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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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라 칼리시  딜로이트 투쉬 토머츠리미티드 수석 글로벌이코노미스트 배서칼리지 경제학, 존스홉킨스대 국제경제학 박사
아이라 칼리시 딜로이트 투쉬 토머츠리미티드 수석 글로벌이코노미스트 배서칼리지 경제학, 존스홉킨스대 국제경제학 박사

미국과 중국이 몇 년간에 걸쳐 징벌적 관세와 무역 제재를 서로 주고받으면서, 양국이 결국에는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의 길로 가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여기저기서 쏟아지고 있다. 미국 싱크 탱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그에 대한 답은 ‘예’와 ‘아니오’ 둘 다이다. 미·중 무역 관계를 분석한 PIIE는 지난 4년간 일부 품목의 양국 간 무역 규모는 급증한 반면, 일부 품목은 저조한 양상을 보였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결론적으로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당시 대중(對中) 수입 관세율이 대거 인상된 후,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철회하지 않은 중국산 품목의 경우 미·중 무역전쟁의 직격탄을 받았다. 하지만 대중 관세 인상의 타격을 받지 않은 중국산 품목은 수입 규모가 오히려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관세 폭탄 맞은 중국산 품목 타격 컸다

전반적으로 보자면, 미국의 대중 관세로 인해 미국의 중국산 수입이 위축됐다. 예를 들어, 미국의 총수입 규모는 미·중 무역전쟁이 발발하기 이전보다 38% 증가했으나, 중국산 품목의 수입 규모는 전혀 늘지 않았다. 하지만 무역전쟁의 포화를 피한 중국산 품목의 수입은 같은 기간 50% 증가했다. 관세율이 오르지 않은 중국산 품목의 수입 규모는 다른 국가의 수입품보다 훨씬 빠르게 늘어난 것이다. 반면 대중 관세의 칼날을 맞은 여타 품목은 관세율이 높을수록 수입 규모가 작았다.

이러한 양상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대표적인 예로 중국산 ‘노트북 및 모니터 vs IT 하드웨어 및 가전제품’을 꼽을 수 있다. 미국이 중국산 노트북과 모니터에 대해서는 관세 공격을 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산 수입 규모가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기간에 급격히 증가했다. 해당 품목에 대한 미국 내 수요가 워낙 많기 때문에 중국산이 아니더라도 수입량은 빠르게 증가했지만, 총수입량 중 중국산이 92%를 차지할 정도였다. 반면 대중 관세율이 25%에 달하는 IT 하드웨어와 가전제품의 경우 여타 국가에서 들여오는 수입량이 62% 급증하는 동안, 중국산은 반대로 62% 급감했다. 중국산 자동차 부품과 반도체도 같은 처지다.

기술 패권을 둘러싸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은 상호 간에 거친 태도로 투자 제한 조치를 주고받으며 양국 간 경제 관계를 크게 훼손시켰다. 중국이 핵심 기술을 손에 넣지 못하도록 미국 정부가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양국 간 경제 관계 회복은 요원하다. 특히 미국은 국가 안보에 중요한 기술의 가치사슬을 중국이 타고 오르지 못하도록 모든 루트를 차단할 태세다.

민간 기업들의 탈(脫)중국 물결도 미·중 디커플링을 부추기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공급망이 붕괴하면서 전례 없는 쇼크를 경험했던 수많은 기업이 보험이라도 든다 생각하고 중국 외 공급망 구축에 나선 것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자산과 생산시설을 동남아시아와 인도, 멕시코 등지로 옮기고 있다.

휴대전화가 대표적인 예다. 중국산은 여전히 미국의 휴대전화 총수입량 중 74%를 차지하지만, 2018년 이후 중국 외 지역에서 미국이 수입한 휴대전화 물량이 70% 증가한 반면 중국산은 14% 늘어나는 데 그쳤다. 특히 베트남산 휴대전화가 중국산 몫을 대부분 앗아갔다. 생산을 아웃소싱하는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초래하는 위험을 경계하며 빠른 속도로 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중국이 글로벌 시장의 가치사슬에서 위쪽으로 이동하고 인건비도 상승하면서, 의류와 섬유, 완구, 신발 등 가치사슬의 하단에 있는 제조업이 빠르게 중국을 탈피해 인건비가 낮은 지역으로 옮겨가고 있다.



미·중 디커플링 리스크, 공급망 경색

PIIE는 미·중 디커플링 과정에서 새로운 위험이 고개를 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오랜 세월 얽히고설킨 경제 및 무역 관계를 하나하나 분리해 내려면, 공급망을 재편하고 새로운 공급원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재화 부족난과 인플레이션 같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현재의 공급망 경색은 미·중 디커플링이 진행되면서 불거진 문제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미·중 디커플링이 아예 서방과 아시아 간 디커플링으로 확대되면서 무역 외 다른 영역의 양상도 변모하고 있다. 미국의 최근 행보가 아시아와 서방 간 디커플링을 시도하는 지정학적 움직임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행보는 미국 의회를 통과한 반도체법(Chips Act)이다. 반도체법은 국산 반도체 산업의 발전을 위해 530억달러(약 76조원)의 지원금을 제공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또한 미국 행정부는 중국 기업의 미국 반도체 산업 접근을 금지하는 규정을 시행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반도체법이 중국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현재 미국은 핵심 반도체 공정 대부분을 대만에 의존하고 있는데, 아시아의 불안정한 지정학적 동향을 감안할 때 이는 위험 요소가 상당히 많은 구조라는 지적이 미국 내부에서 불거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미국 정부의 목적은 위험 요소를 제거한 반도체 공급망을 확보하는 것이다.


美 반도체법, 아시아 디커플링 힘들고 비용만 늘릴 듯

하지만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반도체법 때문에 미국 경제는 아시아에 대한 의존도를 떨치지 못한 채 더 많은 비용만 지불하게 되는 결과를 떠안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골드만삭스는 “미국에서 새로운 팹(fab·반도체 조립 공장)을 건립해 가동하는 데 드는 비용은 대만에서 건립, 가동하는 것보다 44% 더 많이 든다”고 지적했다. 44% 중 21%는 미국이 아시아보다 더 많은 자본 지출(CAPEX)이 필요하기 때문이고, 18%는 10년간 운영 비용이 더 많이 들기 때문이며, 5%는 문화와 운영, 관리 방식 차이 등으로 인해 운영이 훨씬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다시 말해 미국이 반도체 공급망을 다각화, 특히 국산화하려면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골드만삭스는 반도체법에 의거해 보조금을 지원하더라도 국산 반도체 산업 발전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골드만삭스는 “보조금의 도움을 받더라도 미국이 글로벌 반도체 생산 능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채 1%포인트도 안 늘어날 것”이라며 “반도체 기술이 한층 첨단화하면서 자본 지출이 계속 증가하는 추세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향후 3년간 글로벌 반도체 산업 자본 지출은 연간 17%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지난 10년간 증가율인 약 8%에 비하면 두 배 이상 가파른 속도다.

골드만삭스는 “미국의 반도체법은 반도체 공급망 내에서 현재 아시아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나 중요성을 대체하려는 시도라기보다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위기나 대형 공급망 차질에 대해 ‘헤징(hedging)’하기 위한 지정학적 전략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미국 정부의 공급망 다각화와 국산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산업만큼은 아시아와 디커플링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