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교외는 불타고, CAC 40은 치솟고?’ 파리 교외는 이슬람 및 아프리카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저소득층 거주지다. CAC 40은 프랑스 주식시장에서 상위 40개 대기업들로 구성된 주가지수를 말한다. 이는 평등주의를 지향하는 프랑스사회에서도 피하기 힘든 ‘부익부 빈익빈’의 현실을 보여준다.

 이슬람 및 아프리카 저소득층 이민 2세의 소요 사태가 3주간 프랑스 전역을 뒤흔들었다. 닫힌 기회, 실업과 인종 차별 등 비참한 현실에 폭력적 대응으로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이런 프랑스사회의 밑바닥과는 정반대편에 ‘그들만의 삶’이 있다.

 2005년 9월17일 프랑스에서 가장 부자인 베르나르 아르노 LVMH그룹 회장의 딸 델핀 아르노(30)의 결혼식이 프랑스 보르도 지방에서 거행됐다.   LVMH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루이 뷔통, 크리스찬 디올, 샴페인 모엣 샹동 등의 럭셔리 브랜드를 소유한 명품 그룹이다.

 이 결혼식에는 650명이 초대받았다.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생 장 밥티스트 성당에서 식이 거행됐다. 결혼식장은 그야말로 프랑스판 ‘별들의 전쟁’이었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부인 베르나데트 시라크 여사,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 겸 집권 여당 UMP(대중운동연합) 총재, 티에리 브르통 재경부장관, 르보 도뇌디외 드 바브르 문화부장관, 장 르네 푸르투 비방디 유니버셜그룹 회장 등 프랑스 정·재계의 거물 등이 대거 참석했다.  팝가수 엘튼 존, 샤넬의 수석디자이너 칼 라거펠트 등 문화계 VIP들의 면면도 보였다.

 웨딩드레스는 크리스찬 디올의 수석디자이너 존 갈리아노가 디자인했고, 결혼식이 끝나고 저녁에는 LVMH그룹이 소유한 포도밭 딸린 저택 샤토 뒤켐에서 만찬이 이어졌다.

 이 ‘세기의 결혼식’은 과거 귀족이나 왕가의 화려한 결혼식 그 이상이었다. 당시 주간지 <파리 마치>는 이 결혼식 사진을 대대적으로 보도해 판매 부수를 올렸다.

 평등주의를 지향하는 프랑스이지만, 이처럼 상류층의 생활은 보통 사람들로선 쳐다보기도 힘들 만큼 저 높은 곳에 가 있다.

 최근 프랑스 시사 주간지인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Le nouvel Observateur)는 40대 대기업 CEO들의 연봉을 공개하면서 이들을 ‘자본주의 신(新)귀족’이라고 규정했다. 일명 ‘아리스토캭’(aristocac). 귀족(aristocrate)과 대기업(CAC 40)의 합성어다.

 귀족 신분에 물려받은 재산이 많은 타고난 상류층 말고도, 최근 프랑스에서도 능력에 따라 많은 돈을 버는 ‘자본주의 귀족’들이 생겨난 것이다. 10년 전만 해도 프랑스 CEO들의 보수는 미국이나 영국에 비하면 그다지 높지 않았다. 평등주의 사고방식이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화가 진행되고, 능력대로 대접받는 영·미식 자본주의가 프랑스에도 확산되면서 이들 CEO의 연봉도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1998년 이후 CEO들의 보수는 215%가량 상승했다. 같은 기간 보통 근로자의 임금 인상률이 25%에 불과한 데 비하면, 엄청나게 격차가 벌어진 셈이다.

 지난 2004년 프랑스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번 CEO는 세계 1위의 화장품 그룹 로레알의 린제이 오웬 존스 회장이다. 연봉과 스톡옵션을 합해 연간 2263만576유로(약 283억원)를 벌었다. 그는 전문경영인이다.

 2위는 명품그룹 LVMH의 오너인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다. 1625만754유로(약 203억원)를 벌었다. 3위는 비방디 유니버셜의 장 르네 푸르투 회장. 1366만635유로(약 171억원)를 벌어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CAC 40의 CEO들은 하루 평균 1만5000유로(약 2000만원)씩 번 셈이다.

