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부터 적자 내면 리그서 제외”…

  

명문 구단들 수지 맞추기 ‘비상’



- 지난 4월 13일 UEFA챔피언스 리그 8강 2차전 첼시와의 경기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한 박지성 선수가 태클을 걸고 있다. 박지성은 결승골을 넣어 첼시를 격침시켰다.
- 지난 4월 13일 UEFA챔피언스 리그 8강 2차전 첼시와의 경기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한 박지성 선수가 태클을 걸고 있다. 박지성은 결승골을 넣어 첼시를 격침시켰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합격, 첼시는 불합격’    오는 29일 벌어질 유럽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나 영국 프리미어 리그 전적 이야기가 아니다. 유럽축구연맹 (UEFA)이 오는 2014년부터 새로 시행하는 재정건전성 규제에 따르면 맨유는 유럽 리그 (챔피언스 리그, 유로파 리그)에 출전할 자격이 주어지지만 첼시는 아예 출전권이 박탈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는 영국 공영방송 BBC가, 3년의 예고 기간을 거쳐 2014년 시즌부터 실시 예정인 이 제도가 올해 4월 당장 실시된다는 전제하에 유명 구단들의 재무제표를 중심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드러난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UEFA가 새로 도입한 재정건전성 기준은 향후 3년간 구단의 지출이 수입보다 많을 경우 유럽 리그 출전 자체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로 스폰서 업체들이 내는 광고 수입과 입장료, TV중계권료 등으로 구성되는 구단 수입에 비해 선수들의 연봉과 이적료 등을 과다 지출하게 되면 아무리 명문 구단이라고 하더라도 리그 출전 자격 박탈이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쓸 수밖에 없다. 



프리미어 리그 명문 구단들이 진 빚을 중심으로 재무제표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가장 먼저 경고등이 켜진 구단은 첼시와 맨체스터 시티다. 최근 42년 만에 FA컵 결승 트로피를 차지한 맨체스터 시티의 경우는 팀 전적의 호조에도 불구하고 선수 영입을 위해 너무 많은 돈을 퍼부었다는 것이 우려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 2008년 맨시티를 인수한 아랍에미리트(UAE) 석유재벌 셰이크 만수르 빈 자예드 빈알나얀은 선수 영입에만 3억 파운드라는 엄청난 돈을 투자해 팀 성적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반대로 이러한 과감한 투자가 나중에 구단 운영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요인으로 지목된 것이다.



한편 맨유의 경우는 다른 구단 못지않은 부채 규모에도 불구하고 이번 시뮬레이션에서 리그 출전 자격 박탈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했다. 물론 그렇다고 시즌당 이자 부담만 4500만 파운드에 이르는 맨유의 재정 상태가 안전한 것은 아니다.



반면 아스날은 5500만 파운드의 이익을 남기며 쉽게 기준을 통과할 것으로 관측됐다. 특히 아스날 팬들은 최근 프리미어 리그를 잠식해오는 중동 자본의 도움 없이 건전한 재무상황을 유지해오고 있는 데 대해 자부심을 느낄 만도 하다.

- 박지성이 2010년 3월 리버풀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리고 환호하고 있다. 박지성이 몸을 사리지 않는 다이빙 헤딩으로 결승골을 터뜨리며 올드 트래퍼드(맨유 홈구장)를 열광시켰다.
- 박지성이 2010년 3월 리버풀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리고 환호하고 있다. 박지성이 몸을 사리지 않는 다이빙 헤딩으로 결승골을 터뜨리며 올드 트래퍼드(맨유 홈구장)를 열광시켰다.

결국 수입에 비해 부채 규모가 지나치게 큰 일부 구단들은 몇 년 안에 선택을 강요 받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스타 플레이어들을 한두 명 포기하더라도 UEFA 가 제시한 재정건전성 규제에 재무제표를 맞춤으로써 유럽 리그 출전권을 확보할 것인가 아니면 팀 전력 강화를 위해서라면 유럽 리그 출전도 포기할 것인가 하는 선택지가 주어질 것이다.  



물론 첼시나 맨시티처럼 경고장을 받은 구단들은 UEFA의 재정건전성 규제조치가 본격 시행되기 전까지 요구조건을 충족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특히 맨시티는 FA컵 우승의 여세를 몰아 챔피언스 리그에 등극하면 자연스레 스폰서 업체들에 대한 광고 수익과 TV중계권료 등이  올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또 새로운 제도에 따른 구단 평가가 바로 시행되는 것은 아니다. UEFA는 지난해 이 규정을 내놓으면서 3년의 유예 기한을 두었다. 게다가 과거 시즌별로 구단들이 내는 적자 허용범위를 정해 이 범위를 넘어 적자를 내는 구단에만 제재를 가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경과 규정에도 불구하고 UEFA가 이런 규제를 도입하면서까지 재정악화를 막기 위해 나선 것은 그만큼 구단들의 채무상태가 심각하다는 상황을 반영한다. 미셸 플라티니 UEFA 회장은 구단들의 새로운 규제방안을 발표하면서 이 제도가 일정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구단들을 유럽 대항전에서 탈락시키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특히 유럽 축구를 지배해온 상업주의에 반대하고 있는 플라티니 회장은 새로운 재정건전성 규제를 통해 구단 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줄여나감으로써 더 많은 팬들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플라티니 회장은 유럽 53개국 660개에 달하는 1부 리그 구단들이 적어도 재정문제에 관한 한 동등한 출발선상에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이에 따라 구단들의 재정상황을 평가하는 지표 역시 구단들이 축구 이외의 사업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은 인정하지 않는 쪽으로 설계됐다. 예를 들어 스폰서나 TV 중계권료 등은 구단 수입으로 인정하지만 구단이 보유하고 있는 호텔이나 기타 부동산을 통해 들어오는 돈은 수입으로 인정하지 않을 방침이다.



