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형 화랑들 줄도산 ‘썰렁’

중국 베이징 시내 중심지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다산쯔(大山子)에는 ‘798’이라 불리는 예술지구가 있다. 1950년대에 동독 건축가들에 의해 지어져 원래 군수 공장 지대였던 곳이다. 이 구역은 창조와 전시의 새로운 독립적인 장소를 구축하기 위해 문화계의 종사자들과 예술가들에 의해 새롭게 변모됐고, 중국 특유의 사회적 분위기와 옛 동독 스타일의 육중한 시멘트 건물과 세련된 현대적 스타일의 갤러리가 만나 묘한 조화를 이루며 이색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구역이다. 약 10만 평방미터에 이르는 넓은 구역에 수백 개의 갤러리와 카페·아트숍 등이 모여 있는 곳으로 자금성·만리장성 등 전통유산과 함께 현대적 자랑거리로 외국인들에게 내세우는 명소가 됐다. 이곳은 중국 현대미술의 아방가르드의 성격을 가진 장소이자 동시에 베이징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에 영향을 미치는 영향력 있는 지역이 됐다.

최근 몇 년간 미국·유럽 등지의 유명 갤러리들이 앞 다퉈 798 지역에 갤러리를 열었다. 일본의 동경화랑을 시작으로 스위스 자본의 UCCA·프랑스·이탈리아·영국·독일·오스트레일리아·네덜란드·덴마크·대만·홍콩·한국을 포함한 각국의 갤러리들이 진출한 것.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많은 화랑들이 도산하거나 폐업했다.

1월21일 중국 현대미술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798 예술지구에는 신 중국 예술의 혁신과 창조의 상징의 모습은 오간 데 없고, 글로벌 금융위기의 한파로 인해 여전히 한기가 감돌았다. 관광객들로 보이는 몇몇 무리의 사람들과 학생들만 보일 뿐 실질 구매자의 발길은 끊긴 듯 했다. 생존상황은 더 열악해져 남아 있는 화랑들의 운영상황 역시 낙관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미국·유럽 대형 화랑들 “중국 부유층 잡아라”

한 갤러리에 다른 갤러리들보다 유독 많은 작품집에서부터 다양한 예술 및 미술 관련 잡지들이 비치돼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잡지의 종류와 성격이 다양하다 못해 참 풍부하다고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중 눈을 사로잡은 것은 <아트 인베스트먼트(Art Investment)> 와 <아트 매니지먼트 & 컨설팅(Art Management & Consulting)>이라는 잡지였다. 예술에 밝고 돈에도 밝다는 중국 사람들의 근성을 단번에 잘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미술경제 평론가인 성지연씨는 “기존에 있는 갤러리 위치와 전시 장소를 알려주는 단순한 정보 수준의 잡지가 아닌 미술 투자 전문 잡지를 발간한다면 국민들의 미술 시장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더욱더 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의 거대 상업 화랑중의 하나인 PACE 갤러리에서 중국 블루칩 작가들 중 한 명인 장샤오강(張曉剛·Zhang Xiaogang)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미국의 대형 화랑이 솔선해서 중국의 작가를 키워내는 것은 중국의 특권층 내지는 부유층을 향한 적극적인 프로모션인 것이다. 유럽도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선 양후동(Yang Fu Dong)을 최초로 카셀 도쿠멘타 및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 영국 리버풀 비엔날레 등에 초청해 중국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798 예술지구 내 UCCA(ULLENS CENTER FOR CONTEMPORARY ART)에서는 양후동의 설치작품이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다. 수십 대의 극장용 영사기가 각각의 흰색 스크린에 흑백의 전형적인 느와르 장르의 영화를 쏟아내고 있었다. 수십 대의 촬영기 돌아가는 소리는 명절, 방앗간에서 떡을 찌는 소리와도 같았다. 어둠 속의 밝은 영상 스크럼은 떡이 되어가는 수증기 연기와도 흡사했다. 미술 평론가 장승현씨는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방식의 한 획을 긋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의 조선만수대창작사의 직영 화랑이 798 예술지구에 있다는 것은 이곳이 단순한 화랑가가 아니고 중국 정부가 정책적으로 전 세계 문화예술계를 끌어들였다는 강한 인상을 갖게 한다.

