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마니 입은 채 애플 노트북으로 정보 검색…벤츠 S·아우디 A8 타고 드라이브 즐긴다
중국에서 부자들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 이들은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까.   미국이라면 부자들에 대해 알고 싶으면 <포브스>를 들춰보면 될 것이다. 그럼, 중국에서는? 중국에는 ‘후룬 바이푸(胡潤百富)’라는 인터넷 웹 사이트가 있다. 상하이에서 활동하는 영국인 회계사 루퍼트 후거워프(Rupert Hoogewerf)가 만드는 웹사이트로, 2005년 문을 연 이래 중국 부자들에 대한 권위 있는 리스트와 자료를 발표해서 자리를 잡았다. 이제는 중국 부자들에 대한 이야기라면 후거워프가 이 웹사이트에 매년 발표하는 ‘후룬 바이푸방(胡潤百富榜)’을 인용해야 이야기가 되게 됐다. ‘후룬(胡潤)’은 후거워프의 중국어 이름으로, 후거워프를 ‘후’로 줄이고, 루퍼트를 ‘룬’으로 줄여 음역해서 만든 이름이다.

 후거워프는 올해 만 40세가 되는 인물로, 룩셈부르크에서 출생한 영국인이다. 런던대학을 졸업하고, 회계사가 된 뒤에 회계법인 아서앤더슨 상하이사무소에서 일하면서 1999년 중국 잡지와 신문 100여 가지를 취합해서 처음으로 중국 부자 리스트를 발표, 관심을 모았다. 본업보다 취미로 시작한 일로 더 유명해져, 2001년에는 앤더슨을 떠나 <포브스>의 ‘중국 수석연구원’ 자리를 얻었다. 2005년부터는 <포브스> 수석연구원 자리도 그만 두고, 중국 부자들의 리스트 발표와 중국 부자들을 동원하는 각종 이벤트 행사를 전업으로 하고 있다.

 루퍼트 후거워프는 지난해 4월15일 ‘후룬의 재부보고(財富報告)’란 리포트를 발표했다. 중국의 온·오프라인 자료를 모두 동원해서 “개인 소유 기업의  자산과 개인 소유 부동산을 포함해서 1000만위안 이상의 재산을 가진 개인들의 숫자가 중국 인구 13억 명 가운데 82만5000명이라고 발표했다. 1억위안 이상 가진 부호들은 5만1000명 정도 된다고 했다.

1000만위안을 단순 환율로 계산하면 우리 돈 18억원이지만, <이코노미스트>의 2008년 빅맥지수가 한국 3200원 대 중국 12.5위안이고, 현재 환율이 1위안에 180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구매력 기준으로는 우리 돈 25억원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중국 전역에 우리 돈 25억원 이상의 재산을 가진 개인들이 82만5000명 정도 있고, 이 가운데 250억원 이상의 재산을 가진 개인들이 5만1000명 정도 된다고 보면 된다. 중국에서는 이들을 각각 ‘천만 부호(千萬富豪)’, ‘억만 부호(億萬富豪)’라고 부른다.

 이들 중국 부자들은 어떤 생활을 즐기고 있을까. 후거워프는 지난해 4월부터 11월까지 천만 부호 가운데 383명을 인터뷰한 조사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중국 부자들이 자신들이 번 돈으로 즐기고 있는 레저생활은 여행, 골프, 수영, 차 마시기, 독서, 가사 돕기, 드라이브, 사우나, 가라오케, 낚시, 술 마시기, 발마사지, 테니스, 시거 피우기 등 순이었다.

