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지난 11월 중간선거에서 상하원을 장악하면서 미국의 대한(對韓) 경제 정책이 어떻게 달라질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리에게 가장 큰 관심을 끄는 부분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변화다. 일단 보호무역 성향이 강한 민주당이 12년 만에 의회를 장악한 것은 한·미 FTA에는 악재다. 민주당은 각종 FTA 협상들과 관련해 이미 미국 노동계로부터 ‘노동 기준이 부합되지 않으면 승인하지 말라’는 압력을 받고 있는 상태라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전했다. 

따라서 이번 중간선거에서 승리한 민주당의 유력 의원들이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해 공화당과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는 있으나 과연 어느 선까지 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중도 성향의 민주당 의원들이 민주당 내 다른 의원들의 지지를 확보하고, 고집 센 농업 분야의 로비를 극복할 수 있을지는 아직 큰 의문으로 남아 있다”면서 “세계무역기구(WTO) 산하 도하라운드 협상을 재개시키고 각종 FTA 협상에 탄력을 주려는 노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즉, 민주당 지도부가 이처럼 현실적으로 접근하려고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보호주의 색채는 여전한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보호무역 성향 강해 협상 난항 예상

하지만 그 영향은 제한적일 전망이다. 복잡한 지역구 이해관계 때문에 민주당의 일반적 보호무역 성향대로 한·미 FTA 협상이 흘러간다고 볼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하원 세입세출위원장에 오를 민주당의 찰스 랑겔 의원이 FTA와 관련, “초당적인 협조를 위해 공화당과 협의할 것”이라고 강조한 데서도 잘 나타난다. 이 발언은 미국이 현재 초점을 맞추고 있는 페루, 콜롬비아 및 한국과의 FTA 협상을 염두에 둔 것이다.

민주당의 의회 장악은 한·미 FTA 협상에 일단 불리한 요인이다.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농업과 노조를 지지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한·미 FTA의 핵심 쟁점인 소고기와 자동차 수입 문제는 민주당의 지지 세력과 직결돼 있다.

미국은 현재 몰락해가는 미국 자동차 회사들을 회생시키고 노조원들의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배기량별 세금 부과 방식 변경 등 미국 자동차 수입 확대 방안을 한국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요구는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자동차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미시간 출신 민주당 의원들이 의회 주도권을 장악함으로써 강화될 전망이다.

특히 조세와 무역 등 재정 문제를 다루는 핵심 상위인 하원 세입세출위 산하 FTA 소위는 한국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문제는 자유무역정책에 비판적인 미시간 출신 샌더 레빈 의원이 이 소위를 맡을 것이라는 점이다. 또 상원에서도 샌더 레빈 의원의 동생인 칼 레빈 의원이 군사위원장을 맡을 것으로 알려져 레빈 형제가 한국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전망된다. 샌더 레빈 하원의원과 칼 레빈 상원의원은 각각 24년과 30년간 의회에서 활동한 베테랑들이다.

이들 의원은 한국의 자동차 시장 개방보다는 한국산 자동차의 미국 진출을 막는 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자동차 회사들의 입장에서는 한국의 자동차 시장 규모가 너무 작다. 또 한국이 배기량별 세금 부과 방식 등을 미국 측 주장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미국 차가 한국에서 더 많이 팔린다는 보장도 없다. 이 때문에 미 자동차 업계는 한국산 자동차의 미국 시장 진출을 막는데 골몰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픽업트럭에 대한 관세는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게 미 자동차 업계의 강력한 주문이다. 미국 자동차 업계로서는 미국 자동차의 자존심인 픽업트럭 부문까지 현대자동차 등 한국 업체들에게 침식당하면 생존권이 위협받는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 같은 점을 감안하면 미시건 출신인 샌더 레빈 의원이 자동차 업계를 대변해 한·미 FTA의 자동차 협상을 곤경에 빠뜨릴 수도 있다.

