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컵을 계기로 2차 대전 이후 처음으로 마음껏 국기를 흔들며 애국심을 발산했던 독일이 이번에는 경제 회생에서 자신감 넘치는 지표들을 보여주면서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최근 ‘유럽 경제의 엔진’ 독일이 오랜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 기지개를 켜고 있다는 경제 지표들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실제 월드컵이 독일 경제에 미친 영향은 미미하지만, 월드컵을 계기로 움츠려 있던 독일 사람들의 기대 심리가 보다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독일 연방통계청에 따르면 올 1분기에 독일의 국내총생산(GDP)은 5577억유로. 전 분기보다 0.4%, 전년 동기보다 2.9% 증가했다. 세계 시장에서 독일의 수출이 계속 호조를 보이는 것은 물론, 독일 내에서 극심한 침체를 보이던 가계 소비와 설비투자 또한 되살아나는 조짐을 보이는 덕분이다.

독일의 올 1분기 GDP는 당초 경제 전문가들이 예상한 성장률(0.6%)보다는 다소 낮아도, 전년 동기 대비 성장률 수치로 봤을 때는 2000년 이후 최고치다.

이는 그동안 독일 경제를 견인해온 수출 뿐 아니라, 내수가 활성화하면서 나타난 결과라는 점에서 더더욱 기대를 모은다. 특히 설비투자가 큰 폭의 증가세를 나타내면서 오랫동안 기다려온 내수 회복의 기미가 완연해지고 있는 것.

미카엘 글로스 연방경제기술부 장관은 “긍정적인 경제 지표들로 호황의 분위기가 시간이 지날수록 확고해지고 있다”면서 “경기 상승세가 노동시장의 활성화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단지 이번 1분기의 성장률 수치가 기대에는 못 미친다는 지적도 있다. 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당초 0.6%의 실질 성장률을 예상했다. 하지만 3월 중 산업 생산 및 수출 실적이 예상 외로 감소하면서 성장률이 전망치보다 낮아진 것이다. 특히 수입이 크게 늘면서 수출의 효과를 깎아먹는 측면도 있다.

독일은 올 1분기에 2157억유로의 수출 실적을 올렸다. 수출은 전년 동기에 비해 16.3% 증가했으나 수입이 1759억유로로 전년 동기 대비 23.6%나 증가했다. 그 결과 무역수지 흑자는 전년 동기 대비 34억유로 감소한 398억유로를 기록했다.

성장률 외에도 경제의 긍정적 신호는 또 있다. 독일의 고질병 실업도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다. 독일 연방고용공사는 지난 5월의 실업자 수가 453만5000명으로, 전월 대비 25만5000명 줄어들었다고 발표했다. 지난 2월까지만 해도 500만 명이 넘던 독일의 실업자 수가 계절적 요인을 감안하더라도 큰 폭으로 감소한 셈이다. 실제 올 5월의 실업자 수 감소폭은 1990년 이후 월 감소폭으로는 최고치다.

이에 따라 실업률도 올 2월의 12.2%에서 5월에는 10.8%로 낮아졌다. 물론 노동시장이 본격적으로 회복된다고 보기에는 아직 미흡하지만 최근 독일 경제의 호조에 힘입어 노동시장에도 조금씩 훈풍이 불어오는 것만은 분명하다.

독일 6대 경제연구소의 하나로 손꼽히는 LFO도 “올해에 이어 내년과 내후년까지도 독일 경제가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독일의 6대 연구소 중 가장 비관적이던 LFO가 독일 경기를 가장 낙관하는 입장으로 돌아서 관심을 모은다.

경기 사이클 및 자본시장을 분석하는 팀을 이끄는 LFO의 겝하르트 플라이그 박사는 “독일 경제가 일단 경기 사이클 상 회복기에 접어든 것은 맞다”고 분석하면서 “경기가 바닥을 치고 2004년 말부터 회복세로 돌아섰고 올해의 호황이 적어도 내년, 내후년까지는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구조 개혁 등 넘어야 할 산 많다

하지만 독일 경제가 구조적 문제까지 모두 극복한 건 아니다. 경기가 좋아졌는데도 연간 경제성장률이 2%가 채 안 된다. LFO의 플라이그 박사는 독일 경제가 더 강한 성장을 보이지 못하고 발목이 묶여있는 주된 이유로 경직된 노동시장을 꼽았다. “노동시장의 진입과 퇴출이 어렵고 유연성이 떨어지면 새로운 일자리도, 새로운 기업도 생겨나기 힘들다. 독일 정부가 노동시장을 개혁하려 하지만 당장 크게 개선되기도 힘들 것이다. 10년 전에 비하면 많이 개선됐지만 아직도 충분치는 않다.”

