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서스(LEXUS)’. 호화로움·사치 등을 뜻하는 독일어 ‘루크수스(Luxus)’가 어원인 이 단어는 잘 알려져 있듯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최고급 브랜드다.

 지난 1989년 미국 시장에 첫 선을 보이며 소형차 또는 대중차로 간주됐던 일본 자동차의 이미지를 일거에 ‘유러피언 럭셔리(European Luxury)’ 개념으로 바꿔놓은 이 차종은 유럽은 물론 아시아, 특히 한국에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다.

 미국 소비자조사 기관지인 <컨슈머 리포트>가 지난 1월 실시한 자동차 부문 연례 조사에서 렉서스는 신뢰도 1위에 올랐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의 지난 2월 한 달간 집계에서 렉서스는 470대를 판매한 BMW와 메르세데스벤츠(398대)에 이어 3위(366대)를 기록했다.

 도요타는 이런 해외에서의 여세를 몰아 지난해 8월 역(逆)코스로 일본 시장에 입성하는 모험에 나섰다. 굳이 ‘모험’으로 묘사하는 것은 일본 시장이 차종의 실용성을 중시하는데 일부 명차 선호층은 전통적인 구미 브랜드의 편애가 매우 강한 보수적인 시장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일본 소비자에게 고급차는 외제차, 일제차는 대중차라는 생각이 강하다. 렉서스의 일본 입성은 때문에 하나의 도전으로 받아들여졌다.

 도요타의 일본 자동차 시장 내 점유율은 45% 수준. 하지만 저출산에 따른 인구감소 때문에 자동차 시장 자체가 확대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결국 일본 시장 역시 앞으로는 고급차로 승부를 걸 수밖에 없다는 것이 렉서스의 일본 진출을 결정한 주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도요타는 ‘고전’중이다. 어쩌면 예상 이상이다. “생각했던 것만큼 팔리지 않는다. 주 타깃은 수입차 이용자인데 그들이 전혀 렉서스로 교체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지난 3월6일자 <도쿄신문>은 일본 중부 아이치(愛知)현 나고야(名古屋)의 렉서스 대리점의 한 간부의 하소연을 전했다. 요란한 선전을 기세로 렉서스 판매에 뛰어들었지만 결과는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이 대리점의 경우 한 달 평균 판매량이 목표치로부터 5~6대 꼴로 미달하는 추이를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은 도요타의 ‘아성’격인 나고야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일본자동차판매연합회 집계를 보면 GS, IS, SC 등 렉서스 3종의 전국 총 판매대수는 지난 2월까지 누계로 1만3622대. 목표 달성률 80%. 한 달 목표인 3000대를 넘은 것은 지난 11월뿐이었다.

 고전하는 이유는 뭘까. 렉서스는 첫 미국 런칭 때 승차감이 좋고 정숙하다는 평판을 얻었다. 차량 자체의 완성도도 뛰어났지만 첫 모델인 LS400의 광고 캠페인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정설이다. 광고는 자동차 후드 위에 15개의 샴페인 잔을 5층 피라미드로 쌓은 뒤 공회전 속도측정기 위에서 차가 시속 225km로 달리는 설정. 하지만 이들 잔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렉서스, 끊임없는 완벽 추구’라는 인상적 슬로건은 소비자의  뇌리에 각인됐다.

 일본에서도 지난해 8월 말 런칭에 앞서 열린 런칭쇼에서 소비자들로부터 “외제차에 비해 손색이 없다”는 호평을 받았다. 특히 외제 명차를 굴려온 중년 부부들의 발길이 이어졌으며 찬사가 쏟아졌다. 8월 말 도요타는 전국 140개 대리점을 통해 대당 최소 400만~680만엔인 신형 ‘렉서스 쇼와(昭和)’(GS 430과 SC 430) 두 모델을 선보였다. ‘렉서스’라는 브랜드 인지도는 이미 출중한 상황이고 언론 보도 등에서의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난 지금, 전국 대리점의 분위기는 매우 침체돼 있다고 한다. 가장 큰 이유로 꼽히는 것이 렉서스 최고의 세단으로 선전돼 온 LS(셀시오의 후속 종)의 ‘부재’. 렉서스의 야심작으로 기대되는 이 모델은 올 가을 이후에 출시된다. 명차를 선호하는 층은 그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고 추측되는 것이다.