유럽 축구 관계자들은 적자투성이 명문 구단들이 스타 플레이어 마케팅에만 몰두한 채 축구 발전을 위한 재투자에 인색하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영국 축구협회 (FA) 데이비드 트리스만 회장도 첼시, 맨유, 아스날, 리버풀 등 프리미어 리그 명문 구단들의 부채가 리그 팀 전체 부채 규모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점을 지적하며 명문 구단들의 부채절감 노력을 촉구한 바 있다. 

- 지난해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차지한 첼시. 그러나 올해는 맨유에 발목이 잡혀 우승이 좌절됐다. 플라티니 UEFA 회장(오른쪽).
- 지난해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차지한 첼시. 그러나 올해는 맨유에 발목이 잡혀 우승이 좌절됐다. 플라티니 UEFA 회장(오른쪽).

프리미어 클럽 전체 부채 33억 파운드

현재 프리미어 클럽의 전체 부채는 33억 파운드에 이른다. 대부분 구단들의 지출이 수입을 초과한 상태. 이렇게 늘어난 부채 누적의 원인이 다름 아닌 해외 스타 플레이어 영입에 쏟아부은 거액의 스카우트 비용 때문이라는 데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UEFA가 새로 도입한 재무건전성 규제가 도입되면 해외 유명선수들에게 천문학적인 연봉을 지급해온  정상급 구단들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일 것도 뻔한 이치다.



영국 프리미어 리그만 해도 현재 60여개국으로부터 300여명의 외국 선수들이 활약하고 있다. 90년대 초 프리미어 리그 출범 당시 11명의 해외파 선수들이 뛰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물론 이들 스타 플레이어들이 프리미어 리그의 흥행을 담보하는 보증수표라는 것을 모르는 축구팬들도 없다. 프리미어 리그가 출범하기 직전인 1991-92 시즌 1부 리그 클럽들의 총수익은 1억7000만 파운드였다.



그러나 현재 프리미어 리그는 연간 20억 파운드 이상의 수익을 만들어내고 있다.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뛰는 스페인 라 리가(La Liga)가 거둬들이는 수익의 거의 두 배에 이르는 금액이다. 전 세계에서 스타 플레이어들을 끌어모은  프리미어 리그의 힘이다.



그러나 이런 대가를 얻어내기 위해 스타 플레이어 영입 경쟁에 나선 구단들이 결국은 과다한 지출에 짓눌려 엄청난 빚더미에 앉게 된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거물급 선수 영입이 구단의 재정악화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는 크리스티아노 호날두를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시킨 맨유의 경우만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호날두를 팔아넘기면서 맨유는 8000만 파운드라는 거액을 챙겼다. 그런데 맨유가 당시 밝혔던 한 해 세전 수입은 4820만 파운드였다. 결국 호날두 한 선수를 포기함으로써 어림잡아 2년치 구단 수입에 가까운 현금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스타 플레이어들의 몸값이 구단 재정에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당시 맨유는 3200만 파운드 적자라는 실적을 호날두 이적을 통해 단번에 5000만 파운드 가까운 흑자로 반전시킨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 들어 중동의 왕족과 연계된 오일 머니가 프리미어 리그 구단을 잇달아 사들이게 된 것도 부채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결국 이들 말고는 명문 구단들의 빚을 떠안을 만한 자본력을 갖춘 인수업체를 찾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빚더미에 짓눌린 기존 구단들의 잔혹사 스토리도 계속되고 있다. 빚더미에 눌려 파산 직전까지 갔던 포츠머스는 이미 지난해 초 프리미어 리그 구단 중 최초로 법정관리에 들어간 바 있다. 런던에 근거지를 둔 웨스트 햄 역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아이슬란드 출신 구단주가 손을 떼고 CB홀딩이라는 자산관리 회사로 넘어갔다.



특히 구단 운영경비 중 선수 급여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지난해 미국 자본으로부터 웨스트 햄을 인수해 공동 구단주가 된 데이비드 설리번은 클럽 수익의 90% 정도가 선수들의 급여로 나가버린다고 지적하며 감독 및 선수들의 연봉을 25%가량 삭감하는 초강경 조치를 단행했다. 최근 BBC TV가 방영한 특집 프로그램에 출연해 프리미어 리그 구단들의 부채 문제를 직접 다룬 알란 슈가도 문제의 심각성을 경고했다. 알란 슈가는 <어프렌티스(Apprentice)>라는 프로그램 진행자로 명성이 높은 영국 부호로 10년 전까지만 해도, 한때 이영표 선수가 몸담았던 토트넘의 구단주 경력을 갖고 있는 축구 기업인 출신이다.



알란 슈가가 내린 결론은 ‘프리미어 리그 구단들의 재정상태는 한마디로 충격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지금이야말로 구단들이 허리띠를 졸라맴으로써 생존을 도모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영국 비즈니스에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와 맞먹는 명성을 누려온 그의 지적을 얼마나 귀담아들을지는 물론 각 구단들의 몫이다.