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게 잘 나가도 걸림돌은 있다. 러시아가 확고한 경제성장세에다 화려한 거시경제 지표를 보유하고서도 남다른 고민에 휩싸여 있다. 인플레이션이란 최대 복병 때문이다. 러시아는 지난 2001년부터 5년 연속 인플레이션 율이 10% 이상을 보였다.

 러시아는 이머징 마켓(신흥 시장)이자 브릭스(BRIC’s) 국가로 국제사회의 투자 열기가 서서히 달아오르는 등 전체적인 분위기는 좋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율에 경제 지표가 일그러졌다. 러시아의 올 경제 최대 현안은 ‘인플레 잡기’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고유가로 인한 오일 달러 유입으로 거시경제 지표는 성장 일색이지만 인플레이션 율에 거듭 불만을 표시해왔다. 국민들도 경제성장 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불만을 내보이고 있다. 국민들은 거시 지표보다 피부에 와 닿는 소비자물가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3월6일 크렘린궁에서 총리와 장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국정회의에서 인플레이션을 거론하며 내각을 질책했다. “말만 무성하고 기대해온 결과는 전혀 없다”며 “지난 2개월 동안 인플레이션 율이 4%에 이르러 현 추세라면 올해 예정치인 8.5%를 넘어설 것 아닌가”라고. 일순간 미하일 프라드코프 총리를 비롯한 경제 각료들의 분위기가 굳었다.

 크렘린궁 회의 사흘 뒤, 이번에는 프라드코프 총리가 장관들을 혹독하게 질타했다. 내각회의를 소집한 그는 경제부처 장관들에게 화풀이를 했다. 알렉세이 쿠드린 재무장관, 게르만 그레프 경제개발통상부 장관을 비롯 중앙은행장, 반독점청장 등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무능을 탓했다. “물가를 잡지 못할 경우, 사임을 각오하라”며 경고했다.

 프라드코프 총리는 “정부가 목표로 한 인플레이션 율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각료들의 능력이 부족한 탓”이라며 더욱 다그쳤다. 또, 각료들을 바라보면서 “물가 억제 정책이 잘못됐다. 아주 잘못하고 있다”며 “더구나 경제부처에 많은 권한까지 위임해줬는데도 일처리가 제대로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일간지 <이즈베스티야>는 3월10일 ‘장관 없는 총리’라는 제목으로 정부의 인플레이션 위기 상황을 보도했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의견 충돌 등 총리와 경제부처 장관들의 설전을 다뤘다. 장관과 경제부처 장관의 설전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번 각료회의에서는 설전보다도 갈등 수준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프라드코프 총리는 그동안 장관들과 경제 문제로 서로 면전에서 잦은 설전을 벌였었다. 하지만 올해는 설전의 강도가 더 높았다. 이번에는 아주 장관들의 목을 자를 작정을 한 듯 한 발언을 쏟아냈다. 자신도 사임을 각오하고 장관들을 질책하고 나선 것이라는 게 주위의 반응이다.

 지난해 6월에도 총리와 장관은 ‘국내총생산(GDP) 두 배 향상’ 건을 두고 한바탕 입씨름을 벌였다. 당시도 프라드코프 총리와 그레프 장관이 맞섰다.  푸틴 대통령이 2003년 5월, 2010년까지 GDP를 두 배로 늘리겠다고 한 공약 때문에 불거졌다. 프라드코프 총리가 “2010년까지 목표 달성이 가능하냐”고 묻자, 그레프 장관은 “실현성이 거의 없다”고 답했다. 화가 난 프라드코프 총리가 “그 부서는 돈만 갖다 쓴다”며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보라”고 그레프 장관을 질책했다. 그레프 장관은 “노력은 하겠지만 타 부처들이 책임감을 갖고 공조할지 모르겠다”며 총리에 맞섰다. 게다가 그는 “특히 GDP를 두 배로 올리는 일과 같은 양적인 지표에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질적 성장을 위해 힘써야 한다”고 본인의 경제 소신을 밝히며 총리에 맞섰다.

 최근 수년 동안 고유가(高油價)로 경제 활황을 맛봤던 러시아는 인플레이션과 루블화 가치 상승이라는 이면(裏面)에 부닥쳐 경제성장이 막다른 길목에 들어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알렉산드르 주코프 러시아 부총리는 “고유가 때문에 높은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루블화가 절상되면서 러시아 상품 경쟁력이 하락했다”며 “유가 상승이 러시아 경제에 결코 유익하게 작용한 것만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두 가지 문제를 금융정책을 통해 해결하기는 불가능하다는 비관론과 함께 소비가 상승하고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현 상황이 러시아 경제성장을 위협하는 주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쿠드린 재무장관은 자본이 해외로 유출되는 등 러시아 투자 환경이 악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취약한 사법제도, 관료주의 장벽, 부패, 조세행정의 불투명성 때문에 자본의 해외 유출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쿠드린 장관은 매년 1.5~2%씩 인플레이션 율을 낮춰 오는 2008년에는 4~5%에 이르도록 할 계획이며 국영기업이 독점하고 있는 전기와 가스, 철도 분야에서 인플레이션 율을 전체 인플레이션 율보다 낮게 책정해 효과적인 경제안정 수단으로 활용할 뜻을 비쳤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대책은 뾰족한 게 없어 보인다. 특히 제조업 분야의 취약한 구조 때문에 인플레이션을 잡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대두되고 있다. 또 중앙은행이 달러 매입을 위해 루블화를 사용하고 있어 통화가 팽창하는 등 인플레이션 압력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게다가 러시아는 채권 시장이 발달돼 있지 않아 통상적으로 통화발생을 흡수할 수 있도록 통화안정증권 등 채권을 발행하는 선진국과 달리 이를 규제할 수 있는 시스템 부재로 인플레이션을 막기는 역부족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러시아 정부는 올 GDP성장률을 6.2%, 인플레이션 율을 7~8.5%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 키엘(Kiel) 세계경제연구소는 러시아의 GDP는 5.7%, 인플레이션 율은 12.5%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올해 러시아 경제는 인플레이션에 얼마나 발목을 잡힐 지가 최대 관심사가 되고 있다. 러시아의 인플레이션 율은 지난 1월 4.1%, 2월 1.7%, 3월에도 1%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돼 1분기에 이미 5.2%에 이를 전망이다. 경제부처는 연말까지 정부 목표치 달성이 어렵다는 비관적인 전망과 함께 8~9%로 상향 조정을 하는 추세다. 어떻게든 한자리수로 묶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주코프 부총리 단일 체제에서 메드베데프 제1부총리를 발탁하고 이바노프 부총리를 추가로 임명하면서 내각에 변화를 준 러시아 정부가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주력하고 있지만, 목표로 내세운 인플레이션 율을 달성할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러시아의 지난해 무역규모는 3704억달러. 전년대비 32% 증가했다. 수출은 2453억달러, 수입은 1251억 달러였다. 경상수지는 858억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2004년에 비해 무려 48% 증가한 수치다. 석유·가스가 전체 수출의 61%를 차지했다. GDP성장률은 6.4%로 지난해보다 0.8% 하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