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드 헤이스팅스. 사진 블룸버그
리드 헤이스팅스. 사진 블룸버그

 

“전 세계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시장에서 경쟁 상대가 없다”는 평을 들었던 넷플릭스가 위기에 빠졌다. 넷플릭스는 올해 1분기 10년 만에 처음으로 구독자 수가 줄어든 데 이어 2분기에도 구독자 감소를 기록했다. 넷플릭스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 리드 헤이스팅스(Reed Hastings)는 “넷플릭스에 절대 광고를 도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기 말을 뒤집고 내년 초까지 광고 구독제를 선보이기로 했다. 

넷플릭스는 7월 19일(이하 현지시각) 2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구독자가 97만 명 줄었다고 밝혔다. 애초 예상한 2분기 구독자 감소 규모(200만 명)의 절반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지난 5월과 7월 두 차례 나눠 선보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 4’가 구독자 이탈을 둔화시켰다는 분석이 나왔다. 외신들은 잇따라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투자자들에게는 불행 중 다행”이라고 보도했고, 넷플릭스 주가는 장중 5.6% 올랐다. 

하지만 넷플릭스의 위기가 끝났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넷플릭스는 2분기 북미·유럽·중동·아프리카 지역에서 구독자 이탈을 겪었다. 유료 구독자 수 증가를 보인 곳은 아시아·태평양 지역뿐인데, 이곳은 다른 지역에 비해 매출 비중이 낮다. 넷플릭스는 이날 “올해 3분기 구독자가 100만 명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이는 월가 전망치(180만 명)보다도 적다.

블룸버그 칼럼니스트인 마틴 피어스는 “2분기 북미 지역 구독자가 130만 명 줄었는데, 이는 1분기 감소한 구독자의 두 배가량”이라면서 “가장 크고 돈 되는 시장에서 손실 본 건 좋지 않은 일”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는 디즈니, 애플,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 등과 경쟁이 강화하는 와중에 넷플릭스가 가격 인상 카드를 꺼내든 게 실수였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만든다”고 했다. 

넷플릭스는 여전히 스트리밍 업계에서 1위를 유지 중이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규제가 풀린 뒤, 성징세가 빠르게 둔화하는 상황이다. 경쟁 OTT가 늘고, 넷플릭스에서 방영하던 자사 콘텐츠를 빼내면서 넷플릭스의 경쟁력이 약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외 정치·경제 상황도 넷플릭스의 발목을 잡는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 우려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가정이 늘면서 구독을 취소한 사람이 늘어난 데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하면서 크게 타격을 입었다. 더욱이 강달러 상황은 미국 외 다른 지역의 매출을 깎아먹고 있다.

넷플릭스 주가는 올해 초 600달러에 달했으나, 7월 19일 현재 201.63달러로 내린 상황이다. 연초 이후 66%가량 하락한 셈이다. OTT 대표 주자 넷플릭스의 부진에 스트리밍 경쟁에 뛰어든 다른 엔터사의 주가도 큰 폭으로 내렸다. 같은 기간 푸보TV와 로쿠의 주가는 각각 83%, 61% 내렸고,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44%), 디즈니(-36%), 파라마운트그룹(-16%)도 하락했다. 

넷플릭스는 구독 서비스 부진을 상쇄하기 위해 구독료를 인상했다. 이와 함께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계속해서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지난 5월 북미 직원 150명과 시간제·계약직 직원을 해고했고, 한 달 만에 직원의 3% 정도인 300명을 추가 해고했다.


