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동·하계올림픽을 포함한 각종 국제대회 유치에 사활을 걸었다. 국제대회는 스포츠 대회뿐만 아니라 국제 수준의 엑스포(박람회) 등 구분을 두지 않고 있다. 러시아의 국제대회 유치 노력은 거의 20여 년만이다. 지난 7월 G8(선진공업7개국+러시아) 정상회담, 지난해 5월 2차 대전 승전기념일 60주년 행사에 이어 문화·체육행사를 유치, 국제사회에 위상을 떨치겠다는 게 러시아 목표다. 

러시아가 현재 가장 심혈을 기울이며 유치에 나서고 있는 것은 오는 2014년 동계 올림픽이다. 러시아는 최대 휴양지인 흑해 연안 ‘소치’를 내세워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지난 6월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 후보 도시로 한국의 평창과 소치, 잘츠부르크(오스트리아) 등 3곳을 최종 선정했다. 당시 IOC가 발표한 도시별 평점은 잘츠부르크가 8.3점으로 가장 높았고, 평창은 8.1점, 소치 7.1점 순이었다. 하지만 러시아는 정부 주도하에 대역전극을 모색하고 있다. 대역전극은 불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니라고 러시아 정부 당국은 주장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10월10일 자크 로게 IOC위원장에게 강력한 지지를 요청했다. 그는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로게 IOC 위원장과 면담한 뒤 “로게 위원장과 뜻 깊은 이야기를 나눴으며, 오늘 만남에 아주 만족한다”고 밝혔다. 로게 IOC위원장은 “러시아의 소치가 동계올림픽 후보 도시로 지명된 것을 축하하며 러시아가 스포츠 발전에 기여한 공로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로게 위원장은 또 “오는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 후보 도시들이 모두 훌륭하다”면서 “흥미로운 승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보리스 그리즐로프 하원(국가두마) 의장과 만난 자리에서도 “러시아 소치는 강력한 경쟁력을 가진 후보 도시”라면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한국 평창 등 다른 2곳의 후보 도시들도 강력한 만큼 매우 흥미로운 경쟁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리즐로프 위원장은 한술 더 떠 “오는 2011년 유니버시아드대회를 러시아 카잔에서 유치하고자 한다”면서 “동계올림픽과 유니버시아드를 러시아에서 모두 개최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는 내년 7월 과테말라에서 열릴 IOC총회에서 결정된다.

러시아 정부는 소치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전략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일단은 5년 내 세계 수준의 휴양지로 부각시킨다는 것이다. 전략 프로그램의 핵심 내용은 호텔과 도로 정비다. 평창과 찰츠부르크 등 경쟁지보다 약점으로 지적된 숙소와 도로 문제를 내년 2~3월 사이 올림픽위원회 최종 실사단의 판정을 받기 전까지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야망이다.

소치의 대회 장소인 ‘크라스노 폴랴나’까지 도로를 확장하고, 완벽하게 정비해 접근성을 용이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빅토로 콜로자느이 소치 시장은 벌써부터 “'예전에는 소치에서 크라노스 폴랴나까지 2시간30분 정도 걸렸지만 지금은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고 호언하고 있다. 소치는 지난 9월30일 해발 960m 고지에 휴양지 건설을 시작하면서 평창과 찰츠부르크를 긴장시키고 있다. ‘카루셀’로 명명된 고산 휴양지 기공식에는 알렉산드르 주코프 부총리(동계올림픽유치위원장), 게르만 그레프 경제개발통상부 장관, 알렉산드르 트카체프 크라스노다르 주지사 등 주요 인사들이 참석해 러시아의 동계올림픽 유치에 대한 큰 관심을 반영했다. 이날 기공식에서는 고산을 오를 수 있는 리프트 1호기가 건설돼 시승 행사를 가졌으며, 향후 5년 안에 20대의 리프트가 추가로 건설돼 전 세계 관광객들을 끌어 모을 예정이다.

오는 2009년까지 3억5000만유로의 비용을 들여 건설되는 소치의 고산 휴양지에는 하루 평균 1만2000명이 다녀갈 수 있는 각종 위락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주코프 부총리는 이날 소치 내 스키 리조트 ‘크라스나야 폴랴나’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러시아 정부가 소치 개발을 위해 3140억루블(118억달러)의 예산을 배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러한 금액은 전례가 없는 막대한 규모”라면서 “비용 집행은 60%는 연방 예산에서, 나머지는 외부 투자를 받아 이뤄진다”고 말했다.

