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출범한 후진타오(胡錦濤)·원자바오(溫家寶) 체제의 권력 기반이 공고화하면서 중국의 경제 지형도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중국의 ‘경제 수도’로 불리는 상하이는 장쩌민(江澤民) 주석과 주룽지(朱鎔基) 총리, 황쥐(黃菊) 부총리 등을 위시한 중앙 정계 인사와 중앙정부의 집중적인 지원으로 1990년대 들어 일약 최고의 경제도시로 부상했다. 장 전 주석과 주 전 총리 등은 모두 상하이시 당서기와 시장을 역임한 이른바 상하이방(上海幇) 출신이다. 이들의 강력한 후원으로 ‘아시아의 용머리(龍頭)’를 향해 질주하던 상하이는 요즘 주춤거리는 기색이 역력하다. 

먼저 상하이는 이미 수년 동안 ‘중국 내 10대 고속 성장 지역’ 명단에서 사라졌다. 올 상반기 고정자산 투자 증가율은 9.5%에 그쳐 중국 도시 전체 평균(31.3%)을 한참 밑돌았다. 같은 기간 GDP성장률도 2.6%로 광둥(廣東·4.4%)성은 물론 산둥(山東·5.3%)성, 장쑤(江蘇·5.4%)성에도 뒤져 ‘중국 경제성장 기관차’라는 평가가 무색해졌다.

중국을 넘어 세계적인 금융 중심지로 도약하겠다는 야망도 빛이 바래고 있다. 상하이에 있는 국내외 금융기관들의 총 보유자산은 3조2000억위안으로 베이징(北京, 14조1000억위안)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고 홍콩 전문가들은 전한다.

저우전화(周振華) 상하이 시정부 개발연구소 부소장은 “가까운 시일에 상하이가 뉴욕, 런던, 홍콩 같은 국제 금융 허브가 되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상하이는 지난해 완공된 양산항을 중심으로 국제공항, 철도 등을 이용한 국제물류 중심지로 활로를 모색 중이다.

상하이 발전의 상징이자 대표적인 신시가지인 푸동(浦東)지구의 위상도 흔들거리고 있다. 중앙정부가 균형발전을 빌미로 이 지역에 대한 세금우대 특별혜택 폐지를 강력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최근 “중국 중앙정부가 푸동지구에 대한 법인세 특혜를 폐지하라고 요구, 상해 시당국과 갈등을 빚고 있다”고 전했다.

푸동지구에 입주한 외국기업들은 지금까지 15%의 법인세를 내 중국의 다른 도시(27~33%)의 절반에 불과한 우대를 누려왔다. 상하이는 지금까지 푸동지구 등을 중심으로 600억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외국인 직접투자(FDI)를 유치했으나 이런 특혜가 사라지면 FDI가 급감할 전망이다. 이에 대해 상하이시는 중국 남부 광둥성에 있는 선전(深玔)특구에 준하는 대우라도 해달라고 적극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반대로 베이징 인근 톈진은 요즘 활력이 넘친다. 톈진 출신의 원자바오 총리가 최근 다녀간 것을 비롯해 중앙정부가 톈진 육성 의지를 적극적으로 천명하며 힘을 실어주고 있는 탓이다.

단적으로 올 6월6일 중국의 행정부격인 국무원은 ‘국무원 톈진 빈하이(濱海) 신구 개방과 관련한 문제 의견 수렴 추진’을 발표했다. 이는 광둥성 선전과 상하이 푸동의 뒤를 잇는 최대급의 신지역 건설을 명문화한 것이다.

‘구경은 베이징, 쇼핑은 텐진’

이 계획은 항구가 있는 탕구취(塘沽區)를 비롯해 한구취(漢沽區) 등 2270km2를 새로운 거대 도시로 키운다는 야망을 말한다. 현지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는 부동산을 비롯해 모든 분야에서 메머드급 폭탄 같은 영향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한다.

