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보잉과 경쟁하며 세계 항공기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유럽의 에어버스. 9·11 테러 이후 세계 항공 산업이 위축되면서 보잉이 고전하자 에어버스는 보잉을 앞지르고 질주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에어버스가 극심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야심 있게 내놓은 수퍼점보 A380의 인도가 계속 늦어지면서 내부 갈등과 위기가 표면화하고 있다. 

에어버스는 최근 3개월 새 CEO(최고경영자)를 2명이나 갈아치웠다. 3개월 전 CEO로 취임했던 크리스티앙 스트레프가 사임하고, 모기업 유럽항공방위산업(EADS)의 공동 CEO로 있던 루이 갈루아가 후임으로 임명됐다. 전임 CEO 크리스티앙 스트레프는 “개발과 효율이라는 측면에서 보잉을 따라잡자면 10년은 족히 걸릴 것”이라고 뼈아픈 고백을 한 적도 있다.

에어버스가 왜 이리도 추락하게 됐을까?

일단 표면상 이유는 야심작 수퍼점보 A380 때문이다. ‘나는 호텔’로 기대를 모았던 세계 최대의 여객기 A380은 그동안 납기일을 여러 차례 연기하면서 당초 목표보다 인도 시점이 2년이나 늦어졌다. 지난 9월21일에도 에어버스의 모기업 EADS는 “비행기 생산에 중대한 차질이 생겨 주문받은 에어버스 A380 납기를 12개월간 연기하겠다”고 발표했다. EADS가 납기를 연기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에어버스가 최근 4년간 각국 16개 항공사로부터 주문받은 A380 물량은 159대. 이 중에서 싱가포르항공, 콴타스항공 등은 22대를 발주했는데 에어버스가 당초 약속한 납기일을 1년 연기하자 막대한 경영 손실이 예상된다며 불평하고 있다.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싱가포르항공에만 2억달러를 물어야 할 판이다.

최대 고객인 버진애틀랜틱과 에미레이트항공은 주문을 취소할 가능성까지 내비치고 있다. 두바이에 본사를 둔 에미레이트항공은 45대를 주문했다. 에미레이트항공의 팀 클라크 대표도 “항공기를 제때 인도받지 못하는 바람에 경영상 심각한 문제가 우려된다”면서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했다. 에미레이트항공이 주문을 취소하면 A380의 미래는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반면 프랑스의 에어프랑스와 독일의 루프트한자는 납기 연장을 수용하는 입장이다. 스테파니 스토츠 루프트한자 대변인은 “A380기는 매우 성공적인 모델이며 앞으로 수요가 증대될 여객기”라고 두둔했다.

A380의 인도가 계속 지연되는 것은 제작 공정이 복잡해 당초 예상보다 공기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에어버스는 A380을 주문한 항공사들에 각종 내부 편의시설을 원하는 대로 설치할 수 있게 주문식 제작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제작 공정을 표준화하지 못해 작업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다. A380에 들어가는 전선줄만 500㎞에 달하는데, 일일이 다른 기내 구조에 맞춰 배전하는 작업에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게다가 안전성이 입증될 때까지 넘어야 할 산도 높다. 여객기 운항과 관련된 안전 규칙을 정하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A380 비행 때 일어나는 회오리바람이 주변을 지나는 다른 항공기들의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조사할 예정이다.

에어버스 측은 A380이 일으키는 회오리바람의 강도가 미국 보잉사의 747 여객기보다 그리 강하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항공 전문가들은 타 비행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지적한다.

공식 운항이 지연되면서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생겼다. EADS는 납기 일정 연기에 따라 예상 영업 이익 감소분을 새로 발표했다. EADS 이사회는 올해 매출이 28억유로 추가 하락할 것이라고 밝혔다. 거듭되는 납기 지연 사태로 4년여 동안 48억유로의 재정 타격을 이미 입었다. 반면 A380이 고전하는 사이 보잉이 개발한 장거리 제트기 ‘드림라이너’ 주문은 수백 대로 치솟았다.

