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사진 블룸버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사진 블룸버그

최근 터키 화폐인 리라화 가치가 폭락을 거듭하면서 터키 물가가 치솟고 있다. 터키 제빵연맹에 따르면 12월 첫째 주 밀가루 가격이 11월 마지막 주 대비 두 배 가까이 폭등했다. 터키 최대 도시인 이스탄불의 주택 월평균 임대료는 지난해 대비 약 60% 급등했다.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지난 8월부터 4개월 연속 전년 동월 대비 20%에 육박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거꾸로 경제 정책’ 때문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전 세계적으로 치솟는 물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선거 공약이었던 금리 인하 정책을 이행했다. 그는 자신의 금리 인하 정책을 반대하는 중앙은행 총재와 재무장관을 잇달아 경질하면서 9월 이후 세 차례에 걸친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올해 초 20%였던 기준금리가 15%까지 낮아졌다. 그 결과는 리라화 가치 폭락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12월 6일(이하 현지시각) 터키 화폐인 리라화 환율은 달러당 13.79리라로 마감했다. 올해 들어서만 리라화 가치가 50% 가까이 떨어지며 사상 최저치로 추락했다. 올해 초만 해도 리라화 환율은 달러당 7리라대였다.


에르도안 리스크에 뿔난 국민

터키 국민은 자국 경제를 망친 원흉으로 에르도안 대통령을 지목하고 있다. 11월 24일 터키 수도 앙카라 등 전역에서 수천 명의 시민이 에르도안 대통령의 금리 인하 정책을 비판하며 시위에 나섰다. 이들은 “매일 뛰는 물가 때문에 못 살겠다. 대통령은 물러나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날 경찰은 허가를 받지 않고 시위를 했다는 이유로 시민들을 연행했다. 터키 국민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에르도안 대통령은 저금리 정책을 고집하고 있다. 물가가 오를 때는 금리를 내리는 게 아니라, 금리 인상에 나서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경제 상식이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은 여전히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잡으려면 금리를 낮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12월 2일 기준금리 인하를 반대한 뤼트피 엘반 재무장관을 해임하면서 금리 인하 정책을 고수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표명했다. 그는 “고금리로 해외 투기성 자본을 유치하려는 정책을 거부한다”며 “2023년 총선과 대선 전까지 저금리를 약속하겠다”라고 밝혔다.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대통령의 거꾸로 경제 정책이 리라화 폭락의 원인이 됐다”며 “대외적인 예측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데, 대통령의 독단이 터키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라고 했다.


18년간 집권한 터키 버전 ‘푸틴’

에르도안 대통령은 ‘터키 버전 블라디미르 푸틴’으로 불린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처럼 장기집권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는 2003년 총리에 취임한 이래 18년간 터키를 이끌고 있다. 터키는 2018년 6월 헌법 개정을 통해 대통령제 국가로 전환했다. 이전에는 의원내각제로 총리가 국가수반이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독재자의 모습을 보인 건 2016년 군부 쿠데타 이후부터다. 에르도안 정부에 불만을 품은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진압됐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를 빌미로 자신의 권력을 강화했다. 그는 20여 개의 방송사를 쿠데타에 연루됐다며 폐쇄했고, 심지어 헌법재판관까지 반란 누명을 씌워 체포했다.


터키 이스탄불 시내에 설치된 애플 아이폰 광고판. 사진 블룸버그
터키 이스탄불 시내에 설치된 애플 아이폰 광고판. 사진 블룸버그

연결 포인트 1
터키 리라화 급락에 아이폰 판매 중단한 애플

애플이 11월 말부터 현지 제품 판매를 중단했다. 터키 통화 가치의 급격한 하락으로 초래된 인플레이션 탓이다. 현지 오프라인 매장 판매뿐 아니라 온라인 판매까지 모두 중단된 상태다. 터키 애플 온라인스토어에 접속하면 제품 사양과 가격은 확인할 수 있지만 장바구니에 제품을 담을 수 없다.

11월 23일(이하 현지시각) 아이폰 가격은 1만999리라였지만, 다음 날인 11월 24일 아침 1만3999리라로 하루 만에 가격이 27%나 올랐다. 터키 리라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애플의 아이폰 가격이 비현실적으로 치솟은 것이다. 특히 11월 23일 하루 만에 달러당 리라화 가치가 12.69%나 내린 영향이 컸다. 2년 전 구매한 중고 아이폰 가격이 구매 당시 가격을 웃도는 현상도 일어났다.

반면 리라화 가치 폭락으로 외화 가치가 상대적으로 계속 올라가면서, 해외에서 아이폰을 직구하려는 사람들이 크게 증가했다. 올해 초 1200달러(약 144만원)에 살 수 있던 아이폰을 지난 11월 터키에서는 반값인 600달러(약 72만원)에도 구매가 가능했다. 터키 리라화 가치가 올해 초 대비 절반 가까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애플이 판매 중단에 나선 것이 달러화나 유로화 등 외화 가치가 터키 리라화보다 상대적으로 커진 상황에서 터키 매장이나 온라인에서 제품이 계속 판매되면 해외 다른 국가에서의 가격 정책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조치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 밖에 환율 차이를 이용한 명품 관광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버버리, 구찌 같은 명품을 터키에서 달러화나 유로화로 구매할 경우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터키 명품숍은 명품 관광을 위해 몰려든 외국인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2018년 터키 리라화 가치가 40% 폭락했을 때도 외국인들을 중심으로 터키행 명품 관광 붐이 일었다.


터키 화폐 리라화. 사진 블룸버그
터키 화폐 리라화. 사진 블룸버그

연결 포인트 2
한국·터키 2.4조 통화스와프 어쩌나?

터키 리라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한국은행과 터키 중앙은행이 체결한 20억달러(약 2조4100억원) 규모의 통화스와프에 대한 우려가 불거지고 있다. 터키 경제 상황이 나빠지고 있는 상황에서 20억달러의 통화스와프 거래로 인한 손실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터키 중앙은행과 지난 8월 통화스와프를 체결했다. 계약 금액은 2조4100억원(175억리라)으로 계약 기간은 3년이다. 통화스와프는 상대국에 자국 통화를 맡기고 미리 약정한 환율로 상대국 통화를 빌릴 수 있는 협정을 말한다. 터키 리라화 가치가 폭락하면 통화스와프로 인한 손실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8월 통화스와프 계약 당시 2조3000억원이었던 175억리라의 현재 가치는 1조5180억원에 불과하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지금도 추가 금리 인하를 밀어붙이고 있어 리라화 가치의 추가 하락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통화스와프로 인한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우려도 커졌다. 일각에서는 한국은행이 에르도안 대통령의 금리 인하 정책으로 리라화 가치가 하락하는 시점에 통화스와프를 체결, 불과 넉 달 만에 위기를 초래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손실이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관측도 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손실은 자금거래 후 만기 상환 시 원화 금액을 상환하지 못할 경우를 의미하는데, 국가 전체가 심각한 대외지급 위기 상황에 빠지지 않는 경우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며 “환율이 급격히 변할 경우 담보 역할을 하는 상대 통화의 추가 납입을 요구할 수 있고, 원화 지원 후 만기 상환 시에도 최초의 환율로 계산해 상환을 받으므로 환차손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12월 7일(현지시각) 리라화 환율은 달러당 13.50리라로 마감했다. 달러화 대비 리라화 가치는 올해 초와 비교하면 50%가량 폭락했다.

심민관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