 우선 여행을 보면, 중국 부자들은 연평균 16일의 휴가를 즐기며, 부자들의 중국 바깥 출국의 3분의 2가 레저 목적의 여행을 위한 것이었다. 여행 빈도는 1년 전에 비해 40%가 늘어났다. 중국 부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여행 목적지는 미국·프랑스·호주·일본·싱가포르·이탈리아·하와이·영국·두바이·캐나다의 순이었다. 국내 여행지로는 하이난 남쪽의 싼야로 ‘중국의 하와이’ 라는 별명이 있는 곳이고, 이어서 홍콩·윈난·상하이·베이징·티베트 순이었다. 일본은 중국인들에게 여행 목적의 비자를 면제해주기로 함에 따라 순위가 뛰어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여행할 때 중국인들이 가장 즐겨 타는 항공편은 중국국제항공(China Air)이고, 숙박 호텔은 샹그릴라·하얏트·힐튼 순이었다. 중국 부자들이 별장을 가장 많이 소유하고 있는 지역은 하이난의 싼야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부자들이 여행 다음으로 즐기는 레저는 골프다. 중국 천만 부호들 가운데 40%, 억만 부호들 가운데는 50% 이상이 골프를 즐기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평균 핸디는 아직 낮은 수준이어서 핸디 26(98타)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최고로 치는 골프장은 홍콩 부근 선전의 미션 힐스(중국어명 觀瀾湖GC)로, 세계 최대의 216개 홀을 자랑하는 클럽이다. 타이거 우즈, 올라사발 등 세계 유명 골퍼들이 18홀씩 설계했거나 이름을 빌려주었다는 소문이 있다. 코스 이름 자체가 설계한 골퍼 이름을 따서 잭 니클라우스 코스, 그렉 노먼 코스, 애니카 소렌스탐 코스 등으로 붙여져 있다. 워낙 커서 클럽하우스만 4개이며, 2004년에 미국 파인허스트 리조트를 제치고 세계 최대 골프장으로 올라섰다. 클럽하우스에서 클럽하우스로 이동하는 데만 버스로 20분씩 걸리기 때문에 지정 클럽하우스를 정확히 알고 가야하며, 캐디들 숫자만 3000명으로, 골퍼 1명에 캐디 1명씩 따라 붙는다. 부자들 가운데서는 베이징의 부자들이 골프를 가장 좋아하는데, 베이징의 부자들이 최고로 치는 베이징의 골프장은 만리장성 근처의 통칭 화빈골프장이다. 중국 부자들은 상하이 인근 골프장으로는 위산과 톰슨클럽을 가장 높이 평가한다.

중국 부자들이 비즈니스용으로 타고 다니는 승용차로는 벤츠S가 가장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고, 그 다음은 아우디 A8이다. 벤츠는 중국어로 번츠(奔馳; 힘차게 달린다는 뜻)로 음역돼 더욱 인기이고, 아우디는 로고가 네 개의 동그라미(동그라미는 돈을 상징)가 겹쳐져 있어 인기를 더하고 있다. 미국 승용차 뷰익은 비에커(別克)이라는 이름으로 내놓았으나, ‘손님을 거부한다’는 뜻의 ‘비에커(別客)’와 발음이 같다는 점에서 중국 부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천만 부호가 아닌 억만 부호들은 벤츠S보다는 벤츠E를 더 선호하고, 비즈니스용이 아니라 자가운전을 해서 몰고 다니는 차로는 벤틀리를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벤틀리는 중국어로 빈리(賓利; 타는 손님에게 이로운 일이 있다는 뜻)로 음역돼 더욱 사랑을 받고 있다. 중국 부자들은 1인 평균 3.8대의 승용차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차 뷰익의 비극은 중국 시장에 승용차를 내놓을 때 브랜드의 중국어 음역에 얼마나 신경 써야 하는가를 말해준다. 우리 현대자동차의 경우 아반테를 위에둥(躍動; 약동한다는 뜻)이라는 이름으로 내놓아 중국 일반인들을 상대로 대박을 쳤다. 물론 배기량 1600㏄로 경제성도 인정받고, 중국 정부의 보조금 정책과도 맞아 떨어진 점이 크게 작용했지만, 브랜드 ‘위에둥’이 주는 활기찬 느낌이 치솟는 판매량을 가속시켜주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후거워프가 표본조사한 결과 중국의 천만 부호들의 평균연령은 41세, 승용차 평균 3대, 고급 손목시계 4.4개, 보석류 수집을 선호하며, 중국 고대의 붓글씨와 그림에도 관심이 많고, 현대 예술품 수집과 쇼핑을 즐기고, 3분의 1 정도는 술을 마시지 않으며, 절반 정도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부동산 투자도 즐기고, 70%는 정기 건강진단을 받고 있고, 건강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억만 부호들의 평균연령은 43세로 천만 부호들보다 조금 높고, 남성의 비율이 82%, 연평균 4회 정도 레저여행을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양복으로는 아르마니를 좋아하며 버버리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석은 까르띠에 브랜드가 단연 인기인 것으로 나타났다.

 루퍼트 후거워프의 조사를 보면 우리 제품들은 아직 중국 부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트북조차도 중국 부자들은 애플사의 노트북을 갖고 다니며, 휴대전화는 베르투(Vertu), 가장 즐겨 차는 시계는 파텍 필리페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경제계는 이들 중국 부자들의 기호의 변화를 잘 관찰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들 중국 부자들이 중국 전체의 소비생활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 범람하는 가짜조차도 이들 중국 부자들이 선호하는 브랜드를 가짜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