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남부 광둥(廣東)성 성도인 광저우(廣州)는 매년 봄가을 1년에 두 차례 ‘외국 상인(商人)들의 천국’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1957년부터 중국 정부 주관으로 ‘중국수출상품교역회’( 廣交會 : Canton Fair)가 성대하게 열리기 때문이다. 올해 10월15일부터 30일까지 2주 넘게 열린 가을 전시회는 100회째를 맞아 겹경사가 났다.

덕분에 광저우와 일대 주변 도시들은 축제 분위기에 전시회 특수를 만끽하고 있다. 호텔들은 넘치는 손님들로 평소보다 3~5배 방값을 비싸게 받고 있다. 가령 평소에는 200위안(약2만4000원)하는 2성급 호텔은 이 기간 중 950위안을 호가해도 빈방을 구하기 힘들다. 500~600위안이 평상시 가격인 5성급 호텔은 1700위안을 줘야 한다.

외국 바이어들은 아예 차량으로 1시간 떨어진 선전(深川, ·둥관(東莞) 등의 호텔을 찾고 있다. 이들은 류화(流花)와 파저우(琶洲)에 있는 두 군데 전시장까지 셔틀버스를 매일 아침저녁으로 운행한다. 한국인 비즈니스맨들도 6000명 이상이 몰려왔다고 현지 관계자들은 전했다. 

이 때문에 상주인구만 1000만 명에 이르는 광저우의 교통은 평일에도 극심한 체증을 빚고 있다. 하지만 가라오케, 식당, 마사지 가게 등은 밀려오는 외국 고객들로 매출이 늘어 찡그린 표정은 전혀 없다. 모두가 밝고 즐겁다는 반응이다. 황화화(黃華華) 광둥성 성장은 “칸톤페어를 한 번 열 때마다 최소 100억위안(약 1조2000억원) 이상의 경제 효과가 광저우에 발생한다”며 “이외에도 도시 이미지 제고와 국제화 같은 무형의 효과도 상당하다”고 자랑했다. 

한국 전쟁이 휴전 상태로 접어든 지 4년째이던 엄혹한 냉전 시절, 중국이 서방의 경제봉쇄를 뚫고 외화 획득을 위해 광저우에 농산물, 광물 등 자원과 경공업 중심의 전시회로 시작된 칸톤페어가 50년이 경과한 지금까지 세계인의 사랑과 주목을 받고 있다.

사실 칸톤페어는 중국 개혁·개방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의 유일한 해외 교역 창구였고 외국인들에게는 중국 경제와 산업을 직접 들여다보는 ‘창문’이나 마찬가지였다. 1957년 봄에 열린 첫 전시회의 경우, 19개 국가에서 1223명의 외국 상인이 몰려와 1754만달러어치의 교역 계약이 성사됐다. 출발은 미미했던 셈이다.

그러나 이번 100회째에는 211개 국가와 지역에서 50만 명의 바이어가 와 최소한 330억달러가 넘는 교역 계약을 맺을 전망이다. 지금까지 칸톤페어에서 이뤄진 교역액만 총5488억달러(540조원)이며, 매년 중국 총수출액의 25% 정도에 해당하는 물량의 거래 계약이 칸톤페어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쉬빙(徐兵) 칸톤페어 대변인이 말했다. 

뿐 만 아니다. 칸톤페어는 해외 참관객 수는 물론 전시장 내 부스 수(3만1408개), 출품 업체(1만4001개), 전시장 연면적(60만㎡·약18만평) 등 모든 분야에서 중국 최대이자, 최고이다. 전시 품목은 모두 15만 개에 달한다. 일부 IT(정보통신) 제품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품목을 총망라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기세라면 현재까지 세계 최대 박람회인 하노버박람회를 조만간 제칠 전망이다. 중국 상무부는 칸톤페어의 규모는 전 세계 전시회를 통틀어 이미 세계 2위 수준아라고 평가한다.   

지난 10월15일 저녁에 열린 칸톤페어 제100회 기념행사에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와 우이(吳儀) 부총리, 보시라이(薄熙來) 상무부장 등 최고 지도부가 일제히 참석했을 정도이다.