 이들의 수입을 놓고 <옵세르바퇴르>지는 “매년 로또에 당첨되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보통 사람들로서는 로또에 당첨되는 일확천금의 행운이 아니면 도저히 만져볼 수도 없는 돈을 매년 벌어들이는 ‘특별한 계층’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신귀족층을 구분짓는 생활 패턴과 사고방식도 있다.

 첫째, 이들에게는 국경이 없다. 사고방식도, 생활 반경도 그야말로 세계를 향해 열려 있다. 스스로를 프랑스인이나 유럽인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세계인으로 생각한다. <옵세르바퇴르>는 “자신들의 보수는 미국 CEO들과 비교하고, 직원들 월급은 중국 근로자 월급을 기준 삼는다”고 꼬집었다. 또 “이들은 프랑스인끼리 모여도 공식 언어가 영어”라고 비꼬았다.

 둘째, 생활 반경도 세계를 향해 있다. 오후에 영국 런던에서 애널리스트와의 모임에 참석하고, 저녁에는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에서 오페라를 감상하며, 다음날 아침에는 파리에서 회의를 주재한다.

 이들이 이용하는 공항도 파리 북쪽의 샤를드골 국제공항이 아니다. 파리에서 샤를드골공항 가는 길목에 있는 부르제공항을 애용한다. CAC 40의 기업은 모두 CEO 전용기를 갖고 있어 이 전용기는 부르제공항에서 뜨고 내린다. 가장 각광받는 전용기가 다소의 팰콘 900이다. 회사별로 적게는 40만유로(5억원)에서, 많게는 2000만유로(약 250억원)를 들여 전용기를 구입했다.

 이들의 라이프스타일도 최고급으로 치장돼 있다. 베르나르 아르노 LVMH그룹 회장은 한 벌에 5000유로(약 620만원)쯤 하는 디올 양복에 벨루티 신발을 신거나 최고급 럭셔리 브랜드 에르메스를 애용한다. 얼마 전에는 파리 7구에 1000㎡(약 303평)짜리 저택을 2000만유로(약 250억원) 주고 샀다. 은행가 다비드 드 로췰드도 미국식 정원이 딸린 아늑한 스타일의 새 집으로 최근 이사했다. 이들은 세계 주요 도시 곳곳에 저택을 갖고 있다. 파리에서도 상류층을 위한 고급 주택만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부동산이 있다.

 이들 신귀족층들의 여가생활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요트요, 항해다. 로레알그룹의 린제이 오웬 존스 회장은 800만유로(약 100억원)를 주고 32톤짜리 배를 구입했다. 상류층이 이용하는 고급 요트는 1주일 대여료만 24만 5000유로(약 3억원)로, 웬만한 아파트 한 채 값이다.

 그 밖에도 빼놓을 수 없는 취미가 최고급 와인을 생산하는 샤토의 구입이다. 유통그룹 PPR의 프랑수아 피노 회장은 샤토 라투르를 인수했다. PPR그룹은 프렝탕백화점, 서적과 멀티미디어 전문매장인 프낙, 럭셔리 브랜드 구치, 크리스티 경매 등을 소유하고, LVMH그룹과 양대 산맥을 이루는 프랑스의 명품 그룹이다.

 피노 회장과 경쟁 관계인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샤토 뒤켐과 샤토 슈발 블랑을 각각 8400만유로(약 1000억원)와 1억3000만유로(약 1600억원)에 인수했다.

 미술품 수집도 빼놓을 수 없는 이들의 고급 취미. PPR의 프랑수아 피노 회장은 프랑스에서 미술품 수집가로도 손꼽힌다. 파리 외곽에 현대미술관을 지어 그가 소장한 현대 미술품을 전시하려 했던 계획이 행정당국의 늑장으로 지연되자, 최근 피노 회장은 베니스의 그라시 궁전을 인수했다. 그곳에 미술관을 세우기 위해서다.

 신분이 무너진 사회지만 엄연히 다른 신분으로 존재하는 이들 ‘신귀족’에 대해 프랑스 내에서 비판도 만만치 않다. 리오넬 조스팽 전 총리는 최근 펴낸 책에서 “신귀족은 다른 사회 구성원들에게 끊임없이 희생을 요구하는 ‘국제적 특권계층’”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