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주요 자동차회사가 러시아 투자에 적극 나서면서 러시아가 제2의 디트로이트화(化)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지난해 총 150만 대의 승용차가 팔렸으며, 수입차만 56만 대가 팔렸다.

러시아 진출 선봉장은 르노사다. 르노는 1998년 모스크비치 생산사와 합작사를 설립 러시아 진출 1호가 됐다. 르노는 현재 ‘로간’이라는 신형 소형차를 생산하며 러시아 시장을 노리고 있다.

르노에 이어 2002년부터 포드차가 공장을 가동 중이고, 지난해 도요타자동차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자동차 공장 건설에 나섰다. 닛산자동차도 지난 4월 러시아 진출을 발표했다. 독일의 폭스바겐과 미국의 제너럴모터스도 러시아 진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 자동차들이 일제히 러시아행 급행열차를 탄 셈이다.

러시아 진출 교두보는 상트페테르부르크시(市)다. 러시아 제2의 도시이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고향인 이곳은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 하에 외국인 투자 유치에 발 벗고 나섰다. 특히 자동차사들의 투자를 이끌면서 ‘러시아의 디트로이트’로 발돋움하고 있다. 이곳은 해상 운송과 육지 운송을 겸하는 천혜의 조건에다 푸틴 대통령이 고향의 발전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하고 있는 것이 자동차 메이저사의 진출 배경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진출 원조는 포드사다. 지난 2002년 포드사는 연간 3만6000대 규모의 생산설비를 가동했으며, 러시아 시장을 장악 중이다. 특히, 올해는 생산 규모를 거의 두 배로 늘린 6만 대 수준으로 올려 러시아 시장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도요타는 지난해 6월 상트페테르부르크 ‘슈샤리’ 지역에 공장 착공식을 갖고 총 1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내년 12월부터 인기 차종인 ‘캠리’를 연간 2만 대 생산하게 된다. 닛산 역시 상트페테르부르크 근교에 2억달러를 들여 공장을 설립, 오는 2008년 가을부터 연간 5만 대를 생산할 계획이다.

폭스바겐은 5월29일 러시아 정부와 협정을 맺고 오는 2008년까지 총 5억1000만달러를 투입, 모스크바 남서부 칼루가주에 연 11만5000대의 생산능력을 갖춘 공장을 세우기로 했다. 현지 기업과 합작 생산해온 GM도 앞으로 단독 진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미쓰비시 자동차도 지난해 러시아에서만 5만7160대를 판매, 러시아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회사가 아직 경영 재건 중이어서 현지 판매 10만 대를 진출 시점으로 잡고 있다.

이외에도 러시아 자동차 산업은 외국 회사와 협력해 러시아 내 조립 공장을 설립하는 경향도 짙어지고 있다. 러시아의 다양한 행정적 어려움 등의 위험을 단독으로 감수하기를 꺼리는  외국 기업과 생산 라인과 기술 도입을 원하는 러시아 자동차 업계의 상호 보완적 성격을 띤다고 볼 수 있다. 아브토프라모솜(Avtoframosom)은 르노사와 로간을, 세베르스탈-오토사는 쌍용 렉스톤, 이즈아브토사는 기아 스펙트라, 노보시비르스키-아브토보빌사는 중국의 체리를 조립 생산하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외제차 판매 1위를 수성해온 현대자동차(현대차)도 러시아 파트너사인 ‘타가스’를 중심으로 올 12만 대 조립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대차는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의 타간로그에서 2001년부터 타가스에서 승용차량을 CKD로 생산해왔다. 지난 2월에는 최한영 현대차 상용 사업담당 사장이 러시아 엘즈가(RZGA)사와 오는 2010년까지 총 7만7000대(약 20억달러, 한화 2조원) 규모의 상용차를 CKD방식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8만7457대를 판매했다.

매년 6%씩 자동차 시장 성장

세계 주요 자동차사들의 러시아 진출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지난 수년 동안 러시아에서는 자동차 수요가 급증하면서 주요 자동차들의 투자 의욕을 부추겼다. 더구나 산유국 러시아는 고유가가 지속되면서 오일달러가 지속 유입돼 소비심리가 살아나면서 자동차 구입에 대한 욕구가 분출돼 왔다.

러시아 국민들의 외제차에 대한 선호도가 대단하다. 수십 년 동안 자국 자동차를 타왔던 이들에게 소련 붕괴 후 하나 둘 러시아 땅에 유입된 외제차는 극도의 선망대상이었다. 러시아 국민차인 라다와 모스크비치 등이 질 낮고 보잘 것 없는 데다 고급 승용차로 통한 ‘볼가’마저 동급 외제차에 비해 품질 면에서 비교가 안 되면서 러시아 자동차사들은 급격한 매출 감소에 직면했다. 외제차가 이를 대체하고 있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회장 이영국)가 지난해 국가별 자동차 내수 규모를 분석한 결과, 1위는 세계 전체의 26.5%인 1744만 대를 차지한 미국이, 2위는 585만 대의 일본이, 3위는 전년대비 13.5%의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이면서 576만 대를 기록한 중국이 차지했다. 협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4위 독일(364만 대), 5위 영국(283만 대) 순으로 내수 규모 세계 5위까지는 2004년도 순위와 같았으며, 프랑스(260만 대)가 이탈리아(251만 대)를 제치고 6위를 차지했고, 스페인(199만 대)이 8위, 캐나다(163만 대)가 9위를 기록했다. 10위 브라질(163만 대), 11위 러시아(154만 대), 12위 인도(138만 대) 등 BRIC’s 국가들도 증가세를 보였다.

인구 1000명당 승용차 보유대수(2004년 기준)를 살펴보면, 캐나다 569대, 독일 550대, 프랑스 497대, 영국 496대, 스페인 476대, 미국 458대, 일본 439대, 한국 222대, 브라질 99대, 중국 13대이며, 러시아는 165대이다. 유럽 국가와 비교할 경우 자동차 판매 시장의 수요가 무궁무진하다.

러시아가 매력적인 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데다 정부에서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전 진출하는 기업에 한해 우대 혜택을 줄 방침이어서 자동차 업체들이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국내 자동차 산업 육성을 위해 자국 진출 외국 자동차 메이커에 부품관세율을 대폭 낮추는 우대 정책을 취하고 있다. 우대 정책은 WTO 가입 전 진출이 결정된 기업에 한해 이를 적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WTO에 가입해 관세율이 인하된다고 해도 실제 적용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관계로 당분간은 우대 혜택을 누릴 수 없기 때문에 업체들이 진출 시기를 앞당기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세계 자동차사들은 러시아 자동차 시장이 세계 시장 중 가장 잠재력 있는 시장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2014년까지 러시아의 자동차 판매대수가 매년 6%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이처럼 러시아 자동차 시장을 매력적이고, 잠재력 있는 시장의 하나로 꼽고 있는 것은 현재 러시아 정부의 자동차 산업 분야의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자동차 조립 설비 무관세 및 자동차 부품의 0~3% 관세율 적용 등 적극적인 자동차 산업 육성 방안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급증한 오일머니로 인한 재정 흑자, 러시아 정부의 꾸준한 법률, 제도 정비와 더불어 늘어나고 있는 1인당 국민소득 또한 평가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손장원 현대차 동구지역본부장(모스크바 소재)은 “2008년까지 러시아 자동차 판매대수가 전체 180만 대까지 이를 것”이며, “이 중 현지 조립 자동차들의 비율이 현재 5%에서 20%까지 성장할 것”이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