베이징에 진출한 일본의 화랑 역시 정책적으로 일본 미술을 중국에 알리는 창구로 활용하고 있다. 중국과 한국의 일부 작가들에게 직간접으로 영향을 준 흔적들이 묻어나는 일본의 네오팝이나 일본 애니메이션 성향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던 것 역시 일본의 전략임을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의 화랑들은 3년 전 국내 미술계의 활황 속에서 거둬들인 이익으로 중국 미술 시장에 진출했으나, 한국 미술을 알리는 적절한 창구로는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베이징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화랑들 대부분이 경영에 실패한 것은 이러한 중국 미술 시장 및 세계 미술 시장을 읽어내고 분석한 뒤 대응하는 전략의 수립 프로세스의 부재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798 예술지구, 전자공업지대에서 예술구로 변신

798 예술지구는 베이징 동북쪽 코너 따산즈(大山子)에 자리 잡은 대형 복합예술단지로 중국 전역에 위치하는 로프트(loft)식 예술단지의 표본이다. 아트스튜디오·화랑·서점·미술관·상점·레스토랑·카페 등이 모여 있는 이곳은 경직된 정치도시 베이징에서 자유로운 예술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로프트식 예술 공간은 뉴욕의 소호에서 시작됐는데, 오래된 공장이나 창고를 개조해 스튜디오 내지 화랑 등으로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798이란 중국 국영 공장 번호로, 제2차 세계대전 후 소련이 독일에서 받은 배상금을 자본으로 중국 원조로서 건설한, 베이징 북동쪽에 있는 전자공업지대를 말한다. 1950년대에 독일인 기술자들의 협력 아래 건설됐던 이 공장지대는 반원통형의 견고한 건물이 늘어서 있는데, 공장 자체는 중소 관계가 악화된 후부터 그 일부만 가동하는 폐허로 되어 반세기 가깝게 방치되어 있었다. 이곳을 설계한 동독의 건축사 셰르너(Schierner) 부자는 바우하우스가 위치한 데사우(Dessau) 지방 출신이다. 따라서 이들의 설계는 자연스레 바우하우스 건축 스타일을 나타내고 있다.

이 공장단지를 최초로 아트 스페이스로 사용한 이가 황루이이다. 홍위병 세대이기도 한 황루이는 문화대혁명 후 찐티엔(今天), 싱싱화회이(星星畵會)라는 안티 마오이즘의 시인, 예술가 집단을 만들었다. 중국 현대미술 전문가인 일본의 미술 평론가 마키요이치는 황루이의 사상에 대해 “선진적인 예술과 일반 시민의 연결을 굳게 하고, 예술과 기술의 새로운 통합을 꾀하는 바우하우스의 이념과, 노동자를 국가의 주인으로 하는 사상을 잃어가고 있는 중국의 현 상황을 비판적으로 촉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798 예술지구는 요즘 커다란 변화를 맞고 있다. 건물주 및 임대주들은 재임대 형식으로 1㎡당 일세를 받는다. 109㎡(33평형)의 월세가 한화로 약 450만원으로 서울 강남의 청담동보다도 비싸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버티는 화랑들이 없다. 한국 화랑들은 아트사이드를 비롯하여 표화랑·아라리오 등이 있었으나, 아라리오는 사실상 철수한 상태이다.

한국 화랑들 중에서는 초기에 베이징에 진출, 잠깐의 단맛을 본 아트사이드조차도 전시장 일부를 잘라내 별도의 아트숍으로 재임대했다. 중국에서 전시기획 업무를 하는 와우공간의 안규엽 대표는 “중국에서 한국인이 미술 사업으로 돈을 번 경우는 없다”며, “베이징의 한국 화랑들은 시류에 따라 중국 작가를 한국에 소개하는 거점 역할밖에 하는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베이징과는 환경이 사뭇 다른 상하이조차도 아트페어에서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팔리는 것은 드문 일로 알려져 있다. 안 대표는 “한국 작가들에게 중국 시장은 회화보다는 입체가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중국은 입체 작가들이 많지 않은 반면, 수요는 많기 때문이다.

베이징에서는 화교 자본이 중국 작가들뿐만 아니라 한국 작가들도 지원하고 있다. 대표적인 한국 작가가 한국화를 기본으로 하면서 현대 팝을 그리는 임태규다.

오광수 미술평론가는 “작품을 형성하는 인자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주변적이고 현대적이다”며 “자잘한 일상의 갈피들이 맥락을 갖지 않은 채 등장하고 유년과 현재의 삶이 오버랩 된다”고 임 작가의 작품세계를 평가했다. 임 작가는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아트시즌의 지원을 받아 4월 말에 런던, 8월에 싱가포르에서 개인전을 가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