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이 1950년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체결된 슈만 플랜(Schuman Plan)이라는 이름의 석탄철강공동체에서 출발해서 오늘의 화폐 단일화와 공동체 정부 구성에까지 성공한 것을 중국은 염두에 두고 있다.

위안화 통용되는

동아시아 공동체 꿈꾼다

 “적의 포화를 뚫고…전진! 전진! 전진!”      중국의 국가 끝머리는 박력이 넘친다. 중국은 2010년 들어서도 전진을 멈추지 않고 있다. 우선 두 가지가 크게 달라졌다. 하나는 아세안(ASEAN)과 FTA(자유무역협정)를 체결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체 GDP(국내총생산) 규모가 일본을 넘어선 것이다. 중국과 아세안의 FTA가 1월1일 발효됨으로써 세계에는 총인구 19억 명의 거대 경제 공동체가 탄생했고, 중국의 GDP 규모가 일본보다 커짐으로써 중국은 미국 다음인 세계 2위의 경제 규모를 가진 경제대국이 됐다. 

우리가 세종시 문제를 놓고 2009년 연말과 2010년 연시를 정신없이 보내는 사이에 발효된 중국과 아세안 10개국의 FTA로 총인구 19억 명에 총GDP 6조달러, 상호무역거래액 2천억달러의 세계 최대 시장이 탄생했다. 이미 새해 들면서 중국의 값싼 방직품과 석유화학제품·신발·전자제품·강철·자동차부품 등이 아세안 국가로 무관세로 흘러들어가기 시작했고, 값싼 동남아의 농산물과 과일·공업원료·전자부품 등이 역시 무관세로 중국 시장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중국과 아세안은 앞으로 5년 후인 2015년까지 모두 8000가지의 상품을 상호 무관세로 사고판다는 일정을 짜놓았다.

중국과 동남아의 이른바 ‘10+1’ 자유무역지대는 중국이 16년 전인 1994년부터 공을 들인 결과물이다. 중국은 1994년에는 아세안과 ‘특별한 대화 동반자’ 관계를 맺었고, 1995년에는 ARF(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 가입했다. 중국과 아세안은 1월7일 중국남부 광서장족 자치구의 중심도시 난닝(南寧)에서 중국에 진출한 글로벌 500대 기업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기념식을 가졌다. 기념식에서는 2007년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에릭 매스킨(Eric Maskin)이 참석한 가운데 ‘상생과 번영의 재창조’라는 제목의 포럼이 열렸다. 중국은 앞으로 경제 발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남부의 윈난(雲南) 성과 광서장족자치구를 아세안과의 경제 교류 중심지로 개발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아세안과 자유무역지대를 발효시킴으로써 중국이 그리고 있는 커다란 그림은 ‘동아시아 공동체의 일체화’다. 유럽연합이 1950년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체결된 슈만 플랜(Schuman Plan)이라는 이름의 석탄철강공동체에서 출발해서 오늘의 화폐 단일화와 공동체 정부 구성에까지 성공한 것을 중국은 염두에 두고 있다. 위안화가 통용되는 동아시아 공동체, 중국이 중심이 되어 움직여나가는 세계 최대 규모의 시장을 중국은 그리고 있다.

물론 반발이 없는 것은 아니다. 1월1일자로 FTA를 발효시키기는 했지만,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등 동남아 강국들의 표정은 떨떠름하다. 중국과 자유무역지대를 구성하기는 했지만 중국이 독주하는 모습을 보이면 언제든 시비를 붙인다는 자세다. 만약 중국이 동남아의 자원을 약탈해가는 약탈자의 행동을 보여준다면 언제든 견제하고 나설 태세다. 동남아 각국은 급격한 경제 발전으로 자원이 원래 넉넉지 못하던 중국이 지난 30년간 급격한 경제 성장을 하면서 자원 고갈 상태에 빠져들고 있고, 환경을 희생시키면서 거의 재앙적인 국면으로 가고 있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중국이 자신들의 고질병이 되어버린 두 가지 문제의 해결을 위해 동남아를 이용하거나, 환경 파괴를 동남아로 수출하려 할 경우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다짐을 단단히 하고 있다.

이와 관련 미국 예일대학의 화교 학자 에이미 추아(Amy Chua·蔡美麗)는 <불타는 세계(World on Fire)>라는 저서에서 중국이 동남아에 잘못 접근할 경우 “동남아에서 언제든 과거의 반중(反中)감정이 되살아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전 세계 화교들이 보는 시사주간 <아주주간>은 전했다.

중국의 국가 전체 GDP는 2009년 12월에 일본의 GDP를 초과했거나, 그렇지 않다면 올해 중으로 일본의 GDP 규모를 추월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전 세계 GDP에서 중국과 일본의 GDP가 차지하는 비율은 2008년 말 IMF 추산으로 중국이 8%에 조금 못 미치고, 일본은 8%를 조금 넘어선 수준이었다. 그랬다가 중국이 작년에 이른바 ‘보팔(保八; 8% 이상의 성장)’에 성공한 것으로 발표됨에 따라 작년 12월쯤에 중국의 전체 GDP가 일본의 규모를 추월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물론 환율 절상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달러화로 계산한 중국의 GDP가 과연 일본의 규모를 넘어섰느냐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지만, 중국이 올해 9%의 성장을 하고, 일본은 마이너스 3~4%의 성장을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최소한 올해 중으로는 중국 GDP가 일본 GDP를 넘어설 것이 분명한 것으로 일본 경제계에서도 시인하고 있다.

