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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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민 WTCS 대표 광운대 경영학 박사, 한국무역협회 전 FTA통상연구실장·전 베이징지부장·전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최용민 WTCS 대표
광운대 경영학 박사, 한국무역협회 전 FTA통상연구실장·전 베이징지부장·전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한국과 일본 기업들이 중국에 대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차이나 플러스 원(China plus one·중국 이외에 생산기지를 하나 더 갖는 것)’ 전략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의 일이다. 중국과 거래가 경제 외적인 이유로 커다란 영향을 받고 미·중 간의 대결이 선언적 포문을 넘어 관세 부과 등 실질적인 조치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미국의 중국 견제로 원가 상승을 넘어 아예 거래 중단에 내몰리기도 한다. 더불어 정보기술(IT) 관련 제품과 부품을 중심으로 베트남을 필두로 아세안이 새로운 투자처로 떠오르면서 한국과 일본 기업의 자금을 빨아들이고 있다. 한국은 베트남에, 일본은 태국으로 몰린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최근 아세안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델타 변이 환자가 급증하면서 글로벌 공급망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차이나 플러스 원을 넘어서 글로벌 공급망을 다시 짜야 할 때가 성큼 다가온 느낌이다.

한국 기업의 해외 경영에서 중국 일변도를 탈피해야 한다는 논리는 경제적인 요인에서 촉발됐다. 중국은 지역별로 최저임금이 다른데 한국 기업이 주로 입주한 산둥성 등 연안 지역을 중심으로 매년 두 자릿수의 임금 인상이 단행되면서 생산성을 고려한 한·중 간 인건비 차이는 사실상 사라졌다는 진단이 일면서 2010년을 전후로 베트남으로의 공장 이전 붐이 일었다. 당시 생산비를 기준으로 베트남은 중국의 3분의 1에 불과한 데다 근로자들이 신기술 습득에 적극적이고 업무 집중도가 높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런 장점을 기반으로 베트남이 섬유류 등 노동집약 제품은 물론 휴대전화 등 첨단 IT 제품에 적합한 생산기지라는 평가가 내려졌다. 2004년에 한국 기업의 해외 투자에서 아세안이 차지하는 비중은 8.6%로 당시 중국(37.3%)의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인 2019년에 아세안의 핵심 파트너인 베트남(45억9000만달러), 인도네시아(9억8000만달러), 싱가포르(32억2000만달러) 등 3대 투자처만 합해도 90억달러(약 10조7280억원)에 육박하여 같은 해 중국에 대한 투자액인 58억5000만달러(약 6조9700억원)를 크게 웃돌았다. 특히 제조업이 주로 이전하고 있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투자액만 더해도 중국에 맞먹는 수준이다.

일본도 글로벌 차원에서 중국 위주의 공급망을 재구축하는 데 시동을 건 것은 2010년으로 한국과 큰 차이가 없다. 중국과의 영토분쟁이 수면으로 급부상하면서 제조기지를 ‘중국 일변도’에서 벗어나 아세안을 그 대안으로 모색했다. 이는 일본 기업의 주재원 수로 확인된다. 일본 외무성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아세안에 주재하는 일본 기업의 주재원 수가 2012년 대비 32% 증가하면서 8만3000명을 기록한 반면, 같은 기간 중국은 16%가 줄어든 7만 명에 그쳤다. 역전이 발생한 것이다. 더욱이 일본 기업의 아세안 주재원 수는 북미(5만5000명)와 유럽(3만 명)을 큰 차이로 따돌려 명실상부한 1위 자리에 올라섰다.

한국과 일본의 해외 전략 변화는 글로벌 투자 지도로도 확인된다.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전 세계의 아세안에 대한 직접 투자액은 직전 5년(2011~2015년) 대비 30.4% 증가한 7310억달러(약 871조원)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중국에 대한 투자액(6989억달러·약 833조원)을 추월한 것이다. 특히 같은 기간 한국의 아세안 투자액 증가율이 가장 두드러졌다. 한국의 아세안 투자 증가율이 74.2%를 기록해 인접한 국가인 중국(65.4%), 대만(40.6%), 일본(21.8%)의 아세안 투자 증가율을 모두 웃돌았다. 특히 아세안이 전 세계 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16년 6.5%에서 지난해 13.6%로 두 배 이상 뛰어올라 세계 공장이 중국에서 아세안으로 옮겨진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최근 아세안 국가 내 코로나19 환자 급증과 도시봉쇄(lockdown)는 해당 지역 투자 기업들을 당황스럽게 할 뿐만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에도 치명상을 가할 것으로 우려된다. 베트남의 수출 품목을 살펴보면 전체 수출액의 18.1%(2020년 기준)가 휴대전화와 그 부품이고, 컴퓨터 등 IT 제품(15.8%)을 더하면 그 비중이 33.9%로 뛰어오른다. 여기에다 기계류와 장비를 합하면 40%를 웃돈다. 실제로 아세안 5개국(인도네시아·필리핀·베트남·대만·말레이시아)이 세계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7%에 불과하나 중국이 수입하는 데이터처리(data processing) 장비의 38%, 통신 장비의 29%는 상기 5개국 제품이며, 미국도 이들 국가로부터 반도체의 50% 이상을 수입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베트남의 경제 수도인 호찌민에서의 근로자 이동이 금지되고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등의 일부 기업들도 원자재 문제로 사실상 공장을 멈춰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제 아세안에서 또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첫째 대안은 본국 회귀(reshoring)다. 가장 익숙한 곳에서 사업하는 것이 리스크를 가장 쉽게 줄이는 해법이기 때문이다. 해외 진출의 최대 동력이었던 저렴한 인건비 확보는 공장 스마트화로 해결할 수 있고 봉쇄와 기술 유출에서도 보다 자유롭다. 더불어 일자리도 돌아와 정부가 각종 당근을 제시하고 있는데, 일본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일본 정부는 총 2200억엔(약 2조2000억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해 특정 국가에 생산 거점이 집중되어 있거나, 국민 건강에 중요한 제품·소재의 생산시설을 본국으로 회귀시키는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수동적 기업 지원에서 탈피해 공장시설(건물 및 설비)은 물론 물류시설(창고·배송센터)에 대한 본국 투자도 업체당 150억엔(약 1500억원)까지 지원하기 시작했다. 한 번에 수백 건의 지원 신청이 들어와 일본 정부가 업체 선정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다. 우리도 리쇼어링에 대해 외국인 투자에 준하는 특단의 혜택이 필요해 보인다.

둘째 대안은 규모의 경제를 포기하고 소비시장에 근접하여 소규모 공장을 여러 곳에 짓는 것이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장을 짓는다는 개념으로, 생산은 물론 원자재 조달과 유통에 다원화를 도모하는 것이다. 최근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중국은 물론 미국 그리고 인도 등에 짓는 전략이 대표적이다. 최근 물류비 급등과 코로나19 봉쇄로 효과적인 물류망을 통한 자원의 효율적인 재분배가 한계에 달한 것도 공장 다원화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셋째, 플랜B의 일상화 전략이다. 코로나19는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언제나 재발할 수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더구나 세계무역기구(WTO)라는 심판이 글로벌 시장에서 제 기능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어 국가 간 불협화음은 물론 보호무역주의는 더욱 팽배해질 우려가 크다. 앞으로 통제하기 힘든 경영 변수는 끊임없이 출현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