말하자면 독일 경제는 경기 순환적 요인과 구조적 요인 중에서 경기 순환의 호황 국면으로 들어섰다. 구조적 개혁까지 병행될 경우 독일 경제가 날개를 달고 더 훨훨 날 수도 있다. 하지만 경기 호전이 오히려 구조 개혁의 추진에는 마이너스가 될 소지도 있다. 불황에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개혁해야 산다”고 한 목소리를 내던 사람들이 경기가 좋아지면서 각자 의견이 나눠지고 개혁이 지지부진해질 수 있기 때문.

독일의 경제지 <한델스블라트>도 “지금처럼 실업률이 지속적으로 감소할 경우, 현재 대연정 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노동시장 개혁정책(하르츠IV)의 전면 정비 계획도 설득력이 약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 5월 말 독일 대연정은 노동시장 개혁정책인 ‘하르츠 IV’의 문제점을 보완한 ‘하르츠 IV 지속발전법’을 내놓았다. 6월 초 연방 하원을 통과한 ‘하르츠 IV 지속발전법’은 총 비용을 예산에 책정된 범위 내로 동결하는 한편, 정부가 알선한 일자리를 거부하는 실업자에 대해서는 제재 조치를 강화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2006년 독일 연방 예산안에는 노동시장 대책으로 총 385억유로가 책정돼 있다. 이 가운데 실업수당 244억유로, 실업자 재교육 등 취업 지원 및 행정 비용 100억유로, 기초자치단체가 실업수당 수령자에게 지원하는 생활 지원비 보조 약 36억유로 등으로 쓰인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하르츠 IV의 수정법안을 내놓게 된 이유에 대해 “일자리를 거부하는 사람에 대해 제재를 가하는 것은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하면서 조만간 추가 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연정 파트너인 사민당부터 하르츠 IV의 근본적인 정비에 반대한다. 프란츠 뮌테페링 부총리 겸 노동사회부 장관은 “장기 실업자가 계속 국가 지원에만 의존하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하르츠 IV의 전면 재검토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독일 경제의 최대 숙제인 노동시장의 개혁은 대연정 구도 하에서 여전히 풀기 힘든 숙제로 남아있다.

호전 기미를 보이는 독일 경제에 또 다른 먹구름도 드리우고 있다. 독일 연방정부는 부가가치세를 인상해 예산 적자를 메우는 방안을 시행한다. 2007년부터 독일의 부가가치세가 종전의 16%에서 19%로, 3%포인트 인상된다.

페르 슈타인브뤽 연방재무장관은 기자회견에서 “경제가 좋아져 세수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데다가 2007년부터 부가가치세가 인상됨에 따라 올해는 약 81억유로, 내년에는 약 223억유로의 세금이 더 걷힐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슈타인브뤽 재무장관은 “올해 추가로 걷힐 것으로 예상되는 세수는 경기 회복에 따른 것으로 언제든 수치가 바뀔 가능성이 있다”면서 “구조적인 재정 적자를 개선하려는 노력도 계속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노동시장 및 연금 부문 지출이 늘어날 위험을 안고 있어 앞으로의 재정 상태를 낙관할 수만은 없다는 것.

하지만 세금을 더 걷어 재정 적자를 메우려는 방안은 이제 막 회복 기미를 보이는 독일 경제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 경기가 이제 조금 풀려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어볼까 생각하던 참인데 덜컥 부가가치세가 3%포인트 인상되면 이는 곧 공산품의 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내수에 부정적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회복 기미가 엿보이는 독일 경제가 강한 상승세를 계속 이어가려면 구조 개혁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래서 아직은 섣부르게 ‘독일 경제의 부활’을 노래하면서 샴페인을 터뜨리기 어려운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