‘낭보’는 벌써 쏟아지고 있다. 세계 양대 항공기 회사인 에어버스가 톈진에 총 70억유로(약 8조4914억원)를 투자해 A320 조립공장을 건설하기로 확정했고 거기에 현대자동차와 경쟁하는 도요타자동차도 합작운영 중인 톈진공장을 확장하기로 결정했다. 중국 정부도 톈진을 하이브리드카와 연료절약차 같은 차세대 첨단 자동차 생산 중심기지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우리나라의 삼성이나 LG전자, LG화학은 물론 세계적인 이동통신업체인 모토로라, 산요, 에너자이저, 코카콜라와 중화권 최대의 식품회사인 캉스푸 등도 톈진에 자리 잡고 있다.

금융 중심지로의 도약을 위해 중국의 중앙은행인 런민(人民)은행 은행장으로 중국 국가 경제를 조율하던 다이상룽(戴相龍)이 지휘봉을 잡고 중앙정부에 적극 로비 등을 펼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톈진의 도시 발전 속도는 이미 상하이를 추월했다고 지적한다. 차 두 대가 근근이 다니던 2차선 도로는 대부분 8차선으로 확장됐거나 확장 중이며, 도시 개발이 광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상하이 와이탄(外灘)을 모방한 하이허 강변 개발과 천문도의 구조로 만들어진 인허공위앤(銀河公園)과 보수공사를 마친 수이상공위앤(水上公園), 구로우(鼓樓)의 전통 문화 거리와 빈지앙다오(濱江道) 상업거리 등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구경은 베이징에서, 쇼핑은 톈진’에서 라는 옛말이 21세기 들어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경제 지형 변화가 권력 기반의 부침(浮沈)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점이다.

장쩌민 주석 시절 중국 정계를 장악했던 상하이방에 대한 후진타오·원자바오 체제의 전면 공세가 가열되고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 구체적인 정황도 있다.

첫 번째는 개혁·개방이래 상하이 최대의 부패사건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상하이방이 뿌리째 흔들리는 증후가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중앙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 측은 100명이 넘는 조사요원을 상하이에 상주시키면서 천량위(陳良宇) 상하이 당서기의 측근 인물에 대해 강도 높은 조사를 벌이고 있다.

천 서기의 비서를 지냈던 친위(秦裕) 상하이시 바오산(寶山)구 부서기 겸 구청장이 파면됐고 천 서기의 오랜 측근인 우밍례(吳明烈) 신황푸(新黃浦)그룹 회장조차 비리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그래서 최종적인 타깃은 원자바오 총리의 거시경제 조정정책에 반발, 책상을 치며 맞서 미운털이 박힌 천량위 당 서기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상하이가 홍콩을 추월해 중국을 대표하는 경제 중심지가 되겠다는 목소리도 쑥 들어갔다. 대신 상하이와 홍콩이 경쟁하기 보다는 서로 손잡고 힘을 합쳐야 한다는 협력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 2004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액을 보면, 홍콩이 1조2695억홍콩달러인 반면, 상하이는 7450억홍콩달러로 60%가 채 되지 않는다. 상하이가 계속 9%대의 고성장을 지속한다고 해도 15년 후에나 홍콩과 경제 규모가 비슷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외형적인 하드웨어나 총경제 규모 이외에 법, 제도, 의식 등 이른바 경제 소프트웨어 격차는 30~40년이 넘는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주목되는 것은 주춤거리는 상하이에도 불구하고 중국 경제는 역동성이 넘친다는 사실이다. 아시아 금융 중심인 남부 홍콩을 필두로 장쩌민 시대의 상하이, 후진타오·원자바오 시대의 톈진으로 동부 연안을 따라 하나 둘 글로벌 경제 거점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중국의 움직임을 보면 우리가 한반도에서 재벌규제니 출자총액제한이니 하며 아옹다옹하는 게 때로는 너무 안타깝게 여겨지는 요즘이다.

송의달 조선일보 홍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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