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절대 인구가 급감하고, 고령자가 급증하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일본은 절대 인구가 급감하고, 고령자가 급증하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최인한 시사아카데미 일본경제사회연구소장현 경희사이버대 일본학과 강사, 전 한국경제신문 온라인총괄 부국장
최인한 시사아카데미 일본경제사회연구소장
현 경희사이버대 일본학과 강사, 전 한국경제신문 온라인총괄 부국장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을 계기로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와 산업화에 성공했다. 제1, 2차 세계대전과 버블(거품) 경제 붕괴를 겪었지만, 여전히 세계 3위 경제 대국이다. 그런 일본이 새로운 위기를 만났다. 위기의 근원은 인구 구조 변화다. 2008년 1억2808만 명을 정점으로 13년째 인구가 줄고 있다. 주요 선진국 가운데 최고 저출산, 고령화 국가이기도 하다. 코로나19 사태로 한·일 간 여행이 끊기기 직전, 지난해 2월 일본의 인구 문제를 현장에서 목격했다. 중앙 알프스의 리조트나 온천에서 서빙이나 시설관리를 하는 직원은 대부분 노인이었다. 고급 휴양지에는 젊은 직원이 있긴 했다. 동남아, 아프리카계 등 외국인이었다. 인구 변화가 일본 사회를 뿌리째 바꾸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 가속

일본 인구는 1872년 3480만 명, 1912년 5057만 명, 2008년 1억2808만 명을 기록했다. 이후 감소세로 돌아서 2019년에 1억2614만 명까지 줄었다. 세계 인구(약 77억 명)의 1.6%로, 인구 수 기준 11위다. 생산가능연령(15~64세) 인구는 가장 많았던 1995년 8700만 명에서 2019년 7500만 명으로 줄었다. 

일본인의 평균 수명은 남녀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18년 기준 여성 87세(세계 2위), 남성 81세(세계 3위)이다. 전체 인구에서 고령 인구(65세 이상)가 차지하는 비중은 1975년 7.9%에서 2010년 23.0%, 2020년 29.1%로 높아졌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1950년에는 고령화율이 5%에 미치지 못한 젊은 국가였다. 경제 발전과 의료, 공중위생 환경의 개선에 힘입어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됐다. 고령화 사회(고령화율 7%)에서 고령 사회(14%)로 진입하는데 24년 밖에 걸리지 않은 것은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다. 독일 40년, 영국 46년, 스웨덴 85년, 프랑스 126년이 걸렸다. 고령 인구 급증은 임금, 고용, 연금, 의료제도, 교육 등 경제·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준다. 저출산도 초고속으로 진행 중이다. 2016년 연간 출생자 수는 98만1000명에 그쳐 100만 명을 밑돈다. 출생자 수는 1949년 269만6638명에서 70여 년 만에 3분의 1로 떨어졌다. 소년 인구(0~14세) 비중은 1975년 24.3%에서 2010년 13.1%, 2020년 12.0%로 줄었다. 고령자와 소년을 합친 비생산가능연령 인구(부양해야 하는 대상)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게 일본 인구의 가장 큰 구조적 특징이다.

일본은 절대 인구가 급감하고, 고령자가 급증하면서 사회 각 분야에서 큰 피해를 낳고 있다. 당장 눈앞에 다가온 ‘2025년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했다. 인구 비중이 큰 단카이 세대(베이비 부머 세대)가 75세 이상이 되는 해로 큰 병을 앓는 사람들이 급증, 사회 보장비가 팽창하고 의료기관 및 노인요양시설이 부족해지고 있다. 더블 케어(육아와 요양)도 큰 부담이다. 인구 전문가인 가와이 마사시의 저서 ‘인구 감소 일본에서 일어날 일들’에 따르면 오는 2040년께 사망자가 급증해 화장장이 부족해지고, 고령자 수가 정점을 맞는 2042년께 무연금, 저연금의 가난하고 의지할 곳 없는 고령자들이 거리에 넘쳐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실제로 ‘대학 도산’ 현상은 10여 년 전부터 일어나고 있다. 대입 연령인 18세 인구가 급격히 줄면서 지방에선 정원 미달 대학이 속출한다. 사립대학의 경우 40% 이상이 정원을 채우지 못한다는 통계도 있다. 18세 인구는 2009년 120만 명에서 최근 100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 정보기술(IT) 등 기술 인력 부족도 심각하다.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2019년 약 92만3000명을 정점으로 IT 산업의 취직자가 퇴직자를 밑도는 상황이다. 오는 2030년에 약 85만7000명까지 떨어지고, 평균 연령은 2010년 37.5세에서 2030년 41.2세로 높아진다. 2015년에는 17만 명의 IT 인력이 부족했으나 오는 2030년의 부족 인원은 59만 명으로 예상된다.

