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프트뱅크 그룹을 이끄는 한국계 손정의(孫正義. 일본 이름 : 손 마사요시) 사장이 ‘위기’에 빠져 있다. 일본 통신시장의 선두를 차지하기 위한 그의 의욕이 ‘무리수’로 전락하는 사태가 터지면서 신뢰도에 큰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일본 재계와 언론계 눈길은 ‘상처 입은 손정의’의 행보에 일제히 쏠려 있다. 

전말은 이렇다. 일본에서는 10월24일부터 ‘휴대전화번호 유지제도(번호이동성제도)’가 시작됐다. 기존 휴대전화번호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회사를 바꿀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된 것.

각 통신회사들은 이 제도가 향후 시장의 판도를  결정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보고 사활을 걸고 대책을 마련해 왔다. NTT도코모를 누르고 일본 최대 종합 통신회사로의 도약을 꿈꿔 왔던 손정의의 소프트뱅크도 예외는 아니었다.

소프트뱅크는 이 제도가 실시되기 하루 전날인 23일 밤 기습적으로 ‘통화료 0엔’이라는 파격적인 서비스를 발표하며 타사의 허를 찔렀다. 이 서비스는 소프트뱅크 가입자끼리는 월 기본료 9600엔만 내면 통화료는 물론 ‘짧은 메일(70자 이하의 메일)’도 공짜로 한다는 것. 또 향후 석 달 이내의 신규 가입자나  다른  통신사로부터 옮겨오는 고객에게는 월 기본료를 2880엔으로 고정하겠다는 파격적인 내용을 담았다.

뿐만 아니라 “경쟁 업체인 NTT도코모와 au가 요금을 내리면 24시간 이내에 가격을 추가로 내리겠다”며 호기롭게 선언, 경쟁사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등 손정의식 ‘치고 나가기’를 거듭 선보였다.

경쟁업체들은 상상도 못했던 소프트뱅크의 기습에 크게 당황하며 고객을 빼앗기는 사태를 크게 우려했다. 그러나 이런 우려는 소프트뱅크에 터진 예기치 못한 ‘사고’로 경쟁사 입장에서는 ‘호재’로 반전됐다. 제도가 실시된 뒤 첫 주말일 10월28~29일 소프트뱅크의 전산 시스템이 완전 다운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소프트뱅크의 기습 서비스에 끌린 고객들인 한꺼번에 몰리면서 전산 시스템이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주저앉았기 때문이다. 소프트뱅크로서는 일본 전체의 휴대전화 관련 업무를 중단하는 ‘치욕’을 겪어야 했다.

무료통화 ‘호기’부리다 전산 ‘다운’

손 사장은 이례적으로 30일 저녁 기자회견을 갖고 “소프트뱅크 휴대전화 가입자는 물론 경쟁사인 NTT도코모, au 측에 피해를 끼친 점, 고개 숙여 사과한다”고  밝혔으나 여론은 냉담했다. 또 그가 회견에서 “번호이동성제도에서의 경쟁을 촉진하고 유동성을 높인다는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성심성의껏 노력을 해 왔다”거나 시스템이 주저앉은 원인을 “고객이 폭주했기 때문”이라고 밝히는 등 사과하는 사람답지 않게 고분고분하지 않았던 점도 논란이 되었다.

NTT도코모와 au 측은 “소프트뱅크로 이동하려는 사람들이 많아 시스템이 다운된 것처럼 말하고 있으나 확인 결과 소프트뱅크 가입을 해지하고 다른 통신사로 옮겨 가려는 고객들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실제 <니혼게이자이(日經)신문>에 따르면 번호이동성제도 시행 엿새째였던 10월30일 현재 소프트뱅크 모바일의 가입자 수가 시행 전에 비해 2만 명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1위 사업자인 NTT도코모 고객은 6만 명 가까이 감소했다. 이들 8만 명의 고객을 2위 업체 au가 흡수한 것으로 파악됐다. au는 이와 별도로 2만 명가량의 신규 가입자를 확보, 엿새간 순증 가입자 수가 10만1200명에 달했다.

뿐만 아니다. 소프트뱅크로서는 서비스료 ‘0엔’ 광고에 대해서도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지적을 당했다. 경쟁사들이 “0엔은 자사 모바일끼리의 통화에 국한되는 것이며 타사 모바일과 통화하면 오히려 비싸다”, “타사보다 언제는 210엔 싸다는 것도 인터넷 접속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소프트뱅크의 기습 서비스인 통화료 0엔 광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 실제 ‘통화료 0엔’에는 여러 가지 전제조건이 있으나 실제 광고에는 그런 전제조건들이 작은 글씨로 씌어져 소비자들의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소프트뱅크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지적을 받고 결국 광고까지 바꿔야 했다.