원자바오 총리는 기념식에서 “경제 개방과 세계무역기구 규칙 준수를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며 “내년 봄 101회 칸톤페어 때부터는 수출품 이외에 수입품 전시회도 함께 개최하겠다”고 선언했다. 급증하는 중국의 무역 흑자 폭 축소를 위해 외국에 선심성 제스처를 쓴 것이다.

중국 정부 강력하게 육성

전시회장 안팎은 ‘다국적 인종 전시장’을 연상케 했다. 아시아, 유럽, 미주는 물론 중동과 아프리카 상인들까지 대거 몰려왔기 때문이다.  

잠비아에서 비행기를 세 번이나 바꿔 타며 18시간 만에 왔다는 마틴 치슝가(42) ‘하트필드상사’ 부사장은 “아프리카에서는 칸톤페어를 다녀와야만 일류 비즈니스맨으로 쳐준다”며 “값싸고 질 좋은 중국 제품이 아프리카에서는 최고 인기”라고 말했다.

인도의 로힛 메타(36) ‘수퍼하우스 가죽’ 이사는 “4년 전부터 매년 봄가을 광저우를 찾고 있는데 올 때마다 중국 제품의 눈부신 발전 속도를 보고 깜짝깜짝 놀란다”고 말했다.

칸톤페어가 50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계속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중국 정부의 엄격한 품질 관리 노력이다. 이 전시회는 중국 내 기업(외자 기업 포함)에만 참가 자격을 주는데, 출품에 앞서 지방 성·시에서 사전 심사를 통과해야만 한다. 가령 단추나 손톱깎이도 1만여 개의 디자인이 있는데, 이 중 31개 성·시에서 엄선에 엄선을 거듭한 최고 최신 제품이 제일 먼저 칸톤페어에 나온다는 것.

외국 바이어 입장에서 칸톤페어는 ‘세계의 공장’인 중국에서 만들어지는 최신 제품을 가장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파악하는 절호의 찬스가 되는 것이다.

최고 지도부의 강력한 육성 의지도 한몫했다. 1960년대 후반 문화혁명 기간 중에 중단될 위기에 빠졌지만 저우언라이(周恩來) 당시 총리가 계속 개최를 지시함으로써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저우 총리는 재임 기간 중 8번이나 칸톤페어를 직접 찾아오는 정성과 관심을 쏟았다.

또 70회, 80회 때는 리펑(李鵬) 당시 총리가, 90회 때는 주룽지(朱鎔基) 총리가 각각 방문해 중앙 정부의 의지를 대변했다.

주목되는 것은 이번부터는 하이얼(海爾), TCL, MIDEA 같은 상무부가 중점 수출 브랜드로 육성하는 147개사의 제품을 한데 모은 ‘특별 전시 구역(品牌展位 : Brand Zone)’이 설치됐다는 점. 허위안귀 광둥외국어대 교수(국제무역학)는 이에 대해 “중국 정부와 기업이 ‘독자 브랜드(自主品牌)’ 제품으로 세계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의지의 표출”이라고 풀이했다.

현장에서 만난 한국 기업인들은 중국 기업들의 급속한 추격 속도에 전율을 느낀다고 입을 모았다. “외형 완제품으로 볼 때 우리 제품과 중국 제품 간의 격차는 사실상 사라졌다”는 것이다. 오히려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니 중동, 아프리카 같은 제3세계권에서는 중국제를 더 쳐주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 광저우가 제3세계 무역의 성지(聖地)가 됐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흘러 다니고 있다.

물론 중국 제품의 한계도 있다. 아직도 가격 경쟁력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고, 외국 제품을 교묘하게 베낀 ‘짝퉁’ 제품이 판치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그러나 박종식 코트라 광저우 무역관장은 “우리나라와 중국 제품 간의 경쟁력 격차는 2~3개월 단위로 급격히 줄고 있다”며 “중국을 더 이상 저임금 저품질 상품 생산국으로 보면서 방심했다가는 크게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