치매 고령자들이 늘면서 생기는 문제도 늘고 있다. 올 8월에는 치매를 앓는 사람들이 소유한 주택이 급증,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오는 2040년에는 이 같은 주택이 지금보다 약 27% 증가한 280만 호에 이를 전망이다. 치매 고령자들은 보유 주택을 처분하기 힘들고, 간병 비용 마련을 위한 자산 활용이 어렵다. 집은 예금과 달라 일부 매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산 관리를 자녀에게 맡기는 가족 신탁 활용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


노동력과 연금 문제 해결 위한 ‘70세 정년’

일본은 선진국에서 가장 이른 2005년에 초고령 사회(65세 이상이 인구의 20% 초과)로 진입했다. 2019년 기준 70세 이상은 다섯 명 중 한 명꼴인 2621만 명(20.7%)에 달한다. 70세 전후 노인들이 제조업, 농수축산업, 자영업 등 모든 업종에서 일한다. 소재, 부품, 장비 등 기초 산업에서 세계 최고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도 숙련 기술을 가진 고령자 덕분이다. 의사, 교수, 건축 등 전문직에도 고령자들이 많다. 사립대학은 정년을 70세로 한 곳이 꽤 있다. 

올 4월 1일 개정 고령자 고용안정법이 시행됐다. 이 개정법에 따라 근로자에게 만 70세까지 취업 기회를 연장토록 하는 ‘노력 의무’가 기업들에 부여됐다. 당장 70세 정년이 의무는 아니다. 하지만, 기업 측에 최대한 노력하라는 요구를 담았다. 지금도 고령 근로자들이 적지 않지만, 법적으로도 70세까지 일할 수 있는 평생 현역 시대가 열렸다. 기존에는 만 65세가 법정 정년이었다.

이 법은 근로자들의 정년을 70세까지 늘리도록 노력할 것을 요구하는 대신 근로자의 지위를 바꿀 수 있도록 했다. 기업은 65세 초과 근로자를 자사 직원이 아니라 개인 사업주 또는 프리랜서로 분류할 수 있다. 고용 형태도 직접 고용에서 업무 위탁 계약으로 변경 가능하다. 자사 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고용보험에 가입할 의무도 없다. 기업은 고용 형태 변경을 통해 인건비를 20~50% 줄일 수 있다. 정년을 연장하는 대신 기업의 인건비 부담은 줄여주려는 것이다.

기업들은 ‘70세 정년 시대’에 대응, 인사제도를 바꾸고 있다. 세계 최대 지퍼 제조업체 YKK그룹은 연초 65세 정년을 폐지했다. 일본 최대 에어컨 메이커 다이킨은 4월부터 희망자를 대상으로 정년을 70세로 연장하는 재고용 제도를 도입했다. 가전 유통 상장사 노지마는 연초 65세에서 80세로 정년을 연장했다. 미쓰비시화학 등 대기업도 정년 폐지를 추진 중이다.

70세 정년은 평균 수명 증가로 고령자 근로 수명이 길어진 것이 기본 배경이다. 노동 인구 감소도 영향을 미쳤다. 고령자 급증에 따른 연금, 의료비 지원 등 국가의 복지비 지출 부담을 줄이려는 목적도 있다. 일본 정부는 고령 인구가 급증하자 각종 노인복지 제도를 보완하고 있다. 장기 요양의 경우 시설 입소에서 재택 간병으로 제도를 개선 중이다.


인구 구조 변화, 새로운 시장 열린다

인구 감소는 기본적으로 내수 시장 축소를 의미하지만, 새로운 시장이 생기기도 한다. 요즘 일본에서는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빈집이나 노후 주택이 전국에 늘어나면서 ‘중고 주택’이 투자 대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주택으로 재테크를 하는 개인도 있고, 매매업을 전문으로 하는 상장회사도 생겨났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빈집은 2019년에 848만9000호에 달해 2013년 대비 3.6% 증가했다. 전국 5361만6000호 가운데 빈집 비율이 13.6%를 기록, 사상 최고였다. 낡은 빈집이 늘어나면 인근 지역이 황폐해지고, 범죄 증가로 피해가 발생한다. 정부는 ‘빈집 대책 특별 조치법’을 제정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등록면허세 인하와 부동산 취득세 감세를 통해 민간 사업자의 빈집 활용 비즈니스를 유도하고 있다. 정부의 규제 완화도 빈집 비즈니스를 활성화했다.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하자 숙박시설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2018년 6월 도입한 ‘민박 개정법’이 대표 사례다. 여관업법 허가가 없어도 신고만 하면, 민박을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