MS와 손잡고 광고 시장 출사표

헤이스팅스가 이번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생각해낸 돌파구는 ‘광고’다. 넷플릭스는 다른 OTT인 훌루, HBO맥스 등과 다르게 광고가 없고 구독자가 지불하는 월별 구독료에 의존해 왔다. 그는 2019년 7월 “넷플릭스가 광고 사업을 한다는 전망을 보게 된다면, 가짜라고 확신하라”고 말할 만큼 광고 도입에 회의적이었다. 2020년 1월에도 “넷플릭스는 광고로 수익을 창출할 생각이 전혀 없다”며 “우리는 탐색할 수 있고, 자극받을 수 있고, 재미있고, 즐길 수 있는 ‘안전한 휴식처’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최근 실적 악화에 넷플릭스 사업 방향성도 바뀌고 있다. 헤이스팅스는 4월 19일 폐장 후 진행된 1분기 실적 발표에서 “더 저렴한 가격에 넷플릭스를 구독하기 원하는 구독자를 위해 내년, 내후년쯤 광고를 도입할 계획이 있다”고 했다. 기존 사업 모델을 버리고서라도 구독자를 붙잡는 게 필요하다고 본 셈이다. 넷플릭스 경영진은 지난 5월 직원들에게 공지를 통해 “훌루와 HBO맥스가 광고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강력한 브랜드를 유지할 수 있었고, 애플을 제외한 주요 스트리밍 기업은 모두 광고 서비스를 하고 있다”며 “올해 말까지 이를 선보일 것”이라고 시간표를 공지했다. 

넷플릭스는 7월 13일 광고 삽입형 요금제를 출시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MS)와 손을 잡기로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넷플릭스는 저가형 서비스를 위해 최근 몇 개월간 구글, 컴캐스트 등과도 협의해 왔으나 유튜브(구글), 피콕(컴캐스트) 등 자사와 경쟁하는 서비스가 없는 MS를 최종 파트너로 정했다. MS는 자회사로 디지털 광고 회사 잰더(Xandr)를 가지고 있다. 잰더는 TV 광고에 특화된 기업으로 넷플릭스 광고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넷플릭스의 광고 삽입형 요금제는 출시 전부터 기업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TV를 보지 않는 젊은 소비자가 늘었는데도 스트리밍 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해 광고주들에게 고민이 많았다”며 “이제 변화가 시작돼 현대차, 펠로톤을 비롯한 수많은 광고주가 넷플릭스와 수백만달러 규모의 장기 계약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과거 기존 모델을 버리는 것으로 생존 돌파구를 마련한 헤이스팅스가 이번에 띄운 승부수도 통할지 주목된다.


Plus Point

사즉생(死卽生)으로 글로벌 1위 OTT 이끈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창업자 헤이스팅스가 자신이 공개 천명해온 광고 불가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기로 한 것은 과거 위기 돌파 때의 사즉생(死卽生·죽기로 마음먹으면 산다)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헤이스팅스는 1997년 넷플릭스를 창업한 후 매각을 생각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피벗(pivot·사업전환)하며 넷플릭스를 글로벌 1위 OTT 기업으로 거듭나게 했다. 당시 그는 비디오테이프를 제때 반납하지 않아서 연체료로 40달러를 낸 뒤 연체료를 안 내도 되는 ‘DVD 우편 대여 서비스’를 선보였지만, 수익성이 좋지 않았다. 그는 인터넷이 발달하자 넷플릭스의 사업 방향을 바꾸고 나섰다. 인터넷을 통한 사업 모델은 기존 사업을 죽이는 ‘자해 행위’라는 지적이 있었지만 그는 밀어붙였다. 2007년부터는 디지털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하고 무(無)광고 정책을 유지하며 전 세계 구독자를 모으며 성공 가도를 탔다. 헤이스팅스는 넷플릭스를 재빨리 변화시키고 엔터테인먼트 산업계에 지각 변동을 일으킨 덕에 ‘포스트 잡스’라는 별명도 얻게 됐다. 

“무규칙이 규칙”이라고 헤이스팅스가 언급할 만큼 직원의 자유를 보장하는 기업 문화가 오너의 말까지 뒤집는 혁신을 가능케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규칙 없음’이라는 책을 출간한 헤이스팅스는 상사가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아이디어라도 직원 자신이 옳다고 판단하면 실천에 옮기라고 부추기는 문화가 넷플릭스에 있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