이런 일련의 사태에서 보듯 손 사장의 해명은 오히려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되고 말았다. 무엇보다 기업의 신뢰를 중시하는 일본인 소비자들에게 소프트뱅크의 시스템 장애에 이어 손 사장의 변명 같은 해명, 광고 논란 등은 기업윤리에 반하는 문제로 비쳐진 것이다. 그래서인지 현지 언론도 손 사장이 고개를 깊게 숙이는 사죄 회견을 되풀이 보여주며 소프트뱅크의 실책을 크게 부각시키는 등 ‘손정의 때리기’에 나선 모습이다.

일본 유력 경제주간지인 <에코노미스트>의 보도를 보면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 잡지는 11월14일자 보도에서 손 사장은 2001년 ADSL의 ‘야후 BB’ 서비스를 개시할 때도 적자를 각오하고 무료 캠페인을 실시했는데 이번 ‘0엔 통화료’ 공세를 보니 그 때를 방불케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움직임은 ‘예의를 갖추지 않았다’고 비판받았던 외국인 횡령의 모습과 겹쳐진다”며 “현 시점에서는 상식을 뒤집는 난폭함이 두드러진다. 이는 그 속도와 승부에의 집착 등 다른 경쟁자를 압도하는 자질을 갖추었다는 의미에서 그렇다”며 손 사장이 한국계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그의 승부사적인 경영 방식이 일본에서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는 식으로 보도했다.

일본의 유력 시사주간지인 <아에라> 보도에서도 손 사장에 대한 불신이 듬뿍 묻어나기는 마찬가지다. <아에라>는 11월13일자에서 손 사장이 “사과합니다”라며 고개를 숙였지만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처럼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다소 감정 섞인 논평으로 관련기사를 시작했다. 이어 “나스닥 재팬과 아오조라은행에서의 철수, ADSL에서 야후 BB의 주문 쇄도 소동, 그리고 개인정보의 대량 유출 사건 등 손 사장이 고개를 숙일 기회는 많았다”며 “그래서인지 사죄 회견도 익숙해져 관록조차 붙은 것처럼 느껴졌다”고 비꼬았다.

아무튼 소프트뱅크가 이번 사태로 인해 신뢰와 이미지에 큰 상처를 입은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소프트뱅크가 다소 무리했다고 보이는 이번 사태에 몰린 것은 1위로의 도약을 절체절명의 과제로 두고 총력을 건 결과다.

코너 몰린 손정의에 여론 ‘뭇매’

번호이동성제도 가입 전 기준으로 소프트뱅크의 가입자는 1530만 명. 경쟁사인 NTT도코모(5210만 명), au(2640만 명)에 비해 크게 뒤져 있었다. 후발 주자로서 각종 파격적인 할인 서비스 등을 내놓으며 달려왔지만 쉽게 가입 회사를 바꾸지 않는 일본 소비자들의 보수적 성향 탓에 시장 공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편이다.

이익률 면에서도 NTT도코모의 매출 영업이익이 17.4%에 달하고 au도 9.6%에 육박하는데 비해 소프트뱅크는 5.1%에 지나지 않는다. 가장 이익률이 낮은 소프트뱅크가 가격파괴를 선도하는 것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본 통신업계에서는 소프트뱅크가 언제까지나 가격파괴를 승부수로 띄울 수 없으며 언젠가는 제풀에 지치고 말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손 사장은 지난 3월 무려 1조7500억엔을 쏟아 부으며 일본에서 보다폰을 인수하는 등 기존 업체들과의 전면전을 선언했다. 그는 “단순한 음성 통신이 아닌  디지털 정보 서비스가 가능한 회사를 만들 것”이라며 “브로드 밴드와 모바일 네트워크, 음성 통신 등을 통합한 서비스를 제공해 소프트뱅크를 향후 10년 안에 일본 최대 이동통신업체로 성장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번 시스템 다운 사태는 이러한 포부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단추를 잘못 꿴 사건인 셈이다. 그러나 이런 실수가  되풀이된다면 소프트뱅크는 힘든 상황을 맞을 수 있다. 한국계인 그가 하는 경영 방식에 일본 재계와 언론계가 별로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는 탓이다.

신지홍 연합뉴스 도쿄 특파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