물론 중국의 전체 GDP가 일본의 규모를 넘어선다고 중국이 일본을 능가하는 경제강국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중국 측도 인정하고 있다. 전 세계 화교들이 보는 <아주주간>은 이에 대해 “중국이 일본을 능가하는 경제대국이 되는 것이지, 일본을 능가하는 경제강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2008년 말 현재 중국의 1인당 GDP는 3259달러였고, 일본의 1인당 GDP는 3만8457달러, 미국은 4만7439달러였다. 전체 규모가 일본을 추월했다고 해도, 1인당 GDP를 비교해보면 중국은 일본의 12분의 1, 미국의 15분의 1에 불과하기 때문에 중국도 차마 자신들이 일본을 넘어서서 미국을 위협하는 경제강국이 되고있다는 말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앞으로의 전망에서도 중국의 표정은 밝지 않은 쪽이다. 우선 인구로 보아 2008년 말 현재 13억3000만 명에 이른 중국의 거대한 인구는 2033년이면 15억 명으로 불어나고, 거기에다가 빠른 노령화가 진행 중이어서 2050년 중국의 미래상은 ‘아직 부자가 되지 못했는데 인민들은 이미 늙어버린 나라(國未富 人已老)’가 되어버리는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본은 부자가 된 뒤에 인구의 노령화가 진행됐지만, 중국은 부자가 되기도 전에 인구는 노령화 되는 길을 걷고 있는 것으로 중국 정부도 판단하고 있다.

인구의 노령화보다 더한 걱정은 중국이 그동안 급격한 경제 성장을 해오기는 했지만 대부분 후발효과에 따른 것이고, 다른 나라의 기술을 도입해서 이룩한 것이지 중국 브랜드의 기술 혁신은 지금까지 별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후진타오 국가주석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의 당과 정부도 이미 오래전부터 “지속가능한 성장(可持續成長)”을 외쳐오고 있던 터였다.

그러나 우리가 잘 봐야하는 점은, 남으로부터 좋은 말 듣기 좋아하고, 쯔(面子·체면)를 실력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중국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제점을 파악하는 점에서 점점 세련미를 띠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2009년에 들어서면서 미국과 유럽 쪽에서 “중국이 미국과 함께 세계를 움직이는 G2국가가 됐다”는 말이 나오자 원자바오 총리가 나서서 “중국이 G2라는 말은 옳지 않으며 잘못된 말(錯誤的)”이라고 분명하게 선을 긋고 나섰다. 미국과 유럽 사람들이 중국을 보고 G2라는 말을 하는 진정한 의미는 실제로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중국의 빠른 발전을 경계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간파한 원자바오 총리가 한마디하고 나선 것이었다.

아직 내부 실력 면에서 경제강국은 아니지만 경제대국이 되어가고 있는 중국이 자신을 보는 눈까지 세련되어지는 것을 보고 있자면, 한국의 문제가 무엇인지 추출이 가능하다. 중국인들에게 한국인들의 특성이 무엇인가를 물어보면 대개는 “총명한 점”이라고 말한다.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물어보면 “지나치게 총명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들어보기 쉬운 말은 아니지만 한국인의 문제점, 한국인의 결점을 물어보면 한참을 끙끙거리다가 “소국적(小局的)인 점”이라는 말을 내놓는다. 총명하기는 하지만 국면을 크게 보지 못하고 작게 보는 결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인들은 똑똑해서 남한과 북한, 그리고 연변한국까지 세 개의 나라를 만들어놓지 않았느냐, 우리 중국인들은 좀 모자라서 중국 하나의 나라밖에 못 만들어놓았다”며 웃는다.

2009년 말과 2010년 사이에 한국은 세종시 문제를 놓고 여겲芟?나뉘어 ‘운명을 건 일전’을 벌이는 동안 중국은 아세안과의 FTA를 발족시키고, 일본의 GDP 규모를 능가하는 경제대국이 되는 과정에서 방법론과 노선을 놓고 내부 갈등을 외부로 노출하지 않았다. 우리가 한·미 FTA를 놓고 내부 의견이 갈라진 점을 외부에 노출한 그런 모습을 중국은 보여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한국이 중국이 갖고 있지 못한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일은 없겠지만, 최소한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운명을 걸고 일전을 벌여야 할’ 의제 설정만큼은 잘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 추출이 가능한 것이다. 앞으로 벌일 한국과 중국의 경제 레이스에는 그런 정치문화까지도 영향을 주는 ‘총력전(Total War)’이 될 것이기 때문에 한국과 중국의 정치와 경제의 함수관계는 2010년에도 계속 국제 경제계의 관찰 대상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