러시아 정부는 올림픽 유치에 성공할 경우, 최대 400억달러를 쏟아 붓겠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솔트레이크시티 등 역대 동계올림픽 중 화려했던 그 어느 대회보다 많은 예산을 투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러시아는 앞서 2002년과 2005년 ‘2010년 세계 엑스포(EXPO-2010)’와 2012년 하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경쟁을 벌인 바 있다. EXPO-2010은 상하이, 2012년 하계올림픽은 런던이 개최지로 선정되는 바람에 러시아는 일단 물을 먹었다. 2012년 모스크바 올림픽유치위원장인 유리 루쉬코프 모스크바 시장은 당시 싱가포르 IOC총회에 참석해 “런던의 승리를 축하하며 모스크바는 오는 2016년에도 올림픽 개최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루쉬코프 시장은 이날 2012년 하계올림픽 개최지로 런던이 최종 선정된 뒤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낙담하지 않으며 오히려 모스크바가 전 세계 대도시들과 경쟁해 중요한 국제 행사들을 수준 높게 치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현대적이면서도 빠르게 발전하는 도시라는 점을 확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2016년 올림픽 개최 경쟁에 나설 것”이라며 “이번 경쟁에 참여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좋은 경험과 IOC의 높은 기준을 배우게 됐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NTV는 이날 모스크바시가 이번 패배에도 오는 2010년까지 계획했던 스포츠 경기 시설들을 완공할 것이라고 전했다. 러시아가 언제든 국제대회를 유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실제로 러시아는 2002년부터 국제대회 유치에 적극 나섰다. 시작은 우리나라 여수와 더불어 ‘2010년 세계 엑스포(EXPO-2010)’ 유치를 위해 총력전을 벌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유치에 실패했지만 러시아가 국제적인 위상을 떨칠 기회로 국제대회 유치를 주요 사업 목표로 설정한 상태였다.

당시 시내 중심가에는 마치 유치가 확정된 것처럼 엑스포 포스터가 난무했다. 푸틴 대통령, 카시야노프 총리, 루쉬코프 모스크바 시장도 카르멘 실베인(Sylvain) 단장이 이끌던 실사단을 맞아 러시아에서 엑스포가 열릴 수 있도록 지원을 요청했다. 러시아 언론은 이날 엑스포 유치를 위해 모스크바가 기존 엑스포 센터를 17만㎡에서 32만㎡로 확장하고, 세례메티예보 국제공항과 도심을 연결하는 모노레일, 철도, 제4순환도로 건설, 숙박·유락시설을 확충할 계획임을 밝혔다. “대통령과 상·하원, 정·재계가 동시에 유치 총력전을 펼치는 것은 러시아에서 극히 보기 드문 현상이다”고 언론은 지적했다.

당시 루쉬코프 모스크바 시장은 “엑스포 유치에 10억달러의 투자가 필요하다”며 “이는 시 자체 재정으로 충분한 규모”라고 자신했다. 그는 “엑스포 유치는 모스크바가 국제도시로 재도약할 기회”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러시아는 ‘세계로 향한 자원, 기술, 이상’을 주제로 유치 신청을 했으며, 지난 150년 엑스포 역사상 매회 참가하고서도 개최는 한 적이 없다며 사무국과 회원국을 설득했지만 실패했다. 2010년 엑스포 유치를 위해 한국 여수, 중국 상하이, 모스크바가 치열한 경합을 벌였지만 결국 상하이로 결정됐다.

두 차례 국제대회 유치에 실패한 적 있는 러시아는 이번 동계올림픽만은 꼭 유치하려는 집착을 보이고 있다. 지난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 때 냉전과 갈등으로 미국과 유럽이 불참하면서 반쪽 대회가 됐던 것을 확실히 만회하겠다는 전략이다. 푸틴 대통령은 아예 소치에서 집무하면서 소치 알리기에 여념이 없다. 푸틴 대통령은 이곳에서 외국 정상들을 자주 만나면서 해외 언론을 통해 소치를 자연스럽게 동계올림픽 후보지로 부각시키고 있다. 과연 러시아의 동계올림픽 유치는 성공할 것인가.

정병선 조선일보 모스크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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