그런데 기술적인 문제보다 더 심각한 건 정치적 문제다. 1970년 컨소시엄 형태로 생겨난 에어버스는 근본적인 지배구조의 한계를 안고 있어 경영의 효율성이 심각하게 방해받고 있다.

에어버스는 프랑스, 독일, 스페인, 영국 회사들이 참여한 합작품이다. 그 위에 모기업 EADS가 있다. 그래서 에어버스 항공기는 유럽 16곳에서 나누어 제작한다. 기체 앞부분과 뒷부분은 독일 함부르크에서 만들고 중간은 프랑스 낭트에서 조립하며 부분 조립체들은 다시 프랑스 툴루즈와 독일 함부르크로 각각 옮겨져 전체가 완성되는 식이다.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제작 공정이다. 그런데도 에어버스에 참여한 각국 정부들은 정작 회사의 이익보다는 개별 국가의 일자리 지키기에 더 관심이 많다.

게다가 모기업 EADS는 프랑스와 독일이 각각 내세운 CEO가 공동 대표로 있다. 이들 두 나라의 입김이 회사 경영을 좌지우지한다. 프랑스가 회사 이익을 위해 독일 함부르크의 공장 문을 닫아야 한다고 했을 때 독일 정부가 끼어들었다. 논란 끝에 EADS는 공장 폐쇄 계획을 없던 일로 넘겼다. 취임하면서 “에어버스 회생 방안을 100일 안에 찾겠다”고 약속했던 전임 크리스티앙 스트레프 CEO가 취임 99일 만에 물러나게 된 것도 구조조정 과정에서 심각한 내분을 겪었기 때문이다.

스트레프는 A380의 납기 지연으로 인한 에어버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지난 7월 초 취임했다. 처음부터 공세적이고 의욕적인 구조조정을 밀어부치려 했다. ‘파워 8’이라는 대대적인 에어버스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8개항으로 이뤄진 ‘파워8’의 구체적 내용은 내년 초에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스트레프는 “에어버스가 금기시해 왔던 것들을 타파하겠다”며 유럽 내 특히 프랑스와 독일 간의 오랜 일자리 배분 관행이 효율적인지도 따져 보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공장 폐쇄와 일자리 감축 등 신속하고 포괄적인 구조조정 방안을 제시했지만 이 지나치게 급진적인 구조조정 방안에 내부 반발이 커졌다.

스트레프의 강력한 구조조정 방안에 관련국 정치인들도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피어 스타인브룩 독일 재무장관은 “에어버스의 구조조정 조치로 독일 내 일자리가 영향 받지 않도록 보장하라”고 EADS에 촉구했다.

한 소식통에 따르면, 스트레프는 EADS 이사회에 급진적인 구조조정 방안을 제시하면서 “나를 지지하지 않으려면 해고하라”고 배짱 전략을 들이밀기도 했다. 프랑스의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까지 나서서 TV 인터뷰를 통해 “스트레프는 힘겨운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가 사임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옹호했지만 점점 내부 반발이 커지면서 결국 스트레프는 물러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사임하기 이전에도 스트레프는 프랑스 일간지 <르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최고경영자로서 회사를 이끌어 가기에 충분한 권한을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고 발언한 적도 있다.

이처럼 에어버스와 모기업 EADS의 복잡한 지배구조가 중요한 의사결정 때마다 불협화음을 빚으면서 신속한 대처를 어렵게 한다.

신임 CEO 루이 갈루아도 취임 일성으로 “조만간 구조조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선포했다. 갈루아 CEO는 “비용 절감 방안에는 감원도 포함돼 있으며 어느 곳이 될지는 더 생각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CEO 교체 사태를 지켜볼 때 에어버스의 구조조정 계획이 얼마나 신속하고 대대적으로 이뤄질지는 의문이다. 정부 입김이 기업의 경영에 지나치게 관여하는 바람에 에어버스는 번번이 효율성을 뒷전으로 미루는 경영 판단을 내리게 돼 내부 어려움이 누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보잉과 에어버스의 엇갈리는 운명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강경희 조선일보 파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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