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9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 있는 화이자 본사 앞에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 AFP연합
11월 9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 있는 화이자 본사 앞에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 AFP연합

미국 제약 회사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엔테크가 함께 개발 중인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이 기대 이상의 효험을 보여줬다. 화이자는 11월 9일(이하 현지시각) 3상 임상시험 참가자 중 코로나19에 감염된 94명을 분석한 결과, 자사 백신이 코로나19 예방에 90% 이상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동안 전문가들은 최소 75% 이상의 효과가 있는 코로나19 백신을 기대해왔다. 비록 중간 결과이기는 하지만 90% 이상의 효과는 일반 독감 백신의 두 배에 가깝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독감 백신은 감염 위험을 40∼60% 낮춰준다. 화이자 코로나19 백신의 경우 홍역 백신(93% 효과)만큼 예방 효과가 강력하다.

이날 발표는 독립적인 외부 전문가 패널인 데이터 감시위원회가 화이자와 바이오엔테크의 3상 시험에 관해 내놓은 중간 결과로 최종 수치는 달라질 수 있다. 미국과 해외 5개국에서 총 4만3538명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3상 시험에서 초기에 발생한 94명의 확진자를 분석한 내용을 담았다. 화이자와 바이오엔테크는 임상시험 참가자를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에는 코로나19 백신을 투여하고, 나머지 그룹에는 플라시보(가짜 약)를 투여했다. 그 결과 두 시험군을 통틀어 현재까지 94명의 확진자가 나왔는데, 이 중 백신을 접종한 참가자 비중은 10% 미만에 그쳤다. 임상시험에서 나온 확진자의 90% 이상이 플라시보를 투여한 실험군에서 발생했다는 뜻이다. 백신의 예방 효과가 나타난 시점은 두 번째 백신 투여 7일 후로, 첫 번째 투여일로부터는 28일 뒤라고 화이자는 설명했다. 이 코로나19 백신은 2회 투여해야 면역력이 생긴다.

앨버트 불라 화이자 최고경영자(CEO)는 성명을 내 “감염률 신기록이 세워지고 병원 수용 능력이 한계에 도달했으며 경제 재개에도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며 “전 세계가 백신을 가장 필요로 할 때 우리가 백신 개발에서 중요한 이정표에 도달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몇 주 안에 백신의 안전성과 효과에 관한 추가 데이터를 공개하겠다”고 덧붙였다.

화이자는 백신 안전에 관한 데이터를 점검한 뒤 11월 셋째 주 미 식품의약국(FDA)에 긴급 사용 승인을 신청할 방침이다. 현재까지 심각한 안전 우려는 관찰되지 않았다고 화이자는 밝혔다. 7월 27일 시작된 화이자와 바이오엔테크의 3상 시험은 총 164명의 확진자가 나올 때까지 진행할 방침이다. 회사 측은 올해 말까지 1500만∼2000만 명에게 접종할 수 있는 분량(2회 투여 기준)의 백신을 제조할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내년에는 13억 회 투여분을 만들어낼 전망이다. 미 정부와 과학계는 내년 상반기 중 화이자를 포함한 코로나19 백신이 상용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백신 상용화가 실현될 경우 코로나19가 처음 발병한 지 12∼18개월 만으로, 세계 백신 개발사에서 최단 기록을 갈아치우게 된다. 지금까지 최단기간에 개발된 백신은 지난 1967년 4년여 만에 승인된 볼거리 백신이다.


11월 9일(현지시각) 뉴욕증권거래소 모니터에 화이자의 로고가 떠 있다. 사진 AP연합
11월 9일(현지시각) 뉴욕증권거래소 모니터에 화이자의 로고가 떠 있다. 사진 AP연합

연결 포인트 1
세계 경제의 ‘게임 체인저’

화이자와 바이오엔테크가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의 성공적인 임상 결과로 세계 경제의 성장 전망이 상향 조정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르면 내년 초반 백신을 제조, 배포할 수 있다는 기대는 당장 내년 1분기 성장률 전망치의 상향 조정을 보장할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 투자운용사인 아폴로 글로벌 자산운용의 이코노미스트 사이드 슬록은 블룸버그 통신에 “백신은 ‘게임 체인저(판을 바꾸는 것)’”라며 “모든 전망치를 뒤집어 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미국과 유럽 등지의 코로나19 재확산으로 4분기 경제 전망이 어두웠지만, 백신 보급에 대한 기대감은 당장 소비자와 기업들의 심리 개선으로 이어지고 소비와 고용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일부 시장 전문가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크레디트 스위스의 이코노미스트 제임스 스위니는 “전망치를 조정하기 전에 우선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구르 사힌(왼쪽) 바이오엔테크 CEO와 외즐렘 튀레지 최고의료책임자(CMO) 부부. 사진 바이오엔테크
우구르 사힌(왼쪽) 바이오엔테크 CEO와 외즐렘 튀레지 최고의료책임자(CMO) 부부. 사진 바이오엔테크

연결 포인트 2
‘흙수저’ 부부의 성공 신화

바이오엔테크는 2008년 우구르 사힌과 외즐렘 튀레지 부부가 공동 창업한 회사다. 이들 부부 모두 1960년대 터키에서 독일로 건너온 이주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자란 전형적인 이민 2세 ‘흙수저’다. 사힌은 터키에서 태어나 4세 때 독일로 이주했고 튀레지는 독일에서 태어났다. 독일 베를린 지역지 타게스슈피겔은 “이들 부부의 성공은 과일 가게에서 일하는 저학력 계층으로 여겨졌던 터키 이민자의 쾌거”라고 평가했다.

바이오엔테크는 바이러스 백신이 아니라 항암 면역치료법 개발에 주력했던 회사지만 올해 초 코로나19가 발병하자 ‘광속’이라는 이름의 개발팀을 500명 규모로 구성하고 재빨리 백신 개발을 시작했다. 독일은 3월 휴교령을 내렸는데 회사는 이미 20가지의 백신 후보 물질을 개발해 낸 때였다.

빌 게이츠가 5500만달러(약 616억원)를 투자하기도 한 바이오엔테크는 백신 개발 소식에 11월 9일 주가가 23.4% 급등해 시가총액이 219억달러(약 25조원)가 됐다.


미국 미시간주 칼라마주에 있는 화이자의 백신 냉동고. 사진 EPA연합
미국 미시간주 칼라마주에 있는 화이자의 백신 냉동고. 사진 EPA연합

연결 포인트 3
코로나19 종식 기대 속 신중론도

화이자와 바이오엔테크의 코로나19 백신을 일반에게 배포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예방접종 프로그램이 발달한 선진국에서도 피접종자 추적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 하고 젊은층의 집단접종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등 남은 과제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대규모 접종센터 운영 등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보관·운송 과정의 어려움도 지적된다.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은 영하 70℃ 이하의 초저온에서 보관해야 하는데, 이를 지키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게다가 백신의 안전성과 효험이 아직 최종 입증되지 않았다며 중간 결과에 너무 들떠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도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성명에서 “대단한 뉴스지만 우리 앞에 놓인 과제들은 지금 그대로 남아 있다”며 “광범위한 백신 접종이 이뤄지려면 몇 달이나 남아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마스크를 계속 쓰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