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에서 감세(減稅)정책 논란이 한창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때문에 조명을 받지 못했을 뿐이지, 사실상 올해 최대의 경제 뉴스는 감세정책이다. 올해 예상 세수(稅收)가 크게 늘어나 재정 적자가 예상치보다 대폭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기 때문이다. 공화당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감세정책이 결실을 거두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민주당은 5년 전 수준으로 되돌아갔을 뿐이라며 평가절하했다.

백악관은 최근 세수가 기대 이상으로 늘어나 올해 재정 적자가 1000억달러 가량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예상 적자는 2960억달러로, 작년 3180억달러보다 220억달러 감소할 것이란 전망이다. 기업과 부유층으로부터 거둬들인 세금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백악관은 올해 세수가 지난해에 비해 2500억달러나 늘어나 6개월 전 예상했던 재정 적자폭이 대폭 줄어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올해 예상 세수는 2조4000억달러다. 지난 25년 동안 세수가 이처럼 큰 폭으로 증가하기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가 두 번째다. 지난 2월까지만 해도 백악관은 재정 적자가 4230억달러, 의회예산국(CBO)은 371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동안 부시 대통령의 감세정책을 비판해오던 <뉴욕타임스(NYT)>도 “세수 증가가 큰 폭으로 늘어나 예산 전문가들도 모두 놀라고 있다”면서 “향후 백악관과 공화당이 주도하는 의회가 세금 감면 확대 법안을 더욱더 강도 높게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전통적으로 부시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지지해온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올 초부터 줄곧 세수 증가 예상 기사를 보도해왔다. <WSJ>는 최근 사설을 통해 “세금 감면 조치가 경제 회생에 결정적 동력을 제공했다”면서 “세금 감면이 더욱더 늘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시 대통령은 “좋은 소식은 우연히 오는 게 아니다”면서 희색이 만면했다.

세수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은 올해 법인소득세가 26% 이상 늘어났기 때문이다. 또 금융소득에 대한 소득세도 20% 가까이 늘어났다. 특히 주식시장이 활황세를 타면서 주식 매매 차익에 따른 소득세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 소득세는 전년 동기 대비 15% 이상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감세 효과가 주로 부유층에 집중되면서 부유층이 잉여 자금을 주식시장에 투자, 주식시장이 경제를 떠받쳐줬다는 것이다. 미국은 주식시장에서 얻은 소득도 일반 소득과 마찬가지로 과세한다. 부시 대통령은 “감세는 경제 성장과 소득 향상을 가져왔다”며 “감세 조치를 영구화해 향후 10년간 1조달러를 국민들에게 되돌려주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감세정책이 4~5년 지나서야 효과를 내고 있는 이유에 대해 9·11 테러 등으로 불안했던 소비 및 기업 심리가 본격적으로 풀리기 시작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 감세로 주머니가 두둑해진 부유층 소비자들이 소비를 늘리면서 지난 수년간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4%를 유지해왔고, 실업률도 4%대에 머무는 데 일조했다. 기업들은 사상 최대의 흑자를 냈고, 유가가 2년 전보다 50% 이상 올랐는데도 유류 소비는 줄지 않고 있다. 미국은 과거 IT 기술을 통한 생산성 향상과 2000년 초저금리 시대를 통해 성장을 거듭해왔고, 이제 부시 대통령의 감세정책으로 경기 침체를 돌파하고 있는 것이다.

세금 감면을 주도한 공화당은 “감세정책으로 개인의 소득이 늘어나면서 경제가 다시 살아나 세수가 확대되고 있는 것”이라며 반겼다. 감세를 하면 가계의 소비 여력이 커지고 기업 생산도 늘면서 경기가 살아난다는 논리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2001년 감세정책을 공표할 때 “미국 시민 1인당 1600달러씩 돌아간다”고 큰 소리 쳤었다.

그러나 민주당 측은 “세수가 이제 겨우 2000년 수준으로 되돌아간 것에 불과하다”며 평가절하했다. 특히 중산층에게는 감세 혜택이 별로 없다는 주장이다. 실제, 납세자 하위 60%는 연간 256달러의 감세 혜택을 받는 반면, 상위 1%는 연간 5만달러나 돌려받는다는 것이다.

부시 경제정책의 대표적인 비판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는 “감세정책은 부시의 사기”라고 주장했다. 이라크 전쟁 비용과 의료보험료, 교육 등 정부 예산이 날로 늘어만 가는데, 세수를 줄이면 재정 적자가 확대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공화당은 그럼에도 감세정책을 굽히지 않을 방침이다. 부자들이 돈을 써야 경제가 돌아간다는 논리를 은연중 피력하고 있다. 여유 돈은 정부보다 민간이 보유하고 있어야 효율적이라는 철학에 따른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2001년 취임 직후 수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개인소득세와 법인세, 주식과 부동산 세금의 인하를 밀어붙였다. 모두 1조6000억달러 규모였다. 당시 재정 흑자는 1000억달러가 넘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정부 재정을 흑자로 돌려놓은 지 얼마 안됐을 때였다. 9·11 테러나 이라크 전쟁은 상상도 할 수 없던 시절이었고, 앨런 그린스펀 당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정부 재정 흑자가 과도하면 경제를 왜곡시킬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었다. 감세정책은 정부의 예산 낭비를 줄이고, 작은 정부를 구현할 수 있는 합당한 정책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의 감세정책은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났다. 9·11테러가 터지면서 기업 활동이 현저하게 위축됐고, 소비 심리는 얼어붙은 데다, 이라크전쟁까지 터지면서 재정 흑자가 순식간에 재정 적자로 돌아선 것이다. 그럼에도 부시 대통령은 2003년 또 한 번의 감세안을 내놓았다. 경기 침체를 돌파할 수 있는 수단으로 감세 카드를 내민 것이다. 민주당은 부시 대통령의 재정 적자를 동네북으로 만들었다. 힐러리 클린턴 의원은 “내 남편이 튼튼하게 관리해 온 재정을 잘못 관리해 외국에서 돈을 빌려다 메우고 있는 형편”이라고 비난했다.

재정 적자는 여전

하지만 예산 전문가들은 “정부 지출을 크게 줄이지 않는 한 재정 적자 규모를 줄이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간 이라크전쟁 비용 지출만 1200억달러다. 정부 재정 적자의 절반에 달한다. 보수적 연구소인 AEI의 케빈 해셋 경제정책국장은 “감세정책이 일부 경제 분야에 효과를 발휘했지만 재정 적자 규모를 메울 수 있는 성장 동력을 제공하는 데에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백악관은 재정 적자가 2007년부터 다시 3390억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소득세 납세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개시하기도 했던 롭 포트먼 백악관 예산국장은 “세수 증가율이 2.4%에 그쳐 정부 지출 증가율보다 낮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재정 적자는 베이비 붐 세대들이 대거 은퇴하면서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또 의료보험과 사회보장보험 지출이 가파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부시 대통령은 목적세의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지역구 예산을 챙기기 위해 국민의 혈세를 낭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은 “의회가 앞장서서 예산 낭비를 없애야 한다”고 촉구하고, “불요불급한 목적세를 제외하곤 강력한 세제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경제가 이 상태로 지속되면 조만간 정부 재정이 다시 흑자로 돌아설 것”이라면서 “2010년 폐지되는 감세안이 영구적으로 추진돼야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