이에 대해 현대자동차는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미국 현지 생산 공장을 늘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는 향후 미국에 공장을 더욱 증설할 계획을 갖고 있어, 관세율 인하에 연연하지 않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FTA의 신속 협상권(TPA)을 내년 6월말까지 의회로부터 부여받았다. 그러나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에서 TPA을 연장해줄 것 같지는 않다. 민주당 지도부는 내년 6월말로 만료되는 TPA 연장에 협조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대신 ‘도하라운드 협상의 프레임워크가 확실해야 한다’는 어려운 조건을 달았다.

도하 협상의 진전을 위해서는 유럽 등이 요구하는 미국의 농업 보조금 추가 감축이 선결돼야 하나 보수 농촌지역의 지지기반을 탈환하려는 민주당 입장을 감안할 때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원 농업위원장을 맡게 되는 콜린 피터슨 의원만 해도 옥수수 등을 재배하는 농촌지역인 미네소타 출신으로, 현행 보조금 지급 방식을 강력히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빅딜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다. 즉 공화당 주도 의회에서 공화당이 TPA 연장을 주도적으로 이끌기에는 정치적으로 역부족일 수 있었지만, 그동안 보호주의 색채가 강했던 민주당이 TPA를 연장하는 것은 오히려 ‘정치적 아량’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민주당 출신 대통령은 공산주의자라는 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중국과 수교를 추진하지 못한 반면, 공화당 출신인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당당하게 중국과 수교를 맺을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이치라는 설명이다.

따라서 한·미 FTA 협상도 TPA 연장 여하에 따라 크게 영향 받을 전망이다. 만약 TPA가 연장되지 않는다면 한·미 FTA 협상은 예정대로 내년 3월말까지 모든 협상을 타결해야 한다.

민주당의 의회 장악은 의회 비준 부담뿐 아니라 협상 절차적인 측면에서도 FTA에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또 미국 중부 몬태나 등 소고기 벨트 지역 출신의 민주당 의원들도 뼈 붙은 소고기의 수입을 늘려 달라고 한국 측에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 민주당이 자동차나 소고기, 농산물 수출 부문에서 한국에 강한 압력을 행사하면 한국 정부로서는 수용하기 어려워 FTA 협상이 어려움에 봉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측은 한국 섬유·의류의 수입량도 줄이려 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의약품 약가 산정의 절차적 투명성 문제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전망이다.

지나친 비관은 시기상조

자동차, 노동, 환경 부문에 자신들의 생각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민주당이 판단하면 한·미 FTA가 타결되더라도 의회 승인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또 미국 행정부 협상 팀이 의회 비준을 의식해 한국 측에 더욱 강한 시장개방을 요구할 가능성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하원 국제관계위원회의 데니스 핼핀 전문위원은 “민주당은 노조의 지지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FTA에 부정적”이라며 “민주당이 약진하면 한·미 FTA 비준은 비관적”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대거 반대하면서 지난 7월 미·오만 FTA가 찬성 221 대 반대 205로 가까스로 하원을 통과했고, 작년 여름엔 미·중미 간 자유무역협정(CAFTA)이 1표 차이로 비준되기도 했다.

오만의 경우 경제 규모가 워낙 작아 두 나라 FTA가 미국 경제, 특히 노동계에 가하는 타격이 상대적으로 미미한데도 의회가 이처럼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것이다.

미국 통신노조의 래리 코언 위원장은 의회가 불합리한 내용으로 타결된 FTA를 승인할 경우 “민주당과 전쟁할 것”이라고 선언하고, “콜롬비아, 페루 및 한국과의 협상 추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미 FTA의 미래를 너무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한·미 FTA는 향후 미국의 다른 FTA 체결의 지표가 되는 작지 않은 이슈인 까닭이다. 예컨대 1994년 민주당 출신의 빌 클린턴 대통령은 당내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의 빅 이슈였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에 성공했다. FTA와 관련된 하원 세입세출위원장에 한국전 참전인사이자 한·미 FTA를 지지해 온 찰스 랑엘 민주당 간사가 유력한 것을 비롯, 민주당 내에서도 한·미 FTA를 지지하는 의원들이 있다.

한국 측 협상팀 관계자는 “양국의 경제적 비중과 동맹 차원에서 볼 때 한·미 FTA는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어 있기 때문에 의회에서 초당파적인 합의 하에 협상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