 받지 않았지만, 아마 “무덤까지 갖고 가겠다”는 그의 다짐을 지켰을 가능성이 있다.

 정부의 내부 문제를 고발하는 심층 보도는 뉴욕타임즈나 워싱턴포스트 같은 ‘퀄리티 페이퍼’의 생명이나 마찬가지다. 또 그런 보도를 위해선 정부 내부의 ‘휘슬블로어’, 즉 정보 제공자의 도움이 결정적이다. 그런데 내부 정보 제공자의 이름을 공개해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정부 내부의 부조리와 부패, 내막을 취재해 전하는 것이 중요한 존재 이유인 언론의 기능이 크게 위축될 뿐 아니라 정부 내부의 문제를 고발하는 용기 있는 휘슬블로어들이 보복의 두려움 앞에 주저앉고 말 것은 자명하다.



 내부 고발자 보호는 언론 의무

 다행히도 최근 뉴욕의 연방지방법원에서는 기자의 통화 기록 요구를 봉쇄해 달라며 뉴욕타임즈가 제기한 소송에서 이 회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판사는 “기자의 통화 기록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1조의 보호 대상”이란 판결을 내렸다. 이 판사는 “해당 기자들이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현안에 관계된 정보를 수집하는 데는 취재원의 비밀을 지키겠다는 약속이 큰 역할을 했음을 관련 자료들이 입증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리크게이트는 아니지만, 이 사건에도 역시 주디스 밀러 기자가 연루돼 있었다. 검찰은 밀러 기자와 동료 필립 셰넌 기자의 통화 기록 제출을 요구해 왔다.

 밀러 기자는 지금까지도 자신의 취재원 공개를 거부하면서 법정 투쟁을 다짐하고 있다. 뉴욕타임즈도 ‘법원대 언론’의 싸움에 굴복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했다. 밀러 기자의 재판은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 기자들의 관심사다. 앞으로 법원이 어떻게 판결을 내리느냐에 따라 밀러 기자 개인만이 아니라 심층 보도로 명성을 쌓아 온 뉴욕타임즈와 워싱턴포스트 같은 대신문의 미래, 나아가 언론의 운명이 좌우될 것이기 때문이다.

허용범 조선일보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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