 오카모토 가쓰오(岡本一雄) 도요타 부사장이 대리점 측에 “LS가 나올 때까지 참아 달라”고 되풀이하는 것도 LS의 출시와 함께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수입 명차가 렉서스 효과 봐

 하지만 현재의 상황이 도요타에게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렉서스 런칭 효과를 오히려 수입 명차가 구가하고 있는 까닭이다.

 메르세데스벤츠의 경우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매출이 들쭉날쭉한 형편이었지만 렉서스 출시 이후 고급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지자 8월 이후 급신장세로 전환했다. 기세를 업고 10월에는 대당 1000만엔을 호가하는 신형 S클래스, 지난 1월에는 300만엔 안팎의 B클래스 등 신형차를 잇따라 투입했다. 지난해 12월 이후는 판매율이 전년 동월 대비 두 자릿수 신장했다. 2월 신장률은 40%를 웃돈 것으로 추정된다.

 BMW도 지난해 하반기 이후 약진하고 있으며 매달 벤츠를 크게 웃도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 반면 푸조와 폴크스바겐 등은 상대적으로 부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뚜렷했다. 지난해 일본의 수입차 총 판매대수는 25만대. 1년 전에 비해 5000대 가량 늘었으며 ‘렉서스 효과’가 일본 소비자들의 명차 욕구를 자극할 경우 수입차 시장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커질 가능성이 있다.  실제 수입차 업자들은 올해 전년 대비 20% 이상 신장률을 기대하고 있다. 현 단계에서 수입차 업자들이 가장 경계하는 것은 올 가을 렉서스 LS의 출시뿐이다.

 하지만 렉서스의 경쟁 상대는 수입차에만 한정될 것 같지 않다. 혼다와 닛산 등 일본 자동차 메이커들이 해외용으로 차별화했던 고가 브랜드를 내수 시장으로 돌리는 계획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혼다차는 오는 2008년부터 고급 브랜드인 ‘어큐라’를 일본에 선보인다. 닛산차 역시 2008년 이후 ‘인피니티’를 출시한다. 어큐라와 인피니티는 렉서스와 함께 북미 시장에서 성공한 일본차 3대 프리미엄 브랜드로 꼽힌다. 이들 차종의 출시가 도요타에게는 새로운 도전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도요타는 오는 7월부터 현재 140개 대리점을 156개로, 내년 이후에는 180개로 늘린다. 도쿄의 19개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16개 대리점이 몰려 있는 아이치현에서는 대리점간 무한 경쟁이 불붙어 일부 대리점은 자동차 영업에서는 이례적인 영업사원들의 가정방문 판매까지 시작됐다.

 각 대리점에 실망감이 퍼져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올 가을 렉서스 LS의 출시를 계기로 상황이 바뀔 것이라는 기대는 여전히 만만치 않다. 특히 최근 일본 국회에서 일본 사회의 ‘양극화’가 도마에 올랐던 것처럼 이른바 ‘롯폰기족(六本木族)’ 등 새롭게 출현하고 있는 ‘신흥 부유층’이 명차의 잠재 고객으로 편입하고 있다. 다양한 선호도 조사에서 벤처기업가나 금융투자가 등 신세대 부유층들이 자국산 명차인 렉서스에 상당한 호감을 표시하고 있다.

 특히 대리점들은 내년부터 정년퇴직하기 시작하는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團塊)세대(56~59세)에게 내심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니혼게이자이(日經)신문>이 지난해 7월 단카이세대 남성 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를 보자. 이들 세대는 퇴직하게 되면 현직보다 70% 늘어난 156만2000엔을 한 달 용돈으로 지출하겠다고 답했다. 두둑한 연금을 받기 때문이다. 몇 년 안에 구입할 계획인 내구소비재로 자동차를 가장 많이 꼽았다.

 북미 시장을 휩쓴 렉서스 선풍이 과연 일본 내수 시장에서도 재연될 것인가. 터줏대감인 외제 프리미엄 차와의 경쟁, 후발주자로 진입을 선언한 토종 고급차와의 경쟁에서 렉서스가 이름값을 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