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이 최고조를 향해 치닫고 있다. 사진은 2019년 6월 29일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해 양자회담을 벌이는 모습. 사진 AFP연합
미·중 갈등이 최고조를 향해 치닫고 있다. 사진은 2019년 6월 29일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해 양자회담을 벌이는 모습. 사진 AFP연합

G2(미국·중국)의 힘겨루기는 언제쯤 끝날까. 끝을 볼 수는 있는 걸까. 무역전쟁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원지 논란으로 이어진 두 나라 갈등이 이번에는 반도체 시장에서 격해지고 있다. 한국 수출의 20% 이상을 반도체가 차지한다는 점에서 이 산업을 둘러싼 미·중 양국의 대립은 한국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이슈다.

미 상무부는 올해 9월부터 중국 화웨이가 설계한 반도체를 위탁생산하는 기업이 생산 과정에서 미국 장비나 소프트웨어를 조금이라도 사용한다면 미 정부 허가를 꼭 받아야 한다고 5월 15일(현지시각) 발표했다. 전 세계 반도체 생산 업체 중 미국 기술의 도움을 받지 않는 기업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사실상 화웨이의 팔다리를 자르겠다는 의미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미국이 화웨이의 비메모리(시스템) 반도체를 위탁생산하는 대만 기업 TSMC를 정조준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화웨이는 거의 모든 스마트폰 관련 칩 제조를 TSMC에 맡겨왔다. TSMC는 세계 1위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는 52.7%의 압도적인 점유율을 기록했다. 2위 삼성전자(17.8%)와 격차가 세 배다.

미국의 제재 발표가 나온 뒤 TSMC는 화웨이의 신규 수주를 받지 않겠다는 입장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미국 의도대로 된 것이다. 졸지에 화웨이는 제재 유예 기간인 120일 이내에 반도체 물량을 최대한 확보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TSMC는 제재 발표 직전 화웨이로부터 7억달러(약 8620억원) 규모의 주문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사실 TSMC의 ‘화웨이와 선 긋기’는 어느 정도 예상된 행보였다. 최근 TSMC는 120억달러(약 14조7000억원)를 투입해 미국 애리조나주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본격적인 제품 양산은 2024년 시작할 방침이다. 미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은 트럼프 행정부가 아시아 반도체 공장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고 하는데, 대만이 이에 적극적으로 부응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현시점에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쪽은 중국이다. 화웨이는 5월 19일 자신들을 겨냥한 미 상무부의 제재를 강력히 반대한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 입장문에서 화웨이는 “글로벌 협력 위에 쌓은 신뢰를 무너뜨려 여러 산업에 피해와 갈등을 야기할 것”이라며 “미국 기술과 공급 시스템에 대한 믿음이 추락해 궁극적으로는 미국 이익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라고 했다.

주변국을 불안하게 하는 미국과 중국의 기 싸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미국의 탈(脫)중국 시도가 노골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코로나19가 중국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에서 발원했다는 증거를 봤다”고 주장한 데 이어 “증거를 제시하라”며 중국 편을 든 세계보건기구(WHO)에 대해서는 ‘중국 편향’을 고치지 않으면 자금 지원을 중단하고 탈퇴도 고려하겠다고 경고했다. 미국은 지난해 WHO에 4억달러(약 5000억원)를 지원했다.


대만 TSMC는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 업체다. 사진 EPA연합
대만 TSMC는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 업체다. 사진 EPA연합

연결 포인트 1
SMIC가 TSMC 대신할 수 있을까

TSMC라는 든든한 파트너를 잃게 생긴 화웨이는 당장 대안을 찾아야 한다. 현재 거론되는 업체는 중국 파운드리 업체인 SMIC다. TSMC나 삼성전자와 비교하면 SMIC의 기술력은 매우 낮지만, 마땅한 대체재가 없기 때문이다.

그간 화웨이는 10㎚(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이하 고성능 반도체는 TSMC, 20㎚대 저성능 반도체는 SMIC에 생산을 맡겼다. 화웨이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모바일 프로세서(AP) ‘기린’은 TSMC의 7㎚ 공정에서 생산된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TSMC와 SMIC의 기술 격차가 워낙 커 (SMIC에 위탁생산을 맡긴다면) 화웨이 스마트폰은 품질 저하 문제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화웨이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의 기술력도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했다.

미국 뒤에 선 TSMC도 결국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화웨이는 1년에 스마트폰을 2억 대 이상 판매하는 큰손 중 큰손이기 때문이다. 미국 눈치를 보느라 주요 고객과 등을 맞댄 것이다.


이재용(선두 오른쪽) 삼성전자 부회장이 5월 18일 중국 시안 공장 생산라인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재용(선두 오른쪽) 삼성전자 부회장이 5월 18일 중국 시안 공장 생산라인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연결 포인트 2
삼성전자에 기회?

TSMC와 삼성전자는 글로벌 파운드리 1·2위 업체다. TSMC가 매출의 10~15%를 책임지는 화웨이와 관계를 끊는다면 그만큼 삼성전자에 기회가 오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TSMC가 화웨이에 공급하려던 물량이 삼성전자에 고스란히 넘어온다고 보장할 수 없다는 점에서 낙관은 금물이다.

기업끼리 구매와 판매 관계를 복잡하게 이루고 있다는 점도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가령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완제품 영역에서 화웨이와 경쟁 관계이지만, 동시에 화웨이에 메모리 반도체를 수출하기도 한다. TSMC 부품을 받지 못한 화웨이의 스마트폰 품질이 낮아져 판매량이 감소한다면 이는 삼성전자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의미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월 17일 2박 3일 일정으로 중국 반도체 공장 출장에 나선 것도 이런 혼돈 상황과 무관치 않다. 이 부회장은 현장에서 “과거에 발목 잡히거나 현재에 안주하면 미래가 없다”고 했다.


화웨이는 5G 관련 특허를 8만5000건이나 보유하고 있다.
화웨이는 5G 관련 특허를 8만5000건이나 보유하고 있다.

연결 포인트 3
중국도 공격할 무기 있다

현재 미·중 갈등 양상을 보면 미국만 중국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인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화웨이는 전 세계 정보기술(IT) 기업 가운데 가장 많은 8만5000건의 5세대 이동통신(5G)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며 “최악의 상황에는 5G 특허를 무기로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최 연구원은 “이 경우 5G 관련 비용이 급증하면서 관련 생태계를 전반적으로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 강화 조치가 나온 후 중국 상무부와 관영 매체들은 강력한 보복을 암시한 상태다.

유럽 통신 업계가 미국이 기대하는 것처럼 화웨이를 완전히 배제하고 다른 통신장비 제조사를 선택할 가능성은 작다는 게 전문가의 시각이다. 최 연구원은 “유럽 통신사는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정부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설비 투자(CAPEX) 급증